그리스의 격언 중에 '시간은 그 앞머리로 잡으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앞머리가 풍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며 발밑에 날개를 달고 있다고 한다. 빨리 달아나기 위해 발에 날개가 달린 시간은 그 앞에서 다가갈 땐 누구나 붙들 수 있고, 떠나고 나면 아무도 그것을 붙들 수 없다. 앞머리만 달린 시간, 어찌 보면 기회의 생김새 같기도 한 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혹여나 놓칠까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때, 바야흐로 6월이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다양한 제안을 해주셨다. 숍 입점과 팝업 행사부터 제품 협업까지 새로운 내용의 메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신나고 설레는 한 편, 차오르는 긴장감에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리자며 둘이서 얼마나 서로를 다독였는지 모른다. 주변 선배들은 이 시기를 귀하게 여기라 조언하며 '중요한 것은 기세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 한 가운데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상황에 쏠려가기보다는 중심을 잡고 우리의 속도를 찾고 싶어 갈증이 났다. 하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발뒤꿈치로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조금 느긋하게 가자고 마음먹기가 무섭게 씨앗보드를 제작했던 스탠다드에이로부터 깜짝 제안을 받았다. 원목가구 브랜드 스탠다드에이의 서교동 쇼룸에는 소목공 작업이 가능한 약 8평 정도의 워크룸이 있는데, 여름이 오기 전 그 공간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씨드키퍼는 이제 막 입점처를 확장하고 있었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도 제법 받고 있었다. 우리도 평소 쇼룸 운영에 대한 갈망이 있던 차, 지금이 그 기회구나 싶어 결국 시간의 앞머리를 다시 한 번 붙들어 챘다.
스탠다드에이 서교동 쇼룸의 한 켠에 위치한 워크룸. 출입구가 따로 있어 별도의 숍처럼 운영할 수 있었다.
한 달 중 16일만 운영하는 가게
스탠다드에이 팝업은 6월 19일부터 7월 4일까지 세 번의 주말을 끼고, 딱 16일만 운영하기로 했다. 2일 간의 피크닉 팝업을 마무리하자마자 곧바로 2주가 조금 넘는 팝업을 또다시 기획하게 된 것이다. 숍인숍 형태의 팝업이지만 나름대로 ‘우리만의 쇼룸을 오픈한다'는 생각으로 운영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갖게 될 우리만의 공간을 위해서도 경험이 필요했는데, 이번 팝업을 통해 필요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간에 늘 머무르며 제품을 직접 판매하고, 방문하는 분들의 반응도 직접 살필 수 있었기에 뭐든 시도해볼 만한 좋은 기회였다. 다만 제품 디스플레이를 위한 가구를 새로 만들기는 어려워 최대한 현장에 있는 것을 활용했다. 기존에 설치된 가구와 벽에 걸려있던 공구들이 워낙 멋스러워서 딱히 새로운 것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모든 아이디어를 짜내 제법 그럴싸하게 꾸렸는데, 이상하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온라인 리뷰를 오프라인으로 옮겨오다
흔히 하는 제품 협찬은 물론이고 우리는 지금껏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브랜드 런칭 초기부터 지금까지 언제가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건 실구매자 분들이 자율적으로 올려주시는 너무나 세심한 후기들이다. 개인적인 감상부터 예리한 제품 피드백까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오는 후기 하나하나가 우리의 큰 재산이다. 온라인에서야 간단한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흩어져 있는 글들은 한 데 모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많은 후기들 중 고르고 골라 우리의 마음을 울린 스물 아홉개의 글을 모았다. 직접 구매하거나, 친구에게 선물받은 분들의 솔직하고 다정한 후기가 제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으면 팝업을 찾아오는 분들에게도 훨씬 진정성있는 제품 소개가 되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왠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 들던 마음 한 구석이 단번에 채워졌다.
