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게 관찰하고 귀 기울여주는 것… 중요한 육아의 원칙인 것 같은데 사실 지난 2년 반 남짓의 시간 동안에는 제가 아기에게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최근에는 온유가 자기의 의견을 꽤나 논리적으로 말하고 (귀여운)말대꾸를 하기 시작해서 귀 기울여 듣는 만큼 훈육해야 하는 일도 많아졌어요. 얼마 전에 혜성씨 만났을 때도 말씀드렸었죠. 온유가 양치질을 하는데 치약을 짜고 또 짜는 바람에 결국 양치질을 20분 동안이나 했다고요. 20분이나 했어도 제가 마무리를 해줘야 하는데 계속 혼자하겠다고만 고집을 부려서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몰라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에 참을인 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참지 못하는 날도 많아요. 그래도 온유가 어떤 발달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을 보이는지 아이의 눈빛을 따라가고 서툰 말을 귀기울여 들어보는 것 밖에는 아이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아이와 어떻게 놀 것인지, 가르쳐야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더라고요.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응답,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관계와 신뢰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고로 상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진리를 저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신생아 때는 욕구불만을 울음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요. 배가 고픈 것인지 기저귀가 젖은 것인지 일으켜 안아달라는 것인지, 엄마 아빠가 그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차리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아이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가득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왜 불만족스러운지 알아차릴 수 있거든요. 정신분석학 박사이자 심리치료사이신 이수련 선생님의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건 그 사람이 그것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달라고 했을 때 받지 못하면 ‘달라고 했던 것’뿐만 아니라 애초에 ‘달라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까지 실망하게 된다고 해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달라고 한 것을 받지 못할 때 더불어 받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로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젖을 달라는 아이에게 엄마는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을 넘어서 나에게 사랑을 주고 나에게 응답해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응답,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관계와 신뢰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는 덕분에 오랜만에 온유와 종일 붙어있게 되었어요. 저는 아이와 집에서 꽁냥거리며 노는 게 힘들어서 온유가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거의 매일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집에 있으면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들 때문에 온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게 어렵기도 하고 대화의 소재나 놀이도 제한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집 앞에만 나가면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날아다니는 새들, 아이의 시선을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곤충들만 구경해도 시간이 훌쩍 흐르고 대화도 더욱 풍부해져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산책하고 간식도 나누어 먹고 나면 낮잠도 쉽게 들어서 남은 일과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번 어린이집 휴원기간에도 그 생각으로 온유와 마스크를 쓴 채 산책도 하고 더위에 맞서 놀았어요. 이제는 모래놀이도 즐길 수 있게 되어서 장비를 단단히 챙겨 모래놀이터에서 2-3시간씩 열정을 쏟아붓기도 했어요. 그렇게 며칠 시간을 보내면서 ‘아 작년에 비하면 나도 요령이 생겨서 아이와 꽤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일과를 보내고 있구나!’하고 자만할 때쯤 이렇게 매일 시간을 버티는게 맞나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어요. 작년, 그러니까 온유가 만 한 살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대근육발달에 도움이 되고 언어발달에도 많은 자극이 되어서 그만한 좋은 놀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신체와 언어, 인지와 사고, 애착관계와 사회성 등 모든 면에서 아이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 제 눈에도 훤히 보이고,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라는 36개월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여러가지 생활습관과 사회적인 규칙들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하는 것은 아닌지, 책도 종류별로 더 많이 읽어주고 싶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접하고 익혔으면 좋겠는데 마음은 조급하면서 또 하나하나 어떻게 준비하고 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육아라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진 강박과 조급함을 먼저 내려놓고 출발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교구 홍보문구에서 눈에 띄는 ‘결정적 시기’랄지 ‘골든타임’과 같은 단어들은 다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나, 시기에 맞게 잘하고 있는건가 돌아보게 되는데 언제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가득해요. 그때 좀 더 꼼꼼히 챙겼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책은 육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저에게 육아는 아이의 성장에 앞선 실체없는 걱정과 불안을 다스리는 훈련이자 수행 같습니다.
육아라는게 할면 할수록 단순히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돌보는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속도와 방향을 맞춰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세 살이면 엄마도 세 살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은 아이로부터 시작하고, 육아는 나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런 결심을 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인생은 끝없는 연습과 훈련이 아닐까요. 저도 ‘엄마 세 살’로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온유와 같이 배우고 성장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 같이 성장하다보면 언제가 온유와 같이 발 맞춰 춤을 추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그런 의미에서 혜성씨와 주고 받는 글도 끊임없이 저를 돌아보고 위로받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 글은 저를 향해 있고(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무언가를 향해 글을 쓸 줄도 모릅니다만) 혜성씨의 글도 저를 향해 있는 것 같아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혜성씨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혜성씨의 어린 시절 기억은 어떤가요?
