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EBS국제다큐영화제로부터 개막작인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 연계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가의 발자취를 따라 1984년부터 지난 40여 년간 땅으로 쓴 시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작업을 되짚어가며, 그녀가 조경을 설계할 때 가지는 철학에 대해 기록한 영상이다. 작품 말미에 그녀는,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마지막 과제가 남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꽃과 나무를 예쁘게 다듬는 조경 차원에서 벗어나 생태, 인문학적으로 식물을 바라보고, 국토를 보는 눈을 새롭게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이런 방향성에 깊이 동감한다. 식물을 인문학적인 차원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다시 발견하는 것, 그래서 우리 삶이 조금 더 밝은 방향을 향할 수 있다면 그 맥락 어딘가에 지속가능함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을 것이다.
식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관계
어떻게 식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메세지를 '관계'로 풀어낸다. 가드닝은 그저 넓은 땅에 나무나 꽃을 심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화분이라도 나와 식물과의 관계에서 출발해 돌봄의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아 마무리하는 행위라고 여긴다. 그래서 관계의 시작을 위해 돌보는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때 관계를 맺기 위해 한데 어우러져 살 때 사람과 식물 뿐 아니라 식물과 식물 사이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 식물 사회에는 서로 이웃하여 자랄 때 한쪽 또는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동반식물'이라는 관계가 있다. 동반식물은 서로의 성장 환경에 필요한 여러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더욱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도록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더욱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연결된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반식물은 크게 생육촉진, 해충방제, 상호의존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이것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성장을 돕고 수확량을 늘리는 생육촉진은 ‘필요한 도움을 아낌없이 주는 관계’이다. 바질과 토마토나 당근과 완두콩이 그 예시이다. 물을 좋아하는 바질은 토마토에 남아도는 물을 대신 빨아들여 열과(물이 많아 열매가 터지는 현상)를 예방하고, 반면 토마토는 그늘을 만들어 바질 잎이 강한 빛에 너무 질겨지지 않도록 한다. 지주대가 필요한 완두콩에게 당근의 줄기는 짚고 일어설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쓰러지지 않도록 돕고, 완두콩의 뿌리혹박테리아가 토양을 비옥하게 해서 당근이 더욱 잘 여물 수 있게 돕는다.
해충이 기피하는 냄새를 뿜거나 자신에게 해충을 끌어들이는 해충방제는 ‘어려움에 대신 맞서 도움을 주는 관계’이다. 래디시와 메리골드 또는 셀러리와 한련화가 그러하다. 메리골드가 식물 전체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은 방충 효과가 있는 다양한 화학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식물들 사이에 심어두면 벌레 피해를 예방하는데, 래디시와 메리골드를 함께 심으면 환기가 어려운 실내에서 재배할 때 생기기 쉬운 진딧물이나 토양선충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반면 한련화를 특히 좋아하는 진딧물은 다른 식물이 곁에 있어도 한련화로 모여들기 때문에 셀러리에 생기는 진딧물을 비교적 손쉽게 유인할 수 있다.
연대하여 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상호의존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하는 관계’이다. 레몬밤과 페퍼민트나 코스모스와 파슬리가 있다. 레몬밤과 페퍼민트 두 식물은 방향성 오일을 많이 품고 있어 벌레들이 식물 전체에서 나는 강한 향을 기피해 이웃 식물들에 비교적 충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실외에서는 유익한 곤충들을 불러 모아 천적을 이용해 해충을 예방한다. 코스모스와 파슬리는 자라나는 모습의 물리적 보완을 통해 똑똑한 더불어 살기의 방법을 찾아낸다. 옆으로 퍼지며 자라는 파슬리와 위로 곧게 뻗으며 자라는 코스모스는 서로의 비워진 곳을 채워가며 좁은 공간을 유익하게 활용한다.
