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3. 들꽃 같은 아이 (7.23, 가은)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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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편지,
들꽃 같은 아이




혜성씨의 답장을 받고 사회초년생이었던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짧고도 긴 시간을 찬찬히 되돌아보았어요. 전시를 만들고자 했을 때도, 공간을 기획하고 직접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만날 때도, 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며 살아가는지도요. 지금은 온유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읽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아이의 삶에 있어서도, 저의 삶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온유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읽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관찰하는 일은 온유가 태어나기 전 일했던 어린이 작업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업무였어요. 아이들 개개인의 일상과 작업, 미묘한 관계들, 점수로 매길 수 없는 크고 작은 변화와 성장들을 알아차리고 그것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일은 일로써만이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인지 엄마가 되고 나서도 아이를 관찰하고 꼼꼼히 살피는 것은 꽤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아이를 키워보니 관찰을 잘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더라고요. 사소한 생활습관부터 규칙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고 놀이나 교육적인 면도 발달 과정에 맞게 꼼꼼히 챙겨야 해요. 아직 말로 다 가르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보고 배우는게 더 많고 그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무래도 조금 일찍 가르쳐야 하는게 많아졌어요.




엔조 아르노네가 찍고 브루노 무나리가 기록한 사진집 <CICCI COCCO>의 장면들. 온유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런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일상을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억해주는 것, 삶의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두돌이 지나자마자 온유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아이의 일상도 조금은 복잡해졌고, 그 안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감정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학부모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하나 더 갖게 되었고 참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온유가 친구와 놀다가 실수로 얼굴을 할퀴었는데 조금 상처가 난 모양이에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다친 아이와 아이의 부모, 선생님들에게도 너무 죄송했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안그래도 요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이 많은데 온유가 괜히 밉보이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고 집에서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소리를 듣진 않을까 속상했습니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역시 36개월까지는 집에 데리고 있는게 나은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온유가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마주했을 복잡한 감정들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어요.'


온유를 데리고 나오면서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그러면 안된다는 걸 설명해줬어요. 아직 자기 생각을 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어요. 그런데 집에 오는 내내 온유 기분이 안 좋아보이더라고요. 아프거나 피곤한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날은 그냥 안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하길래 일찍 씻겨 눕혔더니 온유는 감정을 소진한듯이 쓰러져 금방 잠에 들어버렸어요. 그제서야 온유가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마주했을 복잡한 감정들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달됐어요. 그때까지 저는 온유의 기분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에요. 세상이 엄마, 아빠, 자신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다양한 관계와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일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된 아이가 엄마 아빠 없이 그 모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 그만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아이가 가진 모습 그대로,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아름다운 들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주어야 하는데 다른 시선들이 두려워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일이 있은지 며칠 후에 우연히 <어디서나 빛나는 댄디라이언>이라는 그림책을 읽었어요. 노란 갈기가 복슬복슬한 민들레 사자 댄디라이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이에요. 밝고 명랑한 댄디라이언은 교실에서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지만 반 친구들과는 모습과 행동이 너무 달라서 점점 말썽쟁이로 여겨져요. 친구들과 선생님은 댄디라이언을 부담스러워하고 자신이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댄디라이언은 학교에 가지 않아요. 친구들에게 ‘잡풀’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퍼하는 댄디라이언에게 할아버지는 “잡풀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들꽃이란다. 너는 아름다운 들꽃이야. 그러니 네 자리를 찾아서 사람들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렴.”하고 다독여줘요. 친구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온 댄디라이언을 반겨주고 댄디라이언 덕분에 교실은 점점 색이 다채로워지죠. 그리고 댄디라이언은 그제야 제자리에 핀 들꽃이 된 기분이 들어요.
 



'온유가 들꽃 같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먼저 비와 바람을 흠뻑 머금은

비옥한 토양이 되어야겠지요.'


온유에게 읽어주려고 꺼낸 그림책이었는데 한 장 한 장 읽으면 읽을수록 제가 더 큰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어요. 댄디라이언의 할아버지 말처럼 아이가 어디서든지 자기 자리를 찾아 건강하고 씩씩하게 뿌리내리고 자랄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 주어야 하는데, 너무 걱정되고 속상한 나머지 아이를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비와 바람이 몰려올까봐서요. 그러고보니 아이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비와 바람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기보다는 그로 인해 얼마나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이 진짜 부모의 역할이구나 싶어요. 당장 달려가 비도 바람도 막아주고 싶겠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잠시 숨겨두고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것,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온유가 정말 들꽃 같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먼저 비와 바람을 흠뻑 머금은 비옥한 토양이 되어야겠지요. 부모라는 이름이 그저 아이를 향한 사랑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는 중입니다. 
 


7월 23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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