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에 가까운 연둣빛 어린 나뭇잎이 반짝이던 5월, 피크닉과 함께 주말 마켓을 준비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에겐 씨드키퍼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식물 마켓을 기획해보는 일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9월쯤에는 작은 규모라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차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 반가운 기회였지만, 남은 시간은 겨우 3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에 기뻐할 시간도 없을 만큼 촉박한 일정이었다.
피크닉 <정원 만들기>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인 주말 마켓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포인트는 ‘시작하는 마음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여유로운 주말 기분을 한껏 누린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만의 정원 하나쯤 품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식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제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테넌트를 구성할 때는 전반적인 제품이나 분위기의 균형을 잡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카테고리별로 꼭 소개하고 싶은 팀을 정리해 피크닉에게 제안했을 때, 통 크게 믿고 시원하게 지지해준 덕분에 다양한 식물 취향을 아우르는 팀을 세팅할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지 않아도 방문할 수 있는 오픈 마켓이었기에 건물을 빙 둘러 산책할 수 있도록 짜임새있는 동선을 확보하고 싶었다. 유리 온실과 뒷마당까지 공간을 여유롭게 쓰기로 의견을 통일한 다음, 피크닉 팀과 우리는 각자 구역을 나눠 콘텐츠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초소형 씨앗 가게를 만들다
우리는 유리온실을 맡았는데, 결코 좁지 않은 이 공간을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채워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초반에는 씨앗 파종부터 식물 분갈이까지 체험할 수 있는 플랜팅 서비스를 기획했으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면적이나 동선에 한계가 있었다. 유리온실 중간부를 가로지르는 대형화단은 그대로 두어야 했기에 체험형 콘텐츠로 채울 경우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버거울 터였다. 그러나 때로는 제한된 조건이 힌트가 되곤 한다. 온실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는 대형 화단은 오히려 가장자리를 따라 물 흐르듯이 막힘없는 동선을 만들어주기에 최적이었다. 5월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피크닉의 주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붐빌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무엇보다 잠시 들렀다 가는 방문객 비중이 클 것이라 예상했기에 부담없이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의 선호도가 높을 것 같았다. 이 기회에 그동안 줄곧 꿈꿔왔던 이동식 씨앗가게를 구현해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쌍둥이같은 두 개의 씨앗보드. 프레임은 잦은 이동을 버틸 내구성과 앞뒤로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무거워야 하는 점을 고려해 참나무 원목으로 제작했다. 흰색으로 도장된 타공판은 씨앗 봉투 50개가 알맞게 들어가는 사이즈로, 자석과 후크 사용이 용이한 스틸 소재로 제작되었다.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준 스탠다드에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우리는 보통 킥오프 단계에서는 한계를 정하지 않은 채 상상 가능한 최대치를 구상해두고, 일정과 현장 상황 등 주어진 조건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름해나가는 작업을 한다. 한쪽 벽을 씨앗으로 가득 채우고자 했던 두 번째 아이디어의 경우, 온실 벽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보니 별도 가구를 고정하기가 어려워 좀 더 이동과 조립이 수월한 형태에 초점을 맞춰 기획을 수정해나갔다. 사실 이동식 씨앗가게가 목표였기에 씨앗 디스플레이는 전국 어디로든 운반 가능한 단위로 축소하는 것이 최적이기도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최종안은 원목가구 브랜드 스탠다드 에이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50가지 씨앗보드'였다. 씨드키퍼의 첫 제작 가구이기도 한 이 씨앗보드는 같은 디자인으로 두 개 제작해 공간의 면적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피크닉의 유리온실에는 두 개를 나란히 놓아 볼륨감을 살리기로 했다.
테이크 아웃 가든
gardens for sale!
우리가 판매하는 씨앗키트는 각 테마에 어울리는 씨앗을 선별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씨드키퍼만의 큐레이션이 특징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씨앗이 한데 모아진 제품의 경우 장단이 확실한데, 다양한 씨앗을 한 번에 접할 수 있어 간편한 반면 큐레이션 된 씨앗에 대한 개인 선호가 모두 다를 수 있다. 이런 약점을 적극적으로 전복시키고자 피크닉 주말 마켓을 준비하며 50가지 씨앗보드와 더불어 ‘테이크아웃 씨앗키트'를 동시 런칭했다. 브랜드의 시작과 함께 이미 네 개의 씨앗키트를 개발했고, 그 뒤를 이어 바로 피크닉과의 협업으로 블룸 씨앗키트를 선보였던지라 당분간 새로운 키트 개발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 또한 빗나갔다. 즐겁고, 가치있고, 필요하다 생각들면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더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모든 상황이 다이나믹하게 흘렀다.
