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사람들]<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4 (김송, 김승혁, 문소영, 윤혜원, 오은재, 이송은미)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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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x seedkeeper
네 번째로 진행된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은 한 가지 주제를 통해 주변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가치를 찾는 어라운드 매거진과 함께 했습니다. 23년 4월에 발행된 어라운드 88호에 씨드키퍼는 인터뷰이로서 참여했는데요. 이번 라운드테이블의 주제도 어라운드 88호 이슈인 '지키고 싶은 장면'을 그대로 녹여 씨드키퍼 인생 주제인 '돌봄'과 함께 버무려 보았습니다. 

예민함이 무기가 되어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 좀 헤매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 단단하게 나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두렵더라도 도전에 나를 내던져 결실을 이루고자 하는 용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어요. 씨드키퍼 팀이 선물로 준비한 '씨앗 마니또'는 어쩌면 이 대화의 마침표를 찍는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습니다. 제비뽑기로 짝을 뽑아 서로에게 추천하고 싶은 씨앗을 고르고, 전하고 싶은 말을 카드에 적어 서로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은 글씨로 마음들을 어찌나 촘촘히 수 놓으시던지요.

매 회차 진행하는 순간마다 <가장자리>에는 '가드닝'부터 '마인드풀니스'까지 씨드키퍼가 전하고 싶은 모든 메세지가 녹아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라운드 매거진과 함께한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의 기록은 어라운드 네이버 포스트에서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THE EDGE ROUNDTABLE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4: 지키고 돌보는 사람들


지키고 돌보는 사람들 소개


김송  예민한 시선으로 관찰한 것을 작업으로 승화하는 사람

김승혁  긴장감을 이겨내며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

문소영  장점을 단번에 포착해 내는, '좋은 눈'을 가진 사람

윤혜원  어라운드 마케터, 적당한 거리를 두고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

오은재  어라운드 에디터, 좋아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이야기하려는 사람

이송은미  '혼자인 상태'를 오롯이 즐기는 사람







서로의 경계가 맞물릴 때

송다혜  안녕하세요. 맞은편에 앉은 혜성 님과 함께 씨드키퍼를 운영하는 송다혜입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해요. '<가장자리> 라운드 테이블'은 비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고, 이번에 네 번째로 진행하게 되었네요. '가장자리'라는 말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이 단어에 저희가 모임을 만든 이유가 담겨 있어요. '가장자리 효과'는 생태학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서로 다른 영역이 맞닿는 경계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이론이에요. 저희는 이 모임을 통해서 '돌봄'이라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보려 해요. 씨드키퍼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나 아닌 다른 대상을 관찰하고 살피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스스로를 돌볼 여유를 얻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돌봄'이라는 가치에 집중한 자리를 만들고 싶었죠.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삶의 자세와 관점을 배울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오늘은 특별히 어라운드 에디터, 마케터님과 함께하게 되었어요.
윤혜원  안녕하세요. 어라운드 마케터 윤혜원입니다.
오은재  안녕하세요. 오늘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될 오은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송다혜  어라운드에서 저희와 함께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주셨는데요. 어떻게 해서 자리를 만들게 되었는지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오은재  이번에 발행된 《AROUND》 88호의 주제는 '지키고 싶은 장면들'입니다. 요즘 환경 문제가 전 세계의 화두이자 숙제로 떠올랐잖아요. 어라운드도 지구,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다양한 분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었죠. 그렇게 식물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고 계시는 씨드 키퍼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홈페이지를 살펴보다가 지난 라운드 테이블 콘텐츠를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일상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을 돌보는 사람들의 대화를 읽으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었죠. 출퇴근 길마다 버스에서 야금야금 아껴 읽으면서 지친 마음을 달랬어요. 디렉터님들을 뵙고선 인터뷰를 진행하던 날, 라운드테이블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에 이런 콘텐츠가 있으면 꼭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 정도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는데요. 내부에서 협업 콘텐츠를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가 나왔어요.
송다혜  제안 주셨을 때, 《AROUND》의 이번 주제랑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돌봄'이란 키워드가 잘 연결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은재  저도요. 이번 호를 기획하면서 '환경'에 대한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어요. ‘지구’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많진 않잖아요. 방법만을 제시하는 것은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먼저 떠올려 보게끔 유도하려고 했죠.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면 자연스럽게 지켜주고픈 마음이 샘솟잖아요.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게 되고요. '라운드 테이블'에서 말하고자 하는 '돌봄' 또한 마찬가지 같아요.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긍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돌봄'에 관한 이야기까지 뻗어나간다고 생각했어요.
송다혜  맞아요. 그래서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웃음). 오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앞에 보시면 간단하게 질문지를 준비해 보았어요. 우선 1부에서는 '지키고 싶은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2부에서는 '일상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돌보고 계시는지'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을 준비해 보았어요. 참고만 해주시고, 대화 중에 궁금한 게 있다면 편하게 질문하셔도 됩니다.