이렇게 짝 지어진 두 가지의 동반식물을 흙이 보이는 반투명한 화분 팜팜(palm farm)에 모아심으면 집 안에서도 돌볼 수 있는 작은 정원이 완성된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참여자들이 손바닥만 한 나만의 정원을 직접 가꾸어 나가며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주변과 연결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아름답게 더럽혀진 손
팜팜 가드닝을 진행할 때마다 공간이나 참여자, 계절에 따라 프로그램을 변주한다. 기본적으로는 씨앗을 심고, 흙을 만들고, 어린 식물을 심는 것으로 구성하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을 최대치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이 평소에 접하지 못한 비일상적일수록 더욱 바람직하다. 이런 낯선 감각이 언젠가는 몸에 익어 익숙해지길 바라며 우린 그런 이유에서 되도록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흙을 섞고, 식물을 심는다.
포슬포슬한 피트모스, 바스락거리는 펄라이트, 촉촉하면서도 단단한 바크. 양손을 활짝 펴고 흙 속 깊숙이 찔러 넣어 이리 저리 뒤섞다보면 무뎌졌던 손끝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눈을 감고 손등과 손가락 사이에 닿는 촉감에 집중하다 보면, 긴장은 금세 풀리고 계속해서 흙가루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가드닝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지냈던 미세한 감각들을 부드럽게 다시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활동이다. 놓칠 듯 작지만 깨지지 않을 것 같이 단단한 씨앗, 흙의 까슬하고 거친 질감, 보드라운 어린 잎과 줄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은 비단 식물 뿐 아니라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식물을 돌본다는 것이 모두의 취향이 아니란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가드닝은 사람의 아주 깊숙한 내면으로부터 변화를 불러일으킬 큰 가능성을 지닌 행위다. 당장은 알아차릴 수 없더라도, 한번 맺어진 관계는 이미 싹을 틔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 몸과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더러워진 손으로 스스로 찾은 위로에는 자기효능감이란 흔적이 묻는다.
특히 동반식물을 활용한 팜팜 가드닝의 경우 식물을 통해 나의 관계를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데, 각 동반식물이 어떻게 상생하는지, 그 어울림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이웃하여 자라는 식물들처럼 내 주변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볼 계기가 된다. 이런 계기가 식물과 식물, 식물과 나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로 연결되어 ‘우리는 결국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팜팜 가드닝 워크숍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써내려가는 진심어린 편지로 채워진다. 식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 끝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이르게 된다. '씨앗이라는 아주 작은 단위의 생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씨앗의 생애를 우리의 삶 위에 덧대어 보면 거대하고 장황해 보였던 인생도 조그마한 손바닥 안에 들어온 것처럼 명징해집니다. ' 씨드키퍼를 소개하는 글에 담긴 이 두 개의 문장은 우리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하는 모든 결과물에 대해 말끔하게 설명해준다.
프로그램 내내 시각이나 후각, 촉각 등 오로지 자기 감각에만 몰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몰입은 피로함이 아닌 동적인 쉼이 된다. 우리는 이런 건강한 몰입으로 가득 채워진 에너지가 자신의 밖으로 향해 주변을 돌보는 데 사용되길 바란다.
씨앗을 심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마음을 다시 작은 편지 한 장에 꾹꾹 눌러 담으며 정제해본다. 우리는 씨앗페이퍼 워크숍의 마지막에서도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볼 것을 꼭 권하고 있는데, 구름처럼 피어오른 생각과 마음을 구태여 종이에 써내려가며 그 마음이 더욱 부풀어 올라 짙어지는 경험을 해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워크숍 참여자들을 이 경험의 순간까지 꼭 데려다주고 싶다. 누군가 씨앗을 통해 내 삶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면 바로 거기, 그 지점까지가 지금 씨드키퍼가 꾸준히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역의 희미한 경계일 것이다.