온실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씨앗 보드. 마치 이 온실에서 태어난 듯 공간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씨앗보드의 자매품 씨앗박스. 이 박스만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거뜬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50가지 씨앗보드에는 구매하는 사람의 필요와 취향에 맞춘 '나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꽃과 허브, 채소 씨앗을 골고루 섞었다. 씨앗은 종류별로 소분하여 각각의 봉투에 넣어 포장했는데, 이때 색상 중심의 재식 설계 방법에서 모티브를 얻어 씨앗보드 전체가 하나의 정원처럼 보일 수 있도록 씨앗봉투의 택에 고유의 색을 입혔다. 테이크아웃 씨앗키트에는 씨앗을 제외한 기본 구성품만 들어있고, 구매하는 사람은 50가지 씨앗 보드에서 원하는 씨앗을 다섯 가지 골라 나만의 씨앗키트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이 조금 낯설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우리의 제안이 담긴 쇼핑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면 요리에 곁들이기 좋은 채소와 허브 씨앗으로 구성된 ’누들 러버 씨앗키트’와 몸에 좋은 특수 씨앗으로 구성된 ‘헬스클럽 씨앗키트’ 등이 그것이다.
피크닉 전시 <정원 만들기>의 취지와도 어울리는 '나만의 한 평 정원'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키트로서 의미-형태-용도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짜릿함도 잠시… 무지가 용기를 빚었던 걸까? 사실 제작하는 당시에는 물리적인 계산을 미처 하지 못한 채 일단 씨앗을 포장하기부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 투자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날 5,000개 가량의 씨앗봉투를 준비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영롱한 씨앗봉투를 줄 세웠을 때의 감동은 이걸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기에 충분했다. 포장하느라 손이 바쁜 내내 머릿속에서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쉽게 볼 수 없을 장관이다 싶어 ‘이건 꼭 보여줘야 한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팝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 1. 마켓형
끝나지 않던 고민과 시시각각 변하던 감정이 모두 생생했던 그 당시보다 거의 5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느끼는 바가 더 많다. 피크닉 주말 마켓 이후로 우리는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시작점이 된 피크닉의 주말 마켓은 마켓형 팝업으로 온실에 입장한 다음 빠르게 브랜드와 물건에 대해 인지하고, 구매하는 룰을 익히고, 원하는 물건을 골라 계산대까지 움직이는 회전과 동선 설계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방문객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50가지 씨앗 보드는 설명이 없으면 첫 진입의 벽을 허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씨드키퍼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우선 브랜드와 제품소개가 잘 전달되어야 했다. 핵심 내용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한 리플렛을 제작해 유리온실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직접 나눠드리며 읽어보시도록 하고 씨앗보드로의 동선을 안내했다. 씨앗보드 옆은 반드시 한 명 이상의 팀원이 지키며 씨앗을 고르는 모든 분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유리온실에는 출입구가 하나 뿐이라 물리적인 공간 구획도 필요했는데, 처음에 기획했던 대로 역시나 온실 중앙의 대형 화단은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을 해주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환상의 팀 덕분이었다. 이번 행사 운영을 위해서 다섯 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되었고,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씨드키퍼의 첫 TFT를 만들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둘이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니,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비록 이틀간이었지만 폭발적인 트래픽을 경험해보니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면 좋을지 알게 된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가능성에 대한 확신, 그 확신을 딛고 선 발전이 동시에 가능했던 귀한 순간이었달까. 우리가 좋아한 것을 남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짧게나마 나눈 대화 속에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반면 사람들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하니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꾸준하게 전달할지에 대한 숙제도 생겼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일이 많아지니 관점이 달라진다. 모든 일이 새롭게 보였다.
작디 작은 씨앗과 식물들 앞에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한참을 머물며 씨앗을 하나하나 살피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음을 느꼈다. ‘아, 이 일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다.’ 누군가의 집에서 터를 잡았을 그 날의 씨앗들처럼, 우리도 이제 막 세상으로 나와 뿌리를 뻗었다.
5월의 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계절
시작하는 사람들의 주말 마켓
형광에 가까운 연둣빛 어린 나뭇잎이 반짝이던 5월, 피크닉과 함께 주말 마켓을 준비할 기회가 생겼다. 우리에겐 씨드키퍼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식물 마켓을 기획해보는 일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9월쯤에는 작은 규모라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차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 반가운 기회였지만, 남은 시간은 겨우 3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에 기뻐할 시간도 없을 만큼 촉박한 일정이었다.