삼각형 종이 거치대는 매장 주변의 돌멩이를 사용해 고정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후기를 보여줄 것인가였다. 오프라인의 경우 어떤 경험을 전달하는가에 따라 사용자가 받아들이는 임팩트와 여운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선 디테일이 필요했다. 제품을 디스플레이할 선반은 벽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후기글을 벽에 부착하면 눈과의 거리가 멀어져 가시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어딘가에 매달아두자니 거추장스러워서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때 우리가 늘 고려하는 중요한 한 가지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스물 아홉개의 글을 거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종이를 접어 만든 삼각형 모양의 카드 거치대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지면에는 후기글과 함께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를, 안쪽으로 숨겨진 지면에는 구매자 분들이 직접 찍은 각자의 씨앗생활을 담은 사진들을 넣었다. 이 안쪽면에 숨겨진 사진들이 우리가 설계한 ‘앙증' 포인트였는데, 거치된 상태로 안쪽의 사진들을 보려면 요리조리 몸의 각도나 자세를 바꿔가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수고로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유도함으로써, 바로 옆에 함께 놓여진 작은 새싹들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며 관찰하면 전에는 몰랐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귀한 손편지도 함께 보내주셨다. 비타민이 따로 없다!
소중한 후기를 올려주신 분들께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려 초청했고, 방문해주신 분들께는 준비한 ‘후기 카드'를 접어서 선물로 드렸다. 멀리 울산에서 찾아와주신 분도 계셨는데, 기존에 구매한 씨앗키트의 패키지를 활용해 뚝딱뚝딱 노트 커버를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금손을 가진 분이었다. 너무 재밌고 멋져서 우리만 보기는 아쉬운 나머지 부탁을 드려 택배로 받아 전시하게 되었는데, 직접 방문까지 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각각 점으로 있다가 하나의 선분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너무 특별했다. 글로는 담기 어려운 감정이다.
이것저것 듬뿍 준비해보았는데, 첫 워크숍이라 어색하고 서툴렀던 것만 같다.
워크숍: 씨앗부터 화분까지
팝업 기간 동안 스탠다드에이의 쇼룸 4층에서 두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씨드키퍼를 아껴주는 분들과 갖는 공식적인 시간이기도 해서 이 기회 또한 무척 소중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해볼까, 나무향 가득한 이 공간과 어울리는 방식은 무엇일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첫 워크숍이니만큼 가장 우리다운 주제로 90분의 시간을 꽉꽉 눌러담아 채우기로 했다. 1층 워크룸에서 원하는 씨앗키트를 고른 후 쇼룸 내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4층의 분리된 공간으로 이동하는 동선이었다. 안락하고 프라이빗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워크숍 참여자 분들이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디자인했다. 워크숍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씨앗을 심고 화분에 옮겨심는 행위가 하나의 리추얼처럼 느껴지면 좋겠다 싶어 모든 감각에 기억을 심었다. 당시 코로나 거리두기 2단계로 다행히 간단한 취식이 가능했던지라 직접 기른 바질과 레몬밤을 띄운 웰컴 드링크를 준비했고,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음악과 향, 적당한 조도의 빛으로 공간의 빈 곳을 채워보았다.
팝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 2. 쇼룸형
이번 팝업은 스탠다드에이 쇼룸의 운영시간에 맞춰 운영되었고, 우리도 평소와 다르게 이곳으로 출퇴근을 했다. 작업실이 아닌 곳으로 출근을 하다보니, 회사에 다닐 때 생각이 났다. 손님으로서 들렀던 공간에 매일같이 출근을 해 문을 열고, 화분을 바깥에 옮겨 햇빛을 쐬어주고, 물을 준다. 바닥을 쓸고 선반을 정리하다 보면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만의 쇼룸’을 열면 이렇게 아침 루틴이 생기겠구나 싶어 뭉클했다. 처음엔 방문객이 얼마나 될지 몰라 둘이 함께 매장을 지키기 시작했다. 스탠다드에이에서의 팝업은 피크닉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는데, 특히 주중엔 일부러 우리를 만나러 찾아온 분들 외에는 대부분 주변의 직장인분들이 점심시간 즈음 지나가다 들르곤 했다. 덕분에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늘 인스타그램 디엠으로만 나누던 이야기를 직접 하며 여유롭게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았다.
