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레터투레터 5. 뭉게뭉게 구름이 하고 싶은 대로 (7.29, 가은)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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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편지,

뭉게뭉게 구름이 하고 싶은 대로



Stefano Zocca

엄마 나무의 그늘에서 자식들이 해를 보지 못할까봐 최대한 멀리 떼어놓는다니, 말만 들어도 벌써 마음이 저릿저릿하네요. 온유가 들꽃 같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씩씩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저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나무는 어떻게 그런 지혜를 알고 있는 걸까요. 지혜라기보단 자연의 섭리겠지요. 어쩐지 경건해집니다. 




'내가 아무리 정성을 흠뻑 쏟아도

구름을 길들일 수는 없어.'


혜성씨의 글을 읽고 또 다른 그림책이 떠올랐어요. <뭉게뭉게 구름을 잡으면>이라는 제목의 그림책인데요. 한 아이가 등장해요. 아이는 오솔길을 걷다가 구름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요. 떨어지기를 기다릴지, 돌멩이를 툭 던져서 떨어뜨릴지. 구름은 잡으려 하면 날아가고 잊고 모른 척하려 하면 또 슬그머니 다가와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내가 아무리 정성을 흠뻑 쏟아도 구름을 길들일 수는 없어.’라는 문장이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구름을 아이로 읽었는데, 부모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내 편의대로 길들이려고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또 정성어린 마음과 사랑을 쏟아부어도 구름은 구름의 본성대로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할텐데 혜성씨 말대로 저도 온유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온유의 본성대로, 온유가 가진 기질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고 지켜봐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어요. 매일매일 실천하는게 어려운 거지만 그때마다 혜성씨의 편지와 이 그림책을 꺼내보며 지금의 마음을 되새겨야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아이의 본성과 기질이 사회적인 질서나 규칙과 충돌할 때에요. 며칠 전 엘레베이터에서 온유와 둘이 대화를 나눌 때였어요. 신이 났는지 온유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예요. 몇 층 안가서 한 중년 남성분이 엘레베이터를 타셨는데 평소 같았으면 낯을 가려서 하던 말을 멈추거나 저에게 안겨 작은 소리로 얘기했을텐데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는지 잠시 주춤하는 것 같더니 다시 목소리가 커지더라고요. 마스크를 끼고 있긴 했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온유에게 “여기서 얘기하는거 아니야.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온유에게 다정하게 “얘기해도 돼~”라고 하시고는 저에게도 조심스러운 말투로 “잘한다 잘한다 해야 애들이 잘 크지, 요즘 애들은 너무 안된다는 말만 듣고 크는 거 같아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지나가는 말이라도 아이에게 그렇게 얘기해주시는게 감사하면서도 저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온유에게 ‘안된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건 사실 저였던 거예요.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이라는 이유를 들어가며 온유에게 차분히 설명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온유가 다른 어른들로부터 꾸짖음을 듣거나 만에 하나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봐, 또 아이를 버릇없이 키운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지레 걱정하고 제가 먼저 온유를 막아섰던 거죠. 또 가끔은 온유가 공공질서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미리 환경을 통제시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혹시나 큰소리로 떠들거나 식기 등을 던지는 일이 생길까봐 시선을 돌리기 위해 유튜브를 켜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아이들이 큰 소리를 내거나 뛰어다니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울고 소리질러도 ‘아이들이란 원래 그런거지’라고 생각하는데, 유독 내 아이에게는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길 바라고 잔소리를 하게 돼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의 피해라도 끼칠까봐 전전긍긍하며 아이를 과하게 통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온유는 차근차근 설명하면 대부분 알아듣고 따르는 편이라 그럴 때마다 기특하면서도 짠한 마음이 드는데 그렇게 제가 이 아이를 ‘길들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큰 피해가 되거나 공공의 질서를 저해하는 행동이라면 훈육하고 제지하는게 맞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영유아인 경우에는 훈육이 해답이 될 수 없는데도 자주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온유와 제가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우리로 인해 누군가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은 저렇더라’하는 편견을 갖게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어요. 맘충, 노키즈존과 같은 단어가 등장하고 쓰이는 걸 보면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그렇게 아이들과 부모들,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을 타자화함으로써 영영 그들과 대화할 수 없게 되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어린이들도 다 같은 시민이고 우리 모두 가장 어린 시민의 시기를 거쳐 이렇게 성숙한 시민이 되었는데 말이에요. 






점점 무거운 이야기가 되네요. 다시 <뭉게뭉게 구름을 잡으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마지막에 주인공 아이가 “뭉게뭉게 둥실둥실 구름이 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두어야겠지.”라고 읊조리듯 말해요. 저는 구름을 온유로 읽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육아를 포함해서 사랑이란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 사랑의 의미를 더 넓게 펼쳐서 보자면 우리 사회의 어른들, 저를 포함해 철없는 어린 시절을 지나 성숙한 시민이 된 진짜 어른들이 가장 어린 시민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포용해 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아이들이 또 멋있는 어른으로 ‘잘’ 컸으면 좋겠어요. 물론 온유도요!



7월 29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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