피크닉 <정원 만들기>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인 주말 마켓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포인트는 ‘시작하는 마음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여유로운 주말 기분을 한껏 누린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만의 정원 하나쯤 품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식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제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테넌트를 구성할 때는 전반적인 제품이나 분위기의 균형을 잡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카테고리별로 꼭 소개하고 싶은 팀을 정리해 피크닉에게 제안했을 때, 통 크게 믿고 시원하게 지지해준 덕분에 다양한 식물 취향을 아우르는 팀을 세팅할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지 않아도 방문할 수 있는 오픈 마켓이었기에 건물을 빙 둘러 산책할 수 있도록 짜임새있는 동선을 확보하고 싶었다. 유리 온실과 뒷마당까지 공간을 여유롭게 쓰기로 의견을 통일한 다음, 피크닉 팀과 우리는 각자 구역을 나눠 콘텐츠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초소형 씨앗 가게를 만들다
우리는 유리온실을 맡았는데, 결코 좁지 않은 이 공간을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채워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초반에는 씨앗 파종부터 식물 분갈이까지 체험할 수 있는 플랜팅 서비스를 기획했으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면적이나 동선에 한계가 있었다. 유리온실 중간부를 가로지르는 대형화단은 그대로 두어야 했기에 체험형 콘텐츠로 채울 경우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버거울 터였다. 그러나 때로는 제한된 조건이 힌트가 되곤 한다. 온실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는 대형 화단은 오히려 가장자리를 따라 물 흐르듯이 막힘없는 동선을 만들어주기에 최적이었다. 5월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피크닉의 주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붐빌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무엇보다 잠시 들렀다 가는 방문객 비중이 클 것이라 예상했기에 부담없이 가볍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의 선호도가 높을 것 같았다. 이 기회에 그동안 줄곧 꿈꿔왔던 이동식 씨앗가게를 구현해보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쌍둥이같은 두 개의 씨앗보드. 프레임은 잦은 이동을 버틸 내구성과 앞뒤로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무거워야 하는 점을 고려해 참나무 원목으로 제작했다. 흰색으로 도장된 타공판은 씨앗 봉투 50개가 알맞게 들어가는 사이즈로, 자석과 후크 사용이 용이한 스틸 소재로 제작되었다.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준 스탠다드에이에게 감사를 전한다.
우리는 보통 킥오프 단계에서는 한계를 정하지 않은 채 상상 가능한 최대치를 구상해두고, 일정과 현장 상황 등 주어진 조건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름해나가는 작업을 한다. 한쪽 벽을 씨앗으로 가득 채우고자 했던 두 번째 아이디어의 경우, 온실 벽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보니 별도 가구를 고정하기가 어려워 좀 더 이동과 조립이 수월한 형태에 초점을 맞춰 기획을 수정해나갔다. 사실 이동식 씨앗가게가 목표였기에 씨앗 디스플레이는 전국 어디로든 운반 가능한 단위로 축소하는 것이 최적이기도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최종안은 원목가구 브랜드 스탠다드 에이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50가지 씨앗보드'였다. 씨드키퍼의 첫 제작 가구이기도 한 이 씨앗보드는 같은 디자인으로 두 개 제작해 공간의 면적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피크닉의 유리온실에는 두 개를 나란히 놓아 볼륨감을 살리기로 했다.
테이크 아웃 가든
gardens for sale!
우리가 판매하는 씨앗키트는 각 테마에 어울리는 씨앗을 선별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씨드키퍼만의 큐레이션이 특징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씨앗이 한데 모아진 제품의 경우 장단이 확실한데, 다양한 씨앗을 한 번에 접할 수 있어 간편한 반면 큐레이션 된 씨앗에 대한 개인 선호가 모두 다를 수 있다. 이런 약점을 적극적으로 전복시키고자 피크닉 주말 마켓을 준비하며 50가지 씨앗보드와 더불어 ‘테이크아웃 씨앗키트'를 동시 런칭했다. 브랜드의 시작과 함께 이미 네 개의 씨앗키트를 개발했고, 그 뒤를 이어 바로 피크닉과의 협업으로 블룸 씨앗키트를 선보였던지라 당분간 새로운 키트 개발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던 예상 또한 빗나갔다. 즐겁고, 가치있고, 필요하다 생각들면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었더니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모든 상황이 다이나믹하게 흘렀다.