8월 10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편지,
사랑은 아이로부터, 육아는 엄마로부터
세심하게 관찰하고 귀 기울여주는 것… 중요한 육아의 원칙인 것 같은데 사실 지난 2년 반 남짓의 시간 동안에는 제가 아기에게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실 최근에는 온유가 자기의 의견을 꽤나 논리적으로 말하고 (귀여운)말대꾸를 하기 시작해서 귀 기울여 듣는 만큼 훈육해야 하는 일도 많아졌어요. 얼마 전에 혜성씨 만났을 때도 말씀드렸었죠. 온유가 양치질을 하는데 치약을 짜고 또 짜는 바람에 결국 양치질을 20분 동안이나 했다고요. 20분이나 했어도 제가 마무리를 해줘야 하는데 계속 혼자하겠다고만 고집을 부려서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몰라요.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에 참을인 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참지 못하는 날도 많아요. 그래도 온유가 어떤 발달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을 보이는지 아이의 눈빛을 따라가고 서툰 말을 귀기울여 들어보는 것 밖에는 아이를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아이와 어떻게 놀 것인지, 가르쳐야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더라고요.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응답,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관계와 신뢰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고로 상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진리를 저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신생아 때는 욕구불만을 울음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데요. 배가 고픈 것인지 기저귀가 젖은 것인지 일으켜 안아달라는 것인지, 엄마 아빠가 그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차리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아이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가득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왜 불만족스러운지 알아차릴 수 있거든요. 정신분석학 박사이자 심리치료사이신 이수련 선생님의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건 그 사람이 그것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달라고 했을 때 받지 못하면 ‘달라고 했던 것’뿐만 아니라 애초에 ‘달라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까지 실망하게 된다고 해요.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달라고 한 것을 받지 못할 때 더불어 받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로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젖을 달라는 아이에게 엄마는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을 넘어서 나에게 사랑을 주고 나에게 응답해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원하고 바라는 것에 대한 응답,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관계와 신뢰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는 덕분에 오랜만에 온유와 종일 붙어있게 되었어요. 저는 아이와 집에서 꽁냥거리며 노는 게 힘들어서 온유가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거의 매일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집에 있으면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들 때문에 온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게 어렵기도 하고 대화의 소재나 놀이도 제한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집 앞에만 나가면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날아다니는 새들, 아이의 시선을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곤충들만 구경해도 시간이 훌쩍 흐르고 대화도 더욱 풍부해져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산책하고 간식도 나누어 먹고 나면 낮잠도 쉽게 들어서 남은 일과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번 어린이집 휴원기간에도 그 생각으로 온유와 마스크를 쓴 채 산책도 하고 더위에 맞서 놀았어요. 이제는 모래놀이도 즐길 수 있게 되어서 장비를 단단히 챙겨 모래놀이터에서 2-3시간씩 열정을 쏟아붓기도 했어요. 그렇게 며칠 시간을 보내면서 ‘아 작년에 비하면 나도 요령이 생겨서 아이와 꽤 체계적이고 재미있는 일과를 보내고 있구나!’하고 자만할 때쯤 이렇게 매일 시간을 버티는게 맞나 하는 불안감이 찾아왔어요. 작년, 그러니까 온유가 만 한 살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대근육발달에 도움이 되고 언어발달에도 많은 자극이 되어서 그만한 좋은 놀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신체와 언어, 인지와 사고, 애착관계와 사회성 등 모든 면에서 아이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 제 눈에도 훤히 보이고,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라는 36개월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것인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여러가지 생활습관과 사회적인 규칙들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하는 것은 아닌지, 책도 종류별로 더 많이 읽어주고 싶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접하고 익혔으면 좋겠는데 마음은 조급하면서 또 하나하나 어떻게 준비하고 해야할지 막막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문득, 육아라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진 강박과 조급함을 먼저 내려놓고 출발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교구 홍보문구에서 눈에 띄는 ‘결정적 시기’랄지 ‘골든타임’과 같은 단어들은 다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나, 시기에 맞게 잘하고 있는건가 돌아보게 되는데 언제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가득해요. 그때 좀 더 꼼꼼히 챙겼어야 하는데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책은 육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저에게 육아는 아이의 성장에 앞선 실체없는 걱정과 불안을 다스리는 훈련이자 수행 같습니다.
육아라는게 할면 할수록 단순히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돌보는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속도와 방향을 맞춰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세 살이면 엄마도 세 살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은 아이로부터 시작하고, 육아는 나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이런 결심을 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인생은 끝없는 연습과 훈련이 아닐까요. 저도 ‘엄마 세 살’로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온유와 같이 배우고 성장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렇게 같이 성장하다보면 언제가 온유와 같이 발 맞춰 춤을 추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그런 의미에서 혜성씨와 주고 받는 글도 끊임없이 저를 돌아보고 위로받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 글은 저를 향해 있고(더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무언가를 향해 글을 쓸 줄도 모릅니다만) 혜성씨의 글도 저를 향해 있는 것 같아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혜성씨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혜성씨의 어린 시절 기억은 어떤가요?
8월 10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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