조경가 정영선의 마지막 과제에 동참하기
2023 EBS국제다큐영화제로부터 개막작인 정다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 연계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땅에 쓰는 시>는 정영선 조경가의 발자취를 따라 1984년부터 지난 40여 년간 땅으로 쓴 시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작업을 되짚어가며, 그녀가 조경을 설계할 때 가지는 철학에 대해 기록한 영상이다. 작품 말미에 그녀는,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마지막 과제가 남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꽃과 나무를 예쁘게 다듬는 조경 차원에서 벗어나 생태, 인문학적으로 식물을 바라보고, 국토를 보는 눈을 새롭게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역시 이런 방향성에 깊이 동감한다. 식물을 인문학적인 차원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다시 발견하는 것, 그래서 우리 삶이 조금 더 밝은 방향을 향할 수 있다면 그 맥락 어딘가에 지속가능함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을 것이다.
식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관계
어떻게 식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메세지를 '관계'로 풀어낸다. 가드닝은 그저 넓은 땅에 나무나 꽃을 심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화분이라도 나와 식물과의 관계에서 출발해 돌봄의 과정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아 마무리하는 행위라고 여긴다. 그래서 관계의 시작을 위해 돌보는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때 관계를 맺기 위해 한데 어우러져 살 때 사람과 식물 뿐 아니라 식물과 식물 사이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 식물 사회에는 서로 이웃하여 자랄 때 한쪽 또는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동반식물'이라는 관계가 있다. 동반식물은 서로의 성장 환경에 필요한 여러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더욱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도록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더욱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이렇게 연결된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반식물은 크게 생육촉진, 해충방제, 상호의존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우리는 이것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성장을 돕고 수확량을 늘리는 생육촉진은 ‘필요한 도움을 아낌없이 주는 관계’이다. 바질과 토마토나 당근과 완두콩이 그 예시이다. 물을 좋아하는 바질은 토마토에 남아도는 물을 대신 빨아들여 열과(물이 많아 열매가 터지는 현상)를 예방하고, 반면 토마토는 그늘을 만들어 바질 잎이 강한 빛에 너무 질겨지지 않도록 한다. 지주대가 필요한 완두콩에게 당근의 줄기는 짚고 일어설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쓰러지지 않도록 돕고, 완두콩의 뿌리혹박테리아가 토양을 비옥하게 해서 당근이 더욱 잘 여물 수 있게 돕는다.
해충이 기피하는 냄새를 뿜거나 자신에게 해충을 끌어들이는 해충방제는 ‘어려움에 대신 맞서 도움을 주는 관계’이다. 래디시와 메리골드 또는 셀러리와 한련화가 그러하다. 메리골드가 식물 전체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은 방충 효과가 있는 다양한 화학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식물들 사이에 심어두면 벌레 피해를 예방하는데, 래디시와 메리골드를 함께 심으면 환기가 어려운 실내에서 재배할 때 생기기 쉬운 진딧물이나 토양선충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반면 한련화를 특히 좋아하는 진딧물은 다른 식물이 곁에 있어도 한련화로 모여들기 때문에 셀러리에 생기는 진딧물을 비교적 손쉽게 유인할 수 있다.
연대하여 자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상호의존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하는 관계’이다. 레몬밤과 페퍼민트나 코스모스와 파슬리가 있다. 레몬밤과 페퍼민트 두 식물은 방향성 오일을 많이 품고 있어 벌레들이 식물 전체에서 나는 강한 향을 기피해 이웃 식물들에 비교적 충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실외에서는 유익한 곤충들을 불러 모아 천적을 이용해 해충을 예방한다. 코스모스와 파슬리는 자라나는 모습의 물리적 보완을 통해 똑똑한 더불어 살기의 방법을 찾아낸다. 옆으로 퍼지며 자라는 파슬리와 위로 곧게 뻗으며 자라는 코스모스는 서로의 비워진 곳을 채워가며 좁은 공간을 유익하게 활용한다.
