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삶]우리가 느리게 살고 싶은 이유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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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slow, slow pleasure!

긴 회사생활을 지나 마침내 우리의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더는 조직에 몸과 마음을 재단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한한 자율이라는 문 앞에 놓인 우리는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일과 삶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전부 뒤엎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야 했다. 듬성듬성 차오르는 불안을 누르고 자율이라는 것을 누리기 위해 선택한 것은 ‘느림의 철학’이었다. 무빙워크에 올라타는 것 보다는, 온전한 다리 힘으로 움직여야 하는 삶. 출근과 퇴근 가운데 크림처럼 들어찬 일정은 앞으론 주어진 것이 아니라 획득한 것으로 채워야 했다. 누군가가 주는 압박에서는 벗어났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우리만의 방식을 터득해야 했다. 




굳이 씨앗부터 키워야 하는 그로우 키트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이유도 우리 자신에게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심었던 작은 씨앗이 뿌리내린 순간, 비로소 깨달은 자기 효능감은 이제껏 걸어보지 못한 길에 우리 스스로를 놓아두었다. 씨앗부터 시작하는 식물 생활이라니. 제한 속도란 없는 아우토반 같은 이 시대에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자란 당사자들. 그런 우리가 뒤처지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을 억누르고 조금 다른 선택을 해버렸다. 이왕이면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덕분이다. 


이번에는 한번 느리게 살아보자.


단지 물리적 느림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의 다양성과 절차의 복잡성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뜻이다. 느림은 자율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누구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을 통제하는 삶의 방식이다. 자율의 고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제일 먼저 욕심을 버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보다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을 때 그 이상 가지 않아야 한다. 쉽진 않다. 우린 동시에 서너 가지 일은 거뜬히 처리할 수 있는 멀티태스커들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도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일은 언제나 한 단계 높은 인내를 요구한다. 

느림에는 독특한 힘이 있다. 토막 난 조각들 사이 넓게 벌어지는 틈으로 사유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일단 한번 사유하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어떻게'나 ‘언제'보다는 ‘왜'나 ‘누가'라는 질문이 더 빈번해진다. 질문이 달라지면 관점도 달라진다. ‘어떻게 할까?’ 보다는 ‘왜 해야 하는 걸까?’, ‘언제까지 하지?’ 보다는 ‘누구를 위한 거지?’로. 방향이 틀어진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같은 상황이라도 그 끝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이런 순간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느리게 사는 삶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 여정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일상 속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적합한 것을 고르기 위해서는 삶의 지혜가 절실했다. 빠르기만 했던 우리가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 위해 ‘강령’ 같은 것이 필요했다. 이러한 행동에 이름을 붙이기 모호한 순간 떠오른 영물은 바로 나무늘보였다. 그들은 답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구상에서 4천만 년이나 살아남은 나무늘보가 그렇게 긴 시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게으른 본성’ 때문이다. 그들을 따라 내면의 게으름을 떳떳하게 받아들이고, 느긋해지는 법을 배우자. 


© Javier Mazzeo

한결같이 지속가능하게 사는 나무늘보 식의 지혜는,

하나,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기.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적응하고, 필요한 것을 개발할 수 있다.

둘, 한 템포 느긋하게 행동하기. 
속도전에만 능하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다. 

셋, 가끔은 모험하기. 
살던 대로 살지 않고 틀에서 벗어나면 삶이 확장된다. 

넷, 에너지는 아끼고 되도록 넉넉하지 않기. 
부족함에서 나오는 창의력을 환대하면 언제나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긴다. 

다섯,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떨쳐내기. 
핵심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번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마지막, 자연과 사이좋게 지내기. 
우리도 그들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진실로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여느 때처럼 곧 다가올 불행을 알지 못한 채. 설령 이다음 번뇌라는 손님이 찾아온다 해도, 이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이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특권이라 생각하고 달게 맞이하겠다. 나무늘보 식의 지혜를 마음에 품은 채 함께 느리게 걸어봤으면 한다. 스쳐 지나는 인생의 모든 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누구의 요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글, 사진 | 씨드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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