거리를 두고 고유함을 바라보기
윤혜원, 마케터

송다혜  우선 혜원 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본인의 지키고 싶은 모습과 그 이유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소개까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혜원  (웃음)처음에 '지키고 싶은 모습'이라는 단어를 마주하자마자 막연하게 평소에 생각했던 장단점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보통 장점이라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과 '타인이 짚어준 나의 장점'이 떠오르잖아요. 그중에 제가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누군가가 찾아준 나의  멋진 부분'이에요. 평소에 사람들의 이야기나 반응을 통해 저를 알게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런 다정한 마음이나 시선으로부터 주변의 누군가를 돌봐주고 지켜줄 수 있는 동력을 얻기도 하고요. 저는 스스로를 굉장히 날카롭게 바라보는 편인데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주변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다 보니까 평소에도 타인을 대할 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펴보려고 노력해요. 누군가가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잃지 않게끔 도와주려 하는데, 이 모습을 지키고 싶었어요.
송다혜  그 장점을 북돋아 준 사람은 누구인지 궁금해요.
윤혜원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시 미술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미술이나 디자인 쪽에 관심이 치중되더라고요. 그게 되게 피곤하게 느껴졌어요. 조금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기 위해서 재미공작소에서 진행하는 미술 워크숍에 참여했는데요. 수업 중에 '내 상자 열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내 안에 들어있는 마음 상자를 그려보고,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지요. 그때 거기서 만난 언니가 하나 있는데요. 제 그림을 보면서 '왜 보라색과 베이지색으로만 그림을 그렸는지' 질문을 건넸어요.
오은재  뭐라고 답하셨어요?
윤혜원  '이 두 색이 너무 좋아서요.'라고 대답했어요. 당시 다른 색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두 가지 색에 꽂혔던 거죠. 그런데 그 언니는 세상에 있는 모든 색이 다 사랑스럽지 않냐는 거예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면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말을 들었을 땐 '모든 색이 어떻게 좋을 수가 있지? 되게 피곤하게 산다.' 싶었는데, 모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그림 속에서 장점을 찾아내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간 저는 제 안의 세계에만 너무 갇혀 있었더라고요.
오은재  은인 같은 분이네요.
윤혜원  맞아요. 그 언니로부터 누군가의 장점을 찾아내고 북돋아 주는 법을 배웠어요. 그런 인간관계를 통해서 얻게 된 점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잡지사에 온 것 같기도 해요. 이 일을 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고 저란 사람과 타인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거든요.






좋아하는 마음과 순간을 응원하며
오은재, 에디터
이송은미, 에디터

오은재  저는 좋아하는 게 되게 많은 사람이에요. 요즘은 애정이 담긴 것들을 이야기하는 일에 조금 겁을 내고 있어요. 예전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얘들아 내가 이거 좋아하게 되었는데 뭔지 이야기 좀 들어봐!'하고 열렬하게 소리치곤 했어요. 에디터가 된 후로 매번 무언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제가 가진 애정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더라고요. 명확하거나 구체적인 이유를 덧붙이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일까봐 더욱 주춤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매번 삼키다 보니 점점 저만의 화두가 줄어가는 느낌이라… 애정 어린 마음을 진심을 다해 표현하고 싶다고 매번 생각하곤 합니다.
송다혜  매번 질문하는 위치에 있다가,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어때요?
오은재  인터뷰이들이 왜들 그렇게 긴장하고 난감해하셨는지 알 거 같아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에요. 심지어 함께 준비한 질문지인데도, 입이 잘 안 떨어지네요. 어영부영 이야기해도 그러려니 해주세요. 부끄러우니까 자연스럽게 제 옆자리 분께 순서를 넘겨도 될까요? (웃음)
이송은미  (웃음) 저는 참여 신청란에 '아이가 된 나의 모습'을 지키고 싶다고 적었어요. 이때 아이는, ‘어린이’란 뜻이 아니고 MBTI의 'I'를 말하는 건데요. 얼마 전까지 외향형을 꾸준히 유지해 오다가 최근 1년 사이에 내향형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더라고요.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하게 되었나 되짚어 보다가, 최근 저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송다혜  무엇이었어요?
이송은미  혼자 다니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어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분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잖아요.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저 오늘은 혼자 먹을게요.”라고 말하는 상황이 크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혹시 무슨 일이 있나?'하고 걱정부터 들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용기였는지, 혼자 먹겠다고 선언하고선 맛있는 걸 먹고 여유롭게 산책도 한 바퀴 돌았어요. 그러고 나니 그날 하루 동안 기분이 너무나도 좋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만끽하기 시작했어요. '나 정말 I가 되었나? 오히려 좋은걸?' 하는 마음으로요(웃음).
송다혜  MBTI에서 E랑 I를 구분할 때, 단순히 외향형 내향형으로 구분하기보단 '내가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회복하느냐'에 초점을 두더라고요. 저도 I로 시작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그럼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에너지를 회복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반면에 E인 분들은 바깥을 돌아다니거나 사람들과 부대껴야지 충전이 된다고 하고요. 정말 신기해요.
이송은미  맞아요. 저도 에디터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외향적'이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자리하고 있어요. 사람들이랑 관계를 다지고 수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작 I가 되고 나니,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다 싶어요. 지금은 이 성격을 지켜가고 싶어요.