이렇게 짝 지어진 두 가지의 동반식물을 흙이 보이는 반투명한 화분 팜팜(palm farm)에 모아심으면 집 안에서도 돌볼 수 있는 작은 정원이 완성된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참여자들이 손바닥만 한 나만의 정원을 직접 가꾸어 나가며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주변과 연결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아름답게 더럽혀진 손
팜팜 가드닝을 진행할 때마다 공간이나 참여자, 계절에 따라 프로그램을 변주한다. 기본적으로는 씨앗을 심고, 흙을 만들고, 어린 식물을 심는 것으로 구성하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을 최대치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이 평소에 접하지 못한 비일상적일수록 더욱 바람직하다. 이런 낯선 감각이 언젠가는 몸에 익어 익숙해지길 바라며 우린 그런 이유에서 되도록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흙을 섞고, 식물을 심는다.
포슬포슬한 피트모스, 바스락거리는 펄라이트, 촉촉하면서도 단단한 바크. 양손을 활짝 펴고 흙 속 깊숙이 찔러 넣어 이리 저리 뒤섞다보면 무뎌졌던 손끝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눈을 감고 손등과 손가락 사이에 닿는 촉감에 집중하다 보면, 긴장은 금세 풀리고 계속해서 흙가루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가드닝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잊고 지냈던 미세한 감각들을 부드럽게 다시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활동이다. 놓칠 듯 작지만 깨지지 않을 것 같이 단단한 씨앗, 흙의 까슬하고 거친 질감, 보드라운 어린 잎과 줄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은 비단 식물 뿐 아니라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이다.
우리는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식물을 돌본다는 것이 모두의 취향이 아니란 것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가드닝은 사람의 아주 깊숙한 내면으로부터 변화를 불러일으킬 큰 가능성을 지닌 행위다. 당장은 알아차릴 수 없더라도, 한번 맺어진 관계는 이미 싹을 틔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필요하다면 언제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 몸과 마음에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더러워진 손으로 스스로 찾은 위로에는 자기효능감이란 흔적이 묻는다.
특히 동반식물을 활용한 팜팜 가드닝의 경우 식물을 통해 나의 관계를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데, 각 동반식물이 어떻게 상생하는지, 그 어울림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이웃하여 자라는 식물들처럼 내 주변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볼 계기가 된다. 이런 계기가 식물과 식물, 식물과 나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로 연결되어 ‘우리는 결국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팜팜 가드닝 워크숍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써내려가는 진심어린 편지로 채워진다. 식물들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 끝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이르게 된다. '씨앗이라는 아주 작은 단위의 생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씨앗의 생애를 우리의 삶 위에 덧대어 보면 거대하고 장황해 보였던 인생도 조그마한 손바닥 안에 들어온 것처럼 명징해집니다. ' 씨드키퍼를 소개하는 글에 담긴 이 두 개의 문장은 우리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하는 모든 결과물에 대해 말끔하게 설명해준다.
프로그램 내내 시각이나 후각, 촉각 등 오로지 자기 감각에만 몰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몰입은 피로함이 아닌 동적인 쉼이 된다. 우리는 이런 건강한 몰입으로 가득 채워진 에너지가 자신의 밖으로 향해 주변을 돌보는 데 사용되길 바란다.
씨앗을 심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마음을 다시 작은 편지 한 장에 꾹꾹 눌러 담으며 정제해본다. 우리는 씨앗페이퍼 워크숍의 마지막에서도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볼 것을 꼭 권하고 있는데, 구름처럼 피어오른 생각과 마음을 구태여 종이에 써내려가며 그 마음이 더욱 부풀어 올라 짙어지는 경험을 해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워크숍 참여자들을 이 경험의 순간까지 꼭 데려다주고 싶다. 누군가 씨앗을 통해 내 삶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면 바로 거기, 그 지점까지가 지금 씨드키퍼가 꾸준히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역의 희미한 경계일 것이다.
EBS국제다큐영화제 X 씨드키퍼 '팜팜 가드닝 워크숍'
2023. 08. 17
글 | 씨드키퍼 사진 | 안선근 @sungeunahn
© seed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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