씨앗보드 뒤쪽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씨앗을 고르는 고객님들을 끊임없이 참견할 수 있었다.
피크닉 팝업이 열린 유리온실은 가로로 길다란 직사각형의 공간이었는데, 이번 워크룸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제품과 식물들을 디스플레이하기 위해 필요한 테이블과 의자 등의 가구들은 스탠다드에이 측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셔서 걱정없었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는 역시 동선이었다. 모두들 벽과 가구들을 반복해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동선을 고민하고 있던 때, 어디선가 스윽 나타난 스탠다드에이의 디렉터 승일 실장님이 던진 한 수가 채택되었다. 씨앗보드를 파티션 삼아 스탭 공간을 분리하고, 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작은 공간이지만 방문객들의 이동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기도록 했다. 효과적인 가구 배치로 동선과 분위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기존에 있던 펜던트에 식물전구로 갈아 끼워서 실내 가드닝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었다.
구석구석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많이 두었고, 작은 의자도 배치했다. 원하는 만큼 더 오래 머물다 가길 바랐다. 찾아주시는 분들께는 일부러 많이, 그리고 자주 말을 걸었다. 조용히 씨앗봉투를 응시하며 고민하시던 분들도 막상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드리면 그제서야 편안한 표정으로 궁금했던 점을 마구마구 질문해주셨다. 여유로운 대화가 우리에게도 꽤 활력이 되길래 나중에 ‘우리만의 쇼룸'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니 배우고 느끼는 것이 늘고 있다. ‘경험치'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흐름을 탄다는 것
그리스의 격언 중에 '시간은 그 앞머리로 잡으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앞머리가 풍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며 발밑에 날개를 달고 있다고 한다. 빨리 달아나기 위해 발에 날개가 달린 시간은 그 앞에서 다가갈 땐 누구나 붙들 수 있고, 떠나고 나면 아무도 그것을 붙들 수 없다. 앞머리만 달린 시간, 어찌 보면 기회의 생김새 같기도 한 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혹여나 놓칠까 잔뜩 긴장하고 있던 그때, 바야흐로 6월이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다양한 제안을 해주셨다. 숍 입점과 팝업 행사부터 제품 협업까지 새로운 내용의 메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신나고 설레는 한 편, 차오르는 긴장감에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리자며 둘이서 얼마나 서로를 다독였는지 모른다. 주변 선배들은 이 시기를 귀하게 여기라 조언하며 '중요한 것은 기세다!'라는 말을 해주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 한 가운데에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상황에 쏠려가기보다는 중심을 잡고 우리의 속도를 찾고 싶어 갈증이 났다. 하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발뒤꿈치로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조금 느긋하게 가자고 마음먹기가 무섭게 씨앗보드를 제작했던 스탠다드에이로부터 깜짝 제안을 받았다. 원목가구 브랜드 스탠다드에이의 서교동 쇼룸에는 소목공 작업이 가능한 약 8평 정도의 워크룸이 있는데, 여름이 오기 전 그 공간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씨드키퍼는 이제 막 입점처를 확장하고 있었고, 오프라인에서 직접 보고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도 제법 받고 있었다. 우리도 평소 쇼룸 운영에 대한 갈망이 있던 차, 지금이 그 기회구나 싶어 결국 시간의 앞머리를 다시 한 번 붙들어 챘다.
스탠다드에이 서교동 쇼룸의 한 켠에 위치한 워크룸. 출입구가 따로 있어 별도의 숍처럼 운영할 수 있었다.