두 갈래 길 사이에 서서 나를 돌아보며
문소영, 개발자

오은재  소영 님께서는 신청서를 빽빽하게 채워주셨던데요.
문소영  그런가요(웃음). 지하철에서 집 가는 길에 이것저것 적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서 노트에 정리해 왔어요. 질문을 읽고 두 가지 답을 생각해 봤는데요. 첫 번째로는 '눈'이에요. 최근에 어떤 콘텐츠에 인터뷰이로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이야기를 나눴던 분을 워크숍에서 우연히 다시 뵙게 되었고, 일에 관한 고민을 나누다가 '저는 제가 아직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그랬는데 그 분께서 '소영 님께선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통해 저를 조금 더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장점 먼저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제가 눈여겨 본 작은 브랜드나 누군가를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때 엄청나게 규모가 커져 있거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매번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관적으로 '무언가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시각이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에요.
이송은미  벤처 기업가 같으세요.
문소영  제 본업은 개발자예요. 프로그램에서 에러가 발생하면 '이게 왜 안 되는지'에 관한 해결점을 찾아서 서비스가 잘 돌아갈 수 있게끔 고치는 일을 하고 있죠.
김송  개발상의 오류를 짚어내는 일도 발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소영  그렇죠. 다만 제 성향이랑 맞진 않는 거 같아요. 저는 장점을 찾고, 흡수하는 일을 좋아하는 데 지금은 잘못된 것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다 보니까 괴리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송은미  어쩌다가 개발자가 된 거예요?
문소영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요리를 했거든요.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요리는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으니 좀 넣어두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그러다 지인분을 통해서 개발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들었고, 그렇게 이 업계에 발을 들였죠. 일단은 놓지 않고 계속해 보고 있긴 한데요. 매번 고민하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괜히 먼 길을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오은재  개발자의 시선과 소영 님 특유의 시선이 균형을 이루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개발 경험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어요?
문소영  아직까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말을 보내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면 '내가 왜 여기 앉아있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어요. 물론 관심 있는 일들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요즘은 빨리 다른 길을 찾아보고 싶어서 탈출할 생각을 좀 더 하고 있어요.
이송은미  드라마틱한 시기를 지나가고 계시네요. 이전에 했던 일과 지금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이 모두 다르다 보니까 고민의 영역이 엄청나게 넓을 것 같아요. 그래도 돌아보면 그때가 제일 즐겁게 고민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예민함을 다스리는 법
김송, 작가

김송  저는 제가 지닌 예민함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어요. 사실 이건 ‘지키고 싶지 않은 모습’에 가까웠는데요.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모습을 존중해 주고 싶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가진 본연의 기질을 안 좋게 생각하곤 했어요. 신체적으로나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부정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고요. 시간이 지나 저를 제대로 직시하게 되면서 '예민함'이 일상에서 좋게 작용한 경우들을 찾아냈어요. 무엇보다도 '예민함' 덕분에 제가 하는 직업이 유지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오은재  어떤 면에서 유지가 되는 거예요?
김송  저는 도예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는 작가 활동이 뭔가를 만들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서 예민하게 관찰할 수밖에 없어요. 제 작업물은 이제까지 제가 바라본 것들이나 생각했던 것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고요. 음, 제 말이 너무 모호한가요?
일동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김송  제가 지닌 '예민함'의 종류는 조금 다양한 것 같아요. 주로 무언가를 관찰할 때 작동하는데요. 이를테면 집에 먹을 것을 사서 들어가다가 잠깐 멈춰서서 주변을 바라봐요. 하늘이 어떤지, 사람들 표정이 어떤지, 그날 날씨와 공기가 어떤지를요. 장면을 자세히 보는 순간 저만의 예민함이 살아나요.
송다혜  저는 신청서를 읽으면서 송 님 답변이 제일 와닿았어요. 엄청나게 공감됐거든요. 사실 '예민함' 하면 보통 감정이나 성격적인 부분과 연결을 짓게 되잖아요. 그런데 송님은 무언가를 관찰하는 상황과 연결한 점이 인상이 깊었어요.
김송  최근에 마음이 안정된 후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예민한 제 모습이 짜증스러워서 싫었어요.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후부터 제가 어느 부분에서 예민하게 구는지가 이야기처럼 읽히더라고요. 그걸 알게 되니 예전처럼 마냥 부정적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문소영  송 님께서 가지고 계신 예민함은 '작은 것까지도 바라볼 힘'처럼 느껴져요.
김승혁  예민함보다는 섬세함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김송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이송은미  어떤 작업 하세요?
김송  작은 흙을 이어 붙여서 크게 만드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려니까 어렵네요. 저는 모든 대상이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오은재  아까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나의 작업물은 이제껏 바라본 것들이나 생각해 온 것들의 총합이나 다름없다'고요. 송 님께서 작업하시는 방식을 빗대어 생각해 보니 확 와 닿아요.
문혜성  어디서 보았는데, 주제를 가진 사람만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송 님의 성향이 주제를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은재  맞아요. 그런데 또 막상 누가 작업에 대한 주제 물어보면 대답하기 어렵지 않나요? 
김송  (한숨) 맞아요. 뭔가를 정의 내린다는 게 어려워요. 제가 아직 그렇게 큰 뜻을 가지고서 작업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저는 아직 과정 중에 있어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주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뿐이죠. 관통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기엔 힘들어요.
오은재  의식하지 않고도 저절로 해내고 있는 걸 보면, 송 님의 몸이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김송  어쩌면 그렇게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긴장이라는 알을 깨고 나올 때
김승혁, 직장인

김승혁  저는 평상시에 긴장을 엄청나게 많이 해요. 낯을 가려서도 있지만 새로운 일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곤두서요. 어떤 자리에 가서도 사람들 반응을 살피고 신경 쓰느라 예민해지고요. 얼마 전에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위치한 기업에 입사했는데요. 지금 입사한 지 3개월 차가 되어가요. 처음 입사한 날은 뭘 못 먹었어요. 먹기만 해도 탈이 날 정도로 배앓이를 심하게 했어요. 그래서 이틀 동안 물밖에 못 먹었고요.
송다혜  힘드셨겠어요.
김승혁  이 점이 어릴 때부터 굉장한 스트레스였어요. 다들 행복해지려고 살잖아요. 제 행복은 대부분 '새로운 것'으로부터 오거든요. 새로운 감정을 느끼거나, 새로운 사람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얻을 때 큰 행복감을 느껴요. 그래서 더더욱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스스로 계속 이벤트를 만드는 편이고요. 막상 그 상황에 놓이면 너무나도 긴장을 많이 하는 거예요.
송다혜  그럼에도 그걸 깨려고 노력하고 계신 거네요.
김승혁  나름 그렇죠. 예전에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노력하고 있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오늘 또 긴장하는 자리에 나와 있구나. 이런 시도하려는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요.
문혜성  긴장하신 줄 몰랐어요. 되게 잘 말씀해 주셨는데요.
김승혁  아까 볼펜을 드는데 너무 떨려서 손이… (볼펜을 떠는 시늉을 한다)
송다혜  저도 아까 처음에 되게 긴장했어요. 진행하는데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리더라고요.
오은재  그래도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내려놓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송은미  맞아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송다혜  다행이에요.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시야를 열고, 크게 휘두르며 