온실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씨앗 보드. 마치 이 온실에서 태어난 듯 공간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씨앗보드의 자매품 씨앗박스. 이 박스만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거뜬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50가지 씨앗보드에는 구매하는 사람의 필요와 취향에 맞춘 '나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꽃과 허브, 채소 씨앗을 골고루 섞었다. 씨앗은 종류별로 소분하여 각각의 봉투에 넣어 포장했는데, 이때 색상 중심의 재식 설계 방법에서 모티브를 얻어 씨앗보드 전체가 하나의 정원처럼 보일 수 있도록 씨앗봉투의 택에 고유의 색을 입혔다. 테이크아웃 씨앗키트에는 씨앗을 제외한 기본 구성품만 들어있고, 구매하는 사람은 50가지 씨앗 보드에서 원하는 씨앗을 다섯 가지 골라 나만의 씨앗키트를 완성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이 조금 낯설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우리의 제안이 담긴 쇼핑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면 요리에 곁들이기 좋은 채소와 허브 씨앗으로 구성된 ’누들 러버 씨앗키트’와 몸에 좋은 특수 씨앗으로 구성된 ‘헬스클럽 씨앗키트’ 등이 그것이다.
피크닉 전시 <정원 만들기>의 취지와도 어울리는 '나만의 한 평 정원'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키트로서 의미-형태-용도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짜릿함도 잠시… 무지가 용기를 빚었던 걸까? 사실 제작하는 당시에는 물리적인 계산을 미처 하지 못한 채 일단 씨앗을 포장하기부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하는 인적 투자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날 5,000개 가량의 씨앗봉투를 준비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영롱한 씨앗봉투를 줄 세웠을 때의 감동은 이걸 앞으로도 몇 번이고 더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기에 충분했다. 포장하느라 손이 바쁜 내내 머릿속에서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쉽게 볼 수 없을 장관이다 싶어 ‘이건 꼭 보여줘야 한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팝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 1. 마켓형
끝나지 않던 고민과 시시각각 변하던 감정이 모두 생생했던 그 당시보다 거의 5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느끼는 바가 더 많다. 피크닉 주말 마켓 이후로 우리는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시작점이 된 피크닉의 주말 마켓은 마켓형 팝업으로 온실에 입장한 다음 빠르게 브랜드와 물건에 대해 인지하고, 구매하는 룰을 익히고, 원하는 물건을 골라 계산대까지 움직이는 회전과 동선 설계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방문객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50가지 씨앗 보드는 설명이 없으면 첫 진입의 벽을 허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씨드키퍼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우선 브랜드와 제품소개가 잘 전달되어야 했다. 핵심 내용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한 리플렛을 제작해 유리온실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직접 나눠드리며 읽어보시도록 하고 씨앗보드로의 동선을 안내했다. 씨앗보드 옆은 반드시 한 명 이상의 팀원이 지키며 씨앗을 고르는 모든 분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유리온실에는 출입구가 하나 뿐이라 물리적인 공간 구획도 필요했는데, 처음에 기획했던 대로 역시나 온실 중앙의 대형 화단은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을 해주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환상의 팀 덕분이었다. 이번 행사 운영을 위해서 다섯 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되었고,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씨드키퍼의 첫 TFT를 만들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둘이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니,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비록 이틀간이었지만 폭발적인 트래픽을 경험해보니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면 좋을지 알게 된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가능성에 대한 확신, 그 확신을 딛고 선 발전이 동시에 가능했던 귀한 순간이었달까. 우리가 좋아한 것을 남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니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짧게나마 나눈 대화 속에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반면 사람들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하니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꾸준하게 전달할지에 대한 숙제도 생겼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일이 많아지니 관점이 달라진다. 모든 일이 새롭게 보였다.
작디 작은 씨앗과 식물들 앞에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만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 것만 같았다. 한참을 머물며 씨앗을 하나하나 살피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음을 느꼈다. ‘아, 이 일이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다.’ 누군가의 집에서 터를 잡았을 그 날의 씨앗들처럼, 우리도 이제 막 세상으로 나와 뿌리를 뻗었다.
[spring pop-up] takeout garden
피크닉 WEEKEND MARKET
2021.5.29 - 5.30, 11-17시
공동 기획
피크닉, 씨드키퍼
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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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씨드키퍼 사진 | 정태윤 jeongtaeyoo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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