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사람들]레터투레터 1. 작고 소중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7.11, 가은)
2021-08-15
조회수 1987
첫 번째 편지,
작고 소중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혜성씨,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씨드키퍼 팀의 조언대로 장마가 다 지나가면 매직빈 키트를 심어보려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장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그래도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며칠 전에는 거대한 무지개도 구경했어요. 태어나서 무지개를 본 기억이 몇 번 없기도 하고 그마저도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져서 정말로 무지개를 본 게 맞나 싶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무지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어요. 무지개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색깔인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상상하고 대화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다보니 무지개를 봤다는 것이 진짜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갖게 된 바람 중 하나가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것인데 무지개처럼 반짝거리는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기뻐요.
'무지개를 봤다는 것이 진짜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어요.'
인사가 너무 길었네요! 혜성씨는 씨앗들과 함께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7년 전 대학로에서 마주친 이후로 혜성씨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때도 주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을 했지 직접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이런저런 행사에서 한두 번 마주치고 인사를 한게 다였는데도 얼마 전 다혜씨를 통해 혜성씨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두 분이 함께 새로운 일을 하게 됐다는 것과 함께 사실 혜성씨의 진짜 꿈은 농부라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왠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혜성씨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아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세심하고 따뜻한 그런 분위기요.
가장 오래된, 거의 유일한 취미였고 한때는 업이었던 전시. 그래서 투명한 마음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 어쩐지 마음이 헛헛할 때, 현재의 시간들이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 본능적으로 작품에서 위안을 얻는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게 되었다.
다혜씨를 만날 때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들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어느날 다혜씨가 씨앗을 키우는 일과 아이를 기르는 일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며 혜성씨와 다같이 만나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두 분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설렜지만, 단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작고 소중한 존재를 돌보는 여전히 미숙한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로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답니다(사실 우리 셋이 시기는 달랐지만 같은 어린이 작업실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공감대가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아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들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고 주변의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돼요. 그런데 사실 아이를 돌보면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건 한 생명, 그 존재 자체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것이었어요. 아기를 낳기 전에도 분명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가 무조건적으로 보살펴야 하고 그런 저를 온전히 의지하는 존재는 온유가 처음이거든요. 무조건적으로 보살피면서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가르치고 알려줘야 하고, 저에게 온전히 의지하면서도 자기만의 의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작지만 큰 존재.
'저에게 온전히 의지하면서도
자기만의 의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작지만 큰 존재.'
산책은 아이와 가장 꾸준히 하고 있는 놀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날아다니는 새들, 아이의 시선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곤충들만 구경해도 지루할 틈이 없다. 대화도, 표정도 더욱 풍부해진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연습하거나 배운 적 없이 부딪히면서 경험하고 있으니 문득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했던 첫 1년까지는 크게 어려운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걷고 말하고 뭐든지 배우고 흡수하기 시작하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내 육아관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건 실용적인 육아서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풍부한 삶의 이야기였어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방법적인 것들을 알아보기 전에, 어떤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을 곱씹으면 오히려 답이 간단명료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혜성씨와 나누게 될 대화가 더 기대되었어요(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니고요)! 씨앗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나 식물을 기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를 통해서 제가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온유로부터 배우고 있는 것들, 어쩌면 지난 삶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더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된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꼭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은 아니겠지만요! 어떤 이야기의 싹을 틔울지 그 끝에 어떤 열매가 맺힐지 아직은 잘 그려지지 않지만, 이러한 이야기의 시작 자체가 작고 소중한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혜성씨와의 대화가 저와 온유의 대화로 이어지고 언젠가 온유와 혜성 이모의 대화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첫 번째 편지,
작고 소중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혜성씨,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씨드키퍼 팀의 조언대로 장마가 다 지나가면 매직빈 키트를 심어보려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장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네요. 그래도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며칠 전에는 거대한 무지개도 구경했어요. 태어나서 무지개를 본 기억이 몇 번 없기도 하고 그마저도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져서 정말로 무지개를 본 게 맞나 싶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무지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어요. 무지개가 어떤 모양이고 어떤 색깔인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상상하고 대화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다보니 무지개를 봤다는 것이 진짜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갖게 된 바람 중 하나가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것인데 무지개처럼 반짝거리는 이야기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기뻐요.
'무지개를 봤다는 것이 진짜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어요.'
인사가 너무 길었네요! 혜성씨는 씨앗들과 함께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7년 전 대학로에서 마주친 이후로 혜성씨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때도 주로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을 했지 직접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이런저런 행사에서 한두 번 마주치고 인사를 한게 다였는데도 얼마 전 다혜씨를 통해 혜성씨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두 분이 함께 새로운 일을 하게 됐다는 것과 함께 사실 혜성씨의 진짜 꿈은 농부라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왠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혜성씨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아요.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면서도 세심하고 따뜻한 그런 분위기요.
가장 오래된, 거의 유일한 취미였고 한때는 업이었던 전시. 그래서 투명한 마음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미술관을 자주 찾는다. 어쩐지 마음이 헛헛할 때, 현재의 시간들이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 본능적으로 작품에서 위안을 얻는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게 되었다.
다혜씨를 만날 때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들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어느날 다혜씨가 씨앗을 키우는 일과 아이를 기르는 일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며 혜성씨와 다같이 만나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두 분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설렜지만, 단지 한 아이의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작고 소중한 존재를 돌보는 여전히 미숙한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로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졌답니다(사실 우리 셋이 시기는 달랐지만 같은 어린이 작업실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공감대가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아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들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고 주변의 선배 엄마들에게 물어보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돼요. 그런데 사실 아이를 돌보면서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건 한 생명, 그 존재 자체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한 것이었어요. 아기를 낳기 전에도 분명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가 무조건적으로 보살펴야 하고 그런 저를 온전히 의지하는 존재는 온유가 처음이거든요. 무조건적으로 보살피면서도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가르치고 알려줘야 하고, 저에게 온전히 의지하면서도 자기만의 의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작지만 큰 존재.
'저에게 온전히 의지하면서도
자기만의 의지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작지만 큰 존재.'
산책은 아이와 가장 꾸준히 하고 있는 놀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 날아다니는 새들, 아이의 시선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곤충들만 구경해도 지루할 틈이 없다.
대화도, 표정도 더욱 풍부해진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연습하거나 배운 적 없이 부딪히면서 경험하고 있으니 문득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건강과 안전이 가장 중요했던 첫 1년까지는 크게 어려운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걷고 말하고 뭐든지 배우고 흡수하기 시작하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내 육아관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건 실용적인 육아서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풍부한 삶의 이야기였어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방법적인 것들을 알아보기 전에, 어떤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을 곱씹으면 오히려 답이 간단명료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혜성씨와 나누게 될 대화가 더 기대되었어요(부담을 드리려는 건 아니고요)! 씨앗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나 식물을 기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를 통해서 제가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온유로부터 배우고 있는 것들, 어쩌면 지난 삶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더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된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꼭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은 아니겠지만요! 어떤 이야기의 싹을 틔울지 그 끝에 어떤 열매가 맺힐지 아직은 잘 그려지지 않지만, 이러한 이야기의 시작 자체가 작고 소중한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혜성씨와의 대화가 저와 온유의 대화로 이어지고 언젠가 온유와 혜성 이모의 대화로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7월 11일
가은 드림
글, 사진 | 서가은 kaeunspace@gmail.com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즐거워했는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증인이 되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훗날 아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반갑게 대화할 수 있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르코미술관과 헬로우뮤지움 어린이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어린이 작업실 DD238을 기획하고 운영하였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어린이 작업실 MOYA 임팩트 리서치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편집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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