송다혜  지금까지는 '지키고 싶은 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저희가 이제껏 '돌봄'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스스로를 이미 잘 돌보고 계신 분과 방법을 찾고 싶어서 오신 분들로 나뉘곤 했어요. 오늘 참여하신 분들은 어떨지 궁금한데요. 혹시 평소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오은재  (쭈뼛거리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손을 드는 분이 없네요(웃음).
송다혜  제가 이야기한 '돌봄'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걸 계속해 낼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일 또한 '돌봄'의 영역에 속할 수 있겠죠.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계속 노력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1부에 나눴던 이야기들을 생각해 보시면서, 서로에게 궁금하신 점이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하셔도 좋아요.
문소영  저는 송 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특히나 작가분들은 작업물을 만드는 순간마다 극도로 몰입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모습이 굉장히 대단해 보이면서도 혼자만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게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곤 해요. 송 님께서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했어요.
김송  저 같은 경우에는 작가 생활한 지 이제 4년이 되었거든요. 주변에서 매번 10년은 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셔서 그렇게 오래 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었어요. 하루에 누군가랑 대화하는 시간이 30분 정도도 안 되거나, 아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작업만 했던 적도 있고요. 그렇다 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너무 정적인 상황에만 놓여있다 보니 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았어요. 고민 끝에 택한 게 '운동'이었어요.
송다혜  오, 그렇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은데 스스로 시작하게 된 거네요.
김송  맞아요. 한번 돈을 내면 가기 싫어도 움직이게 되더라고요(웃음). 운동을 하면서 얻은 건, '건강'보단 '참을성'이었어요. 저는 참을성이 크게 없는 편이어서, 매번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선 쉽게 그만두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목표로 정한 게 '하기 싫어도 1년 정도는 꾸준히 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지금 딱 1년 정도 되었는데, 이젠 당연한 '루틴'이 되었어요. 더불어 체력도 좋아졌고요. 지금 생각해도 하길 잘했다 싶은 운동이에요.
오은재  무슨 운동을 하고 계신 거예요?
김송  테니스요.
오은재  오, 테니스도 처음 칠 땐 상대편 없이 혼자 배운다고 들었어요.
김송  맞아요. 벽이랑 쳐요. 거의 1년 동안, 선생님께서 옆에 붙어서 일대일로 가르쳐 주세요. 그편이 훨씬 저랑 잘 맞더라고요. 예전에 클라이밍을 시도했던 적이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거든요. 사람들 사이에서 구겨져서 벽을 타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웃음). 테니스는 그에 비해 기초 과정이 잔잔한 편이에요. 사람들이랑 부대낄 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좋았어요.
송다혜  저도 한 달 정도 배워봤어요.
김송  보통 한 달 정도 하면 지루해지거든요. 다들 그때쯤 고비가 와서 그만두더라고요.
송다혜  맞아요. 저랑은 크게 맞진 않았던 것 같아요.
김송  저는 잘 맞았고, 지루함을 참아보려고 했어요. 3개월쯤이 고비였는데 멈추지 않고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유지가 되더라고요. 그제야 테니스의 매력을 좀 알게 되었어요.
오은재  어떤 매력인지 궁금해요.
김송  공을 던지고 받을 때까지 오래 걸리는 운동이라 기초를 다지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거든요. 해보면 그게 정말 큰 재미로 다가와요. 이전까지 정말 많은 걸 시도해 보고 포기했는데, 이제야 맞는 걸 좀 찾은 것 같아요.