한 달 중 16일만 운영하는 가게
스탠다드에이 팝업은 6월 19일부터 7월 4일까지 세 번의 주말을 끼고, 딱 16일만 운영하기로 했다. 2일 간의 피크닉 팝업을 마무리하자마자 곧바로 2주가 조금 넘는 팝업을 또다시 기획하게 된 것이다. 숍인숍 형태의 팝업이지만 나름대로 ‘우리만의 쇼룸을 오픈한다'는 생각으로 운영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갖게 될 우리만의 공간을 위해서도 경험이 필요했는데, 이번 팝업을 통해 필요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간에 늘 머무르며 제품을 직접 판매하고, 방문하는 분들의 반응도 직접 살필 수 있었기에 뭐든 시도해볼 만한 좋은 기회였다. 다만 제품 디스플레이를 위한 가구를 새로 만들기는 어려워 최대한 현장에 있는 것을 활용했다. 기존에 설치된 가구와 벽에 걸려있던 공구들이 워낙 멋스러워서 딱히 새로운 것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모든 아이디어를 짜내 제법 그럴싸하게 꾸렸는데, 이상하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온라인 리뷰를 오프라인으로 옮겨오다
흔히 하는 제품 협찬은 물론이고 우리는 지금껏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브랜드 런칭 초기부터 지금까지 언제가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건 실구매자 분들이 자율적으로 올려주시는 너무나 세심한 후기들이다. 개인적인 감상부터 예리한 제품 피드백까지,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오는 후기 하나하나가 우리의 큰 재산이다. 온라인에서야 간단한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흩어져 있는 글들은 한 데 모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많은 후기들 중 고르고 골라 우리의 마음을 울린 스물 아홉개의 글을 모았다. 직접 구매하거나, 친구에게 선물받은 분들의 솔직하고 다정한 후기가 제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으면 팝업을 찾아오는 분들에게도 훨씬 진정성있는 제품 소개가 되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왠지 모르게 부족한 느낌이 들던 마음 한 구석이 단번에 채워졌다.
삼각형 종이 거치대는 매장 주변의 돌멩이를 사용해 고정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후기를 보여줄 것인가였다. 오프라인의 경우 어떤 경험을 전달하는가에 따라 사용자가 받아들이는 임팩트와 여운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선 디테일이 필요했다. 제품을 디스플레이할 선반은 벽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후기글을 벽에 부착하면 눈과의 거리가 멀어져 가시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어딘가에 매달아두자니 거추장스러워서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때 우리가 늘 고려하는 중요한 한 가지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스물 아홉개의 글을 거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종이를 접어 만든 삼각형 모양의 카드 거치대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지면에는 후기글과 함께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를, 안쪽으로 숨겨진 지면에는 구매자 분들이 직접 찍은 각자의 씨앗생활을 담은 사진들을 넣었다. 이 안쪽면에 숨겨진 사진들이 우리가 설계한 ‘앙증' 포인트였는데, 거치된 상태로 안쪽의 사진들을 보려면 요리조리 몸의 각도나 자세를 바꿔가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수고로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유도함으로써, 바로 옆에 함께 놓여진 작은 새싹들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며 관찰하면 전에는 몰랐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귀한 손편지도 함께 보내주셨다. 비타민이 따로 없다!
소중한 후기를 올려주신 분들께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려 초청했고, 방문해주신 분들께는 준비한 ‘후기 카드'를 접어서 선물로 드렸다. 멀리 울산에서 찾아와주신 분도 계셨는데, 기존에 구매한 씨앗키트의 패키지를 활용해 뚝딱뚝딱 노트 커버를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금손을 가진 분이었다. 너무 재밌고 멋져서 우리만 보기는 아쉬운 나머지 부탁을 드려 택배로 받아 전시하게 되었는데, 직접 방문까지 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각각 점으로 있다가 하나의 선분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너무 특별했다. 글로는 담기 어려운 감정이다.
이것저것 듬뿍 준비해보았는데, 첫 워크숍이라 어색하고 서툴렀던 것만 같다.
