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가은씨가 참 여러 생각이 들었겠다 싶어요. 그날 온유 마음속 날씨는 흐림이었네요.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에게 생기는 모든 사건이 다 본인 탓인 것만 같다고 하더라고요. 괜한 자책하지 않으셨길... 아마도 그렇게 온유의 세계가 깊어지는 것 아닐까요. 놀라움과 서글픔과 기쁨이 뒤섞이며.
들꽃 같은 아이로 기르고 싶다는 가은씨 말이 저에게도 좋은 지침이 됩니다. 마냥 품에 감싸 안고 키우는 거, 그 역시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그나마 쉬운 길일 것 같아요. 적어도 아이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뚜렷하니까요. 하지만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아이가 넘어졌다가 일어서길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켜볼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해주고 싶은 것이 잔뜩인데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온유의 이야기를 계기로 고민해 보니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적당한 믿음이 아닐까 싶었어요. 아이가 스스로 잘 해낼 거란 믿음,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에 내어줄 수 있는 손과 기댈 수 있는 어깨도요. 농사를 공부하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야무지게 잘 해내겠다고 부지런을 떨어도 결국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더라고요. 자연의 힘을 믿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적당히 하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 믿고 기다리면 시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요. 봄에는 새싹으로 가을에는 노란 들판으로. 앞으로 온유의 세계가 확장될수록 가은씨가 개입해서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생길 텐데, 그럴수록 더 담대한 마음을 갖고 기다림에 능숙한 베테랑 농부가 되길 바라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본성이 잘 발현되어야 하는데,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넓게 펼쳐지길 원하고 흙은 평평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일단 이렇게 심고 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 그 뒤는 버린 듯 해야 한다고 해요. 그 작가님은 아이를 기르는 일이 나무를 키우는 것과 닮았다고 하셨는데, 결국 고유한 본성이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믿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거 아닐까요. 소나무들이 제 자식을 키우는 법도 이와 비슷한데, 그들의 육아 원칙은 오로지 ‘최대한 멀리 떼어 놓기'입니다. 엄마 나무의 그늘에서는 자식들이 그 그늘에 가려 해를 보지 못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네요.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식들을 되도록 멀리 보내려 한답니다. 가지 제일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날 미련 없이 씨앗을 날려 보낸다고 해요. 가은씨의 노력으로 지켜내는 온유와의 거리만큼 가은씨는 더 큰 땅이 되고, 온유는 그 땅의 크기만큼 더 멀리 그리고 아주 깊게 뿌리내리겠지요. 그러면 아마 가은씨가 원하는 대로 씩씩하고 아름다운 들꽃 같은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 같네요. 나무의 육아 원칙을 알고 있는 가은씨는 이미 온유에게 넘치게 풍요로운 땅인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변덕 부리며 늘 새로움을 갱신하여 주니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받아들이고 ‘성장은 팔순까지’를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업으로 ‘이직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0년 동안 10개 넘는 조직을 넘나들며 일했습니다. 가장 최근엔 쉽게 퇴사가 어려운 동업을 시작하여 ‘씨드키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편지,
최대한 멀리 떼어 놓기
Kelly Sikkema
온유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 가은씨가 참 여러 생각이 들었겠다 싶어요. 그날 온유 마음속 날씨는 흐림이었네요.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에게 생기는 모든 사건이 다 본인 탓인 것만 같다고 하더라고요. 괜한 자책하지 않으셨길... 아마도 그렇게 온유의 세계가 깊어지는 것 아닐까요. 놀라움과 서글픔과 기쁨이 뒤섞이며.
들꽃 같은 아이로 기르고 싶다는 가은씨 말이 저에게도 좋은 지침이 됩니다. 마냥 품에 감싸 안고 키우는 거, 그 역시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그나마 쉬운 길일 것 같아요. 적어도 아이에게 어떤 일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뚜렷하니까요. 하지만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아이가 넘어졌다가 일어서길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켜볼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해주고 싶은 것이 잔뜩인데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Viktor Forgacs
온유의 이야기를 계기로 고민해 보니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적당한 믿음이 아닐까 싶었어요. 아이가 스스로 잘 해낼 거란 믿음,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에 내어줄 수 있는 손과 기댈 수 있는 어깨도요. 농사를 공부하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인데, 야무지게 잘 해내겠다고 부지런을 떨어도 결국 사람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더라고요. 자연의 힘을 믿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적당히 하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 믿고 기다리면 시간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요. 봄에는 새싹으로 가을에는 노란 들판으로. 앞으로 온유의 세계가 확장될수록 가은씨가 개입해서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생길 텐데, 그럴수록 더 담대한 마음을 갖고 기다림에 능숙한 베테랑 농부가 되길 바라요.
Annie Spratt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본성이 잘 발현되어야 하는데,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뿌리는 넓게 펼쳐지길 원하고 흙은 평평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일단 이렇게 심고 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 그 뒤는 버린 듯 해야 한다고 해요. 그 작가님은 아이를 기르는 일이 나무를 키우는 것과 닮았다고 하셨는데, 결국 고유한 본성이 잘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믿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거 아닐까요. 소나무들이 제 자식을 키우는 법도 이와 비슷한데, 그들의 육아 원칙은 오로지 ‘최대한 멀리 떼어 놓기'입니다. 엄마 나무의 그늘에서는 자식들이 그 그늘에 가려 해를 보지 못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네요.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식들을 되도록 멀리 보내려 한답니다. 가지 제일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날 미련 없이 씨앗을 날려 보낸다고 해요. 가은씨의 노력으로 지켜내는 온유와의 거리만큼 가은씨는 더 큰 땅이 되고, 온유는 그 땅의 크기만큼 더 멀리 그리고 아주 깊게 뿌리내리겠지요. 그러면 아마 가은씨가 원하는 대로 씩씩하고 아름다운 들꽃 같은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 같네요. 나무의 육아 원칙을 알고 있는 가은씨는 이미 온유에게 넘치게 풍요로운 땅인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7월 25일
혜성 드림
글, 사진 | 문혜성 goldpricepergram@gmail.com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만 집착한 나머지 어느 한 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삶을 살았습니다. 쉽게 변덕 부리며 늘 새로움을 갱신하여 주니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좌절한 적이 있으나, 어쩔 수 없는 팔자라고 받아들이고 ‘성장은 팔순까지’를 목표로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을 업으로 ‘이직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10년 동안 10개 넘는 조직을 넘나들며 일했습니다. 가장 최근엔 쉽게 퇴사가 어려운 동업을 시작하여 ‘씨드키퍼’란 이름으로 주어진 공간에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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