낙차 속에서 지나온 길을 살펴보기

김송  저도 소영 님께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지금 나의 관심사와 현업 사이에서 괴리감을 겪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면, 나만의 결과물을 낼 때 즉각적으로 좋은 감정이 찾아오잖아요. 반면에 개발 일을 했을 땐 그런 기분과 마주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로부터 오는 고민도 있을 것 같아서요.
문소영  맞아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시각적으로 눈에 보이거나, 직접 체감할 때 '내가 잘 나아가고 있구나.'하고 확신하는 편이에요. 물론 개발도 어떤 오류를 처리하거나 화면을 구성해 내면 '무언가를 해냈다.' 싶긴 하죠. 다만 제가 몸담은 조직 성향이 저랑 정말 달라요.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되어가는데요. 입사한 첫날, 같은 팀 대리님께 “이 일이 적성에 맞나요?”라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먹고 살려고 하는 거죠.”라는 답변이 돌아와서 생각이 많아졌던 경험이 있어요. 그분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만난 다른 상사분들도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했거든요. 이전에 몸담았던 요리 업계는 매너리즘에 빠진 분들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자신이 지닌 창의적인 면을 앞세워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을 보고 많이 배웠거든요. 그와는 다른, 경직된 조직에 오니까 훨씬 더 괴리감이 컸던 것 같기도 해요.
이송은미  지금 소영 님께서 속해있는 표본 집단이 그런 것 같아요. 모든 개발자분이 그런 건 아니니까요.
문소영  맞아요. 저도 동의해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나와는 결이 많이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매번 느끼고 있어요. 저는 도전과 시도를 애정하는 사람들 곁에서 많은 원동력을 얻는 편이거든요.
이송은미  그러면 혹시 이후에는 뭘 하고 싶으세요? 소영 님께서 그리고 계신 다음 스텝이 뭔지 궁금해서요.
문소영  저는 창업을 하고 싶어요.
송다혜  창업을 하기 전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여러 기술을 쌓고 계신 것 같아요.
오은재  맞아요.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찾을 때, '소거법'이 꽤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고 나서, 나한테 잘 맞는 것과 안 맞는 것을 분류해 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성향이나 취향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더라고요. 소영 님도 그 단계를 지나고 계신 것 같아요.
문소영  맞아요. 그 과정에서 저를 많이 발견하게 되곤 해요.
오은재  은미 님께서도 소영 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시더라고요. 혹시 내가 원하는 일과 아닌 것에 대한 낙차를 느껴본 적이 있나요?
이송은미  잠시 눈물 좀 훔칠게요(웃음). 저도 10년 정도 방황하면서 '실패 이력서'를 빽빽하게 채워본 사람이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 광고 기획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게 제 천직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김송  그 느낌은 어떻게 받으신 거예요?
이송은미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환상'이었던 것 같아요. 꿈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시점에 어떤 광고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요. 뇌리에 박힐 정도로 인상 깊었어요. 그 길로 '광고 기획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선 관련 학부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의 벽이 너무 높더라고요. 20살 초반부터 관련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도전했는데 원치 않는 탈락을 겪으면서 좌절감을 많이 겪었어요. 그 시기쯤 광고 업계의 열악함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죠. 이런저런 상황을 겪다 보니, '이게 내 천직이 아닌 건가?'하고 스스로 의심을 하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지나고 보니 콩깍지였던 것 같기도 해요.
오은재  그 감정을 딛고 다음으로 넘어가기까지 고민이 많으셨겠어요.
이송은미  맞아요. 저는 이제껏 제가 처음 광고 기획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던 당시에 느꼈던 설렘과 비슷한 크기의 떨림을 주는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직업을 여러 번 바꿨어요. 회사도 이곳저곳 많이 옮겨 다녔고요. 대략 읊어보자면 원래는 PD 일을 하다가 마케팅 계열로 직종을 변경하고, 그 일을 그만둔 다음에 에디터가 된 케이스죠. 누군가가 보기엔 세 가지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겠지만 저로선 직종을 전환할 때마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웠어요. 왜냐면 주위를 둘러보면 '원래 저거 하려고 태어났나 보다.' 싶을 정도로 일에 있어 완벽한 맥락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았거든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압박을 많이 느꼈어요. 그분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니 불안정한 제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강박에 가두기도 했지요.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이제서야 생각을 해보면 저도 '소거법' 단계를 지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시 제가 스스로 건넨 질문 하나하나 모두 재미있고, 유의미한 과정이지 않았나 싶어요.
오은재  온갖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지금 하는 일은 좀 어떤 것 같아요?
이송은미  이 타이밍에 이 이야기를 하면 좀 거짓말 같지만. 천직 같아요(웃음).
일동  다행이다.
이송은미  지금 이 일을 하기까지 1년 정도 고민할 시간이 있었는데요. 2-3년 정도 했던 일을 마치고 새로운 직종에 뛰어드는 게 겁이 나서 시작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어요. 마음 같아선 이 일을 해보고 싶은데, 지금 시점에서 방향을 크게 전환해서 다시 0부터 쌓아 나가야 하는 게 맞나 싶었던 거죠. 스무 살 초반에는 길을 바꿔도 다시 돌아오면 됐지만 지금은 돌아오는 데에도 시간이 드니까 잃을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소영  그러면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서 큰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무엇이었어요?
이송은미  친구랑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어요. 그 숙소 사장님께서 40살 때까지 돈을 차곡차곡 모으셔서, 그 집을 지으신 거죠. 알고 보니 그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항상 그 당시에는 저지르고 후회한 것들이 참 많았는데,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이젠 안 한 것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에잇, 그럴 바엔 뭐든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은 제 적성에 잘 맞는 거 같아요. 이제껏 겪었던 일들은 모두 '미세 조정'하는 과정이었나 봐요.






안팎을 두루두루 감지하며, 삶 속으로 끌어오는 자세  

문혜성  혜원 님께서는 누군가의 좋은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최대한 멀리서 바라보고 천천히 다가가 보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본인에게도 그렇게 해주는 편인가요?
윤혜원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그걸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자기 자신을 '예민하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저 또한 저의 예민함 때문에 스스로 좀 먹는 듯한 기분이 너무나도 싫었어요. 너무 제 안의 세계에만 갇히게 되는 것 같아서 시야를 차라리 바깥으로 돌려보자고 생각했어요. 어떤 현상이나 장면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잖아요. 저는 그 수많은 이면 속에서 빛나는 부분들을 꽤 잘 찾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장점을 발견하면 그걸 배워서 나에게도 적용해 보려고 노력했어요.
오은재  오! 그 방법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윤혜원  최근에 어떤 뮤지션한테 빠졌는데요. 그 사람의 인터뷰를 읽고 '이 사람은 엄청나게 솔직한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그 뮤지션은 가사도 직접 쓸 뿐만 아니라, 책도 쓰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여러 매체를 통해 그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살피다 보니 '예민한 자극들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방어막을 만드는 자세'를 지녔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참 배울 만하다 싶어서 제 삶에도 적용했고요.
오은재  좋은 방식이네요. 조금 다르게 접근하면,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될 수도 있는 문제인데 '배울 점'으로 인식하고 나의 것으로 수용하다니… 건강한 자세처럼 느껴져요.
윤혜원  저는 일할 때도 그런 것 같아요. 에디터분들과 디자이너분들과 함께하면서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를 먼저 알아채요. 그 뒤에 '나는 그럼 이 사람들과 일할 때 어떤 부분들을 좀 더 살피고 보완할 수 있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업무를 보는 순간마저도 나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순간이 꽤 좋아요. 바깥에서부터 안을 둘러보는 일이 저 자신을 돌보는 일처럼 느껴져요.
송다혜  스무 살 초반에 친한 언니를 만나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잖아요. 특정한 사건이 있으니, 태도의 전후가 명확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상대에게서 장점을 찾는,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생겼어요?
윤혜원  좋아하는 게 훨씬 많아졌어요. 한 가지만 파고들지 않고, 두루두루 좋아하고 살펴볼 수 있게 되었죠.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잖아요. 그전까지만 해도 제가 알고 있었던 것만 바라봤는데, 그 장면 뒤에 존재하는 것까지도 아끼게 되었어요. 그게 피곤하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이송은미  좋은 마케터의 자질이네요.
윤혜원  천직…인 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좋아요(웃음).