워크숍: 씨앗부터 화분까지
팝업 기간 동안 스탠다드에이의 쇼룸 4층에서 두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씨드키퍼를 아껴주는 분들과 갖는 공식적인 시간이기도 해서 이 기회 또한 무척 소중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해볼까, 나무향 가득한 이 공간과 어울리는 방식은 무엇일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첫 워크숍이니만큼 가장 우리다운 주제로 90분의 시간을 꽉꽉 눌러담아 채우기로 했다. 1층 워크룸에서 원하는 씨앗키트를 고른 후 쇼룸 내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4층의 분리된 공간으로 이동하는 동선이었다. 안락하고 프라이빗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워크숍 참여자 분들이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디자인했다. 워크숍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씨앗을 심고 화분에 옮겨심는 행위가 하나의 리추얼처럼 느껴지면 좋겠다 싶어 모든 감각에 기억을 심었다. 당시 코로나 거리두기 2단계로 다행히 간단한 취식이 가능했던지라 직접 기른 바질과 레몬밤을 띄운 웰컴 드링크를 준비했고,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음악과 향, 적당한 조도의 빛으로 공간의 빈 곳을 채워보았다.
팝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 2. 쇼룸형
이번 팝업은 스탠다드에이 쇼룸의 운영시간에 맞춰 운영되었고, 우리도 평소와 다르게 이곳으로 출퇴근을 했다. 작업실이 아닌 곳으로 출근을 하다보니, 회사에 다닐 때 생각이 났다. 손님으로서 들렀던 공간에 매일같이 출근을 해 문을 열고, 화분을 바깥에 옮겨 햇빛을 쐬어주고, 물을 준다. 바닥을 쓸고 선반을 정리하다 보면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다. ‘우리만의 쇼룸’을 열면 이렇게 아침 루틴이 생기겠구나 싶어 뭉클했다. 처음엔 방문객이 얼마나 될지 몰라 둘이 함께 매장을 지키기 시작했다. 스탠다드에이에서의 팝업은 피크닉에서의 그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는데, 특히 주중엔 일부러 우리를 만나러 찾아온 분들 외에는 대부분 주변의 직장인분들이 점심시간 즈음 지나가다 들르곤 했다. 덕분에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늘 인스타그램 디엠으로만 나누던 이야기를 직접 하며 여유롭게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았다.
씨앗보드 뒤쪽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씨앗을 고르는 고객님들을 끊임없이 참견할 수 있었다.
피크닉 팝업이 열린 유리온실은 가로로 길다란 직사각형의 공간이었는데, 이번 워크룸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제품과 식물들을 디스플레이하기 위해 필요한 테이블과 의자 등의 가구들은 스탠다드에이 측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셔서 걱정없었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는 역시 동선이었다. 모두들 벽과 가구들을 반복해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동선을 고민하고 있던 때, 어디선가 스윽 나타난 스탠다드에이의 디렉터 승일 실장님이 던진 한 수가 채택되었다. 씨앗보드를 파티션 삼아 스탭 공간을 분리하고, 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작은 공간이지만 방문객들의 이동에 자연스러운 흐름이 생기도록 했다. 효과적인 가구 배치로 동선과 분위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기존에 있던 펜던트에 식물전구로 갈아 끼워서 실내 가드닝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었다.
구석구석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많이 두었고, 작은 의자도 배치했다. 원하는 만큼 더 오래 머물다 가길 바랐다. 찾아주시는 분들께는 일부러 많이, 그리고 자주 말을 걸었다. 조용히 씨앗봉투를 응시하며 고민하시던 분들도 막상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드리면 그제서야 편안한 표정으로 궁금했던 점을 마구마구 질문해주셨다. 여유로운 대화가 우리에게도 꽤 활력이 되길래 나중에 ‘우리만의 쇼룸'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하니 배우고 느끼는 것이 늘고 있다. ‘경험치'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summer pop-up] takeout garden
스탠다드에이 서교동 쇼룸 내 워크룸
2021.6.19 - 7.4, 11-19시
글 | 씨드키퍼 사진 | 정태윤 jeongtae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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