성장을 북돋는 작은 용기 

이송은미  승혁 님께서는 긴장을 많이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김승혁  혼자 있을 때요(웃음). 저는 집에서 혼자 뭘 많이 하는 편이에요. 꽃꽂이하기도 하고, 요리도 하고요. 선물 받은 선인장에 물 한 번 주는 것만으로도 삶의 안정감을 느껴요.
이송은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오늘처럼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는 것인가요?
김승혁  행복에는 여러 요소가 있잖아요. 저는 제가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하거든요. 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안 해본 일들을 접하면서 여태까지 못 느껴본 감정을 느끼게 될 때 크게 성장하는 타입인 것 같아요.
송다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의문이 드는데요.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혹은 구체적인 경험은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좇아야지만 행복할 것 같다고 느끼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김승혁  저는 사회 공헌 사업을 하는 기업의 재단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최근에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재단에서 카네이션 꽃꽂이 클래스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그걸 직접 기획하고, 참여까지 해서 배우면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사소하지만 '자아실현'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송다혜  그런 클래스를 연다던가, 오늘처럼 이런 자리에 신청해서 나오는 일 또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어떻게 용기를 내는 편이에요?
김승혁  순간순간 힘들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때 느낀 감정들 모두 좋은 영양분이 되더라고요. 그걸 알게 되고 나서는 긴장이 되더라도 일단 그 상황 속에 던져 놓을 수 있게 되었어요.
송다혜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도, 더 큰 자극을 추구하시는 분이군요.
김승혁  물론 저는 소소한 행복도 중요하게 여겨요. 다만, 일상이 너무 안정되다 못해 반복되다 보면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선인장에 물을 주는 것은 제게 쉼을 줄 수는 있지만, 자극을 주진 못하는 거죠.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아요.
문혜성  자기 성장의 욕구 같은 거네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공감했는데요. 저도 승혁 님처럼 제가 바라는 이상향에 닿기 위해서 스스로를 많이 '내던지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마다 긴장하면서도, 일부러 그 상황에 저를 던져버리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든 버둥거리면서 해내거든요. 그런 '깨부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을 하게 되고요.
김승혁  저도 '내던진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오은재  저도 승혁 님의 신청서를 읽고 많이 공감했어요. 저도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될 때마다 온갖 걱정들을 다 해가면서 스스로를 압박하는 성향이거든요. 그러면서도 자기 성장의 욕구가 엄청나다 보니, 틈날 때마다 나를 발전 시킬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서 헤매곤 해요. 반면에 제게는 승혁 님의 '물주기'처럼 쉼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없다보니 매번 스트레스만 받는 상황인데요. 승혁 님께서도 혹시나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신을 몰아넣는 상황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나름 스스로 해법을 찾아나가고 계신 것 같아 다행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송은미  어쩌면 승혁 님은 그런 자기 모습을 즐기고 계신 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나 좀, 귀여운데?'
김승혁  제 친구들도 비슷하게 이야기해요. '너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웃음)
오은재  안 그래도 설문지를 보니 평상시에 “괜찮아, 괜찮아.”하며 자신을 자주 토닥여 준다고 적어주셨더라고요.
김승혁  맞아요. 평상시에 저를 잘 토닥여 주려고 해요. 좀 민망하거나 긴장이 되는 순간을 겪고 난 뒤에도 돌아와서는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해소하려고 하죠.






긴장을 해소하는 우리들의 자세 

오은재  승혁 님처럼 극도로 긴장하는 순간이 오거나, 자기의 성향이랑 맞지 않는 무언가를 할 때의 괴리감을 어떻게 이겨내려고 하시는지 궁금해요. 모두에게 질문하고 싶어요.
일동  (고민한다)
오은재  저 같은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말을 꺼내곤 해요. 예를 들면, 압박감이 드는 자리에 갈 때가 있잖아요. 애초에 긴장한 티를 안 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걸 잘 숨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넌지시 이야기를 드리는 거죠.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평소보다 많이 긴장한 상태예요. 그렇다 보니, 제 본연의 모습이 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면 당황하지 마시고, '좋은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식으로 먼저 인정하고, 내려놓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송다혜  그러면 긴장이 좀 사라지던가요?
오은재  네. 훨씬 나아요. 오히려 제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시니까, 훨씬 더 너그럽게 대해주시더라고요. 자연스레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니 긴장도 풀리고요.
윤혜원  저도 설득을 하는 편이에요. 저한테 반감이 되고, 긴장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이야기하면서 누군가를 설득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송다혜  두 분이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고 계시네요. 혜성 님도 항상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겉으로 티가 잘 안 나요. 이전에 타브랜드 측에서 저희에게 강연을 요청 해주신 일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해본 경험이 둘 다 없다 보니까 저는 정말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혜성 님께서 “내가 해볼게.”라고 용기를 내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대단해 보였어요.
문혜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사 자체가 취소돼서 강연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아마 그런 마음가짐이었을 거예요. 저는 평상시에 저 자신에게 굉장히 너그러운 편이거든요. 그래서 너무 하기 싫은 건 잘 안 하려고 하는 타입이었어요. 그런데 최근부터 이런 태도를 많이 바꾸려고 하고 있어요. 요즘 인생에서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서 말씀하신 분들처럼 저도 스무 살 초반부터 많이 방황했거든요. 저란 사람의 성향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로 잡기까지 15년 정도가 걸렸는데요.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하고 나니, 내 인생이 어떤 궤도에 올라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안정화가 된 것 같아요. 그 시점에서 제 지난 삶을 돌아보니, 목표 지점을 두고 달린 게 아니라 산책하듯이 사방팔방 다녀서 크게 경력이라 부를게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여태껏 나에게 너무 관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이젠 기존과는 다른 발전이 필요하다 느껴서 어려운 상황이 와도 일단은 던져보려 해요.
오은재  어떻게 용기를 내나요?
문혜성  무언가 시도하려다가 '어? 이거 못 할 것 같은데?' 싶은 감이 오면 일단 주문을 외워요. 원래는 '할 수 있다.'라고 저 자신에게 기합을 넣었는데 최근에는 새로운 주문이 생겼어요. '해볼 만한 싸움이다.'
이송은미  승리가 전제된 문장 같아요.
문혜성  사실 저는 어떤 일을 마주할 때마다 지고 들어가는 성격이거든요. 승부욕이나, 뭔갈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크게 없어요. 그런 모습이 싫었던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되더라고요. 그래서 주문을 자주 외우려고 하는 편이에요.






성장을 위해 지켜야만 하는

윤혜원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더라고요. 모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자기를 돌보고 계신 것 같아요. 
오은재  맞아요. 그리고 이를 위해 나의 내면에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 시선을 돌리며 해답을 찾고 계시네요. 저는 송 님이랑, 승혁 님, 혜성 님, 혜원 님 모두 자신의 예민한 기질이나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넓게 넓게 바라보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송다혜  송 님께선 예전에는 나의 예민함이 싫었는데, 이제는 지키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특별히 싫었던 때가 있나요?
김송  '찌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엄마랑 동생이랑 대화하다가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저 혼자 배배 꼬아서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누군가 좋은 의도에서 말을 해도, 제 감정이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질 못해서 혼자 뾰족해질 때가 많았어요. 감정을 물 흐르듯이 배출해야 하는데, 저는 매번 마음 한편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축적해 뒀거든요. 그걸 두고두고 끄집어내며 곱씹는 편이었어요. 지금도 쉽게 해소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잠시 접어두고서는 최대한 가만히 놔두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문혜성  다혜 님도 송 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이 많이 간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본인의 예민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송다혜  저도 이 예민함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는 않았어요. 예전에는 누가 저한테 예민하다고 하면 듣기 싫었거든요(웃음). 엄마가 “너 예민한 것 좀 고쳐.”라고 말하면,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일로 예민한 것은 어쩔 수가 없잖아요. '내가 내 일을 잘하려면 예민함이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세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관계에서 뾰족하게 구는 건 고치려고 해요. 다만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이전보다는 마음이 편해졌어요.
김송  그럼 인간관계는 과거에 비해서 어떻게 달라진 거예요?
송다혜  제가 사람한테 예민하게 굴었던 상황들을 돌아봤어요. 알고 보니. 기준이 항상 저한테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그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싶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제 기준을 지우고, 저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그만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하려는 편이에요. 생물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면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아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아직도 너무 어려운데요. 스스로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니 불편했던 순간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오은재  은미 님이랑 소영 님도 혹시 예민한 편인가요?
이송은미  저도 예민한 부분이 확실히 있긴 해요. 그래서 애초부터 긍정 필터를 장착하려고 하죠.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 때 내가 해석한 대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저는 오히려 타인이면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겨버리는데,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민함'이 작동할 때 힘들게 느껴지곤 해요. 이를테면, 제가 취업을 못 한 상황일 때 주변에서 '너 오늘 뭐 할 일 없니?'하고 물으면 의도가 없는 질문이더라도 괜히 민감해지잖아요.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밑밥을 깔려고 노력해요. '어 나 오늘 할 일 없어. 근데 있잖아, 엄마. 사랑해!' 이런 식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려고 하죠.
문소영  계속 곱씹어 생각해 보니, 기억에 남는 경험이 하나 있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저랑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친구랑 저랑 무언가를 경험할 때 이를 보는 관점이 정말 다른 거예요. 그걸 주의 깊게 인식하고 나니까 '다르다'라는 단어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는 저 스스로가 날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다름'을 제게 끊임없이 주입하고 나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힘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저 사람 왜 저러지?'하고 생각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 저 사람은 나랑 다른 사람이었구나.'하고 인정하니 스트레스도 덜해지더라고요.
송다혜  아까 혜성 님께서 '해볼 만한 싸움이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고 하셨는데, 제 주문은 '그럴 수도 있지.'예요.
오은재  다혜 님이랑 혜성 님은 성향이 비슷한가요?
문혜성  저희는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여기서 무딘 사람 저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저희 둘은 성격도 다르고, 하나의 현상을 봐도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죠. 그래서 오히려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송다혜  저는 항상 예민함을 표출을 해놓고 뒤늦게 후회하는 편이거든요. 그때마다 혜성 님이 '괜찮아. 너의 예민함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 더 예민해도 돼.'라고 말해주시는 거예요.
일동  (감탄한다)
문혜성  제가 매번 다혜 님 보고 “우리 다혜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그런 부분이 다혜 님을 다혜 님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오은재  서로의 어떤 면들을 지켜주는 관계네요.
문혜성  타인과의 어떤 관계를 위해서 자신의 성향을 바꿀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다혜 님의 그물이 촘촘하면 제 그물은 넓게 짜인 편이라 거슬리는 게 크게 없거든요. 스트레스는 덜 받지만, 그만큼 놓치는 것도 많아요. 그런 점에서 상호 보완이 잘 되죠.
송다혜  저는 옆에서 혜성 님을 보면서 부처 같은 평정심을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문혜성  제가 그런 성향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획득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혜 님 같은 파트너가 있어서 얻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회사를 진짜 여러 번 옮겼어요. 10년 직장 생활을 하면 10번 옮겼거든요. 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커리어 관리가 안 돼서 힘들었던 적도 있어요. 지금 돌이켜 보니, 이걸 하려고 그랬다고 생각하게 되어요. 저는 관심이 생기면 무조건 다 경험을 해보자는 주의거든요. 양봉이 궁금하면 벌을 키우고, 양초를 만들고 싶으면 원데이 클래스를 들어야 해요. 직장 다니면서 그런 걸 할 때는 다 사치스러운 취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매번 '뭐 되려고 이러나…' 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축적이 되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이송은미  두 분은 어떻게 하다 만나게 되신 거예요?
문혜성  저희 이전 직장에서 만났어요.
오은재  자세한 건 이번 인터뷰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웃음).






나를 일으키는 것들

이송은미  저는 '자신을 돌보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저부터 말해보자면, 최근에 MBTI가 I로 변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전셋집을 얻게 되면서였거든요. 그 집에서 산 지 이제 1년 정도 되었어요. 당시에는 프리랜서로 전환했던 시점이라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았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멍하니 앉아서 새 소리를 듣는데, 너무나 좋은 거 있죠. 그 집이 저한테 이 정도로 큰 영향을 줄 줄은 몰랐어요. 덕분에 집 밖에서 흔들리고 고통받더라도 이 순간은 잠시일 뿐이다, 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어차피 내 본체는 집에 있으니 돌아가면 나는 다시 단단해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송다혜  마인드셋이 좋네요. 저도 하나 떠올랐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자신을 돌보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혜성 님도 알겠지만 저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타입이에요. 물론 그러면서 즐거워하고요. 다만 '일 외에 나만을 위해서 한 게 뭐가 있지?' 하고 떠올려 보니, 생각이 잘 안 나더라고요. 그 와중에 최근에 저희가 소소문구라는 브랜드가 진행한 전시에 참여했어요. 브랜드 측에서 3개월 전에 노트를 보내주시고 저희가 빈 페이지를 꾸준히 채운 뒤에 그 기록을 전시한 거예요.
윤혜원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송다혜  브랜드랑 어떻게 연이 닿게 되었냐면, 소소문구 매니저님께서 이전에 진행했던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를 하셨거든요. 개인적으로 신청을 해주셔서 우연히 오게 된 거죠. 당시 라운드 테이블 말미에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록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이 참여해 주셨어요. 매니저님께서도 기록 관련 브랜드에서 일하고 계시니 좋은 팁을 많이 전수해줬죠. 얼마 뒤에 '이번 기회에 기록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며 전시 참여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저는 평상시에 생각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일기를 쓰면 좋을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니 쉽지 않았어요. 이왕 기회가 왔으니 한 번 해볼까 해서 의식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제가 쓴 기록을 보내고 나서 전시에서 다시 마주하니 엄청나게 생소하더라고요.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기도 하고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지만, 좋았어요.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일기는 나를 위해 기록을 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을 것이란 걸 가정하고 쓴 거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그저 흘러가는 생각들을 별 의식 없이 적었거든요. 이에 공감하고 좋았던 부분에 메모를 남겨주신 부분을 보면서 감응하게 되었어요. 그로부터 제가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기록의 의미를 깨달았죠. 뭔가를 적고 남겨두는 일만으로도 나를 돌볼 수 있구나 싶어지니 동기 부여가 되었어요.
오은재  소영 님도 기록 많이 하시죠?
문소영  저도 타인에 의해서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전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서, 질문지를 받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데요. 타인이 제게 건넨 질문들에 정의를 내리는 과정이 꽤 즐거웠어요. 사실 자기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잖아요. 저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나 스토리 적어둔 걸 두고두고 계속 보는 편이에요. 이전의 기록을 다시 돌아봤을 때 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이 큰 위안을 주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평소에도 스스로를 자주 도마 위에 올려두려고 해요. 무언가를 왜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그에 대해 기록하려 하죠. 그런 과정에서 저란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송다혜  은재 님은 어때요? 스스로 질문을 자주 하는 편이었나요?
오은재  저도 스스로 질문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만 잘 답하고 싶고, 잘 기록하고 싶어서 압박감을 느끼죠. 그래서 나름의 재미있는 방법을 하나 찾아냈는데요. 저는 영화를 좋아해서 금요일마다 퇴근하고 극장에 자주 가곤 해요. 그때 꼭 작은 노트와 볼펜을 지참하는데요. 영화관 안에 들어가서 상영 내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는 거예요. 좋았던 장면이나 대사 혹은 '배고프다', '졸리다' 같은 사사로운 것까지요. 그걸 전부 다 적고서는 영화 끝나고 나와서 노트를 펼쳐보면 깜깜한 공간에서 적은 거다 보니 뭐라고 썼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요. 해석할 수조차 없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고 충실하게 이야기하고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감정이 찾아오더라고요.
송다혜  좋은 방법이네요. 혹시 따라 해도 되나요?
오은재  (웃음) 그럼요.
송다혜  이런 루틴은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오은재  저는 평소에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 메모를 하곤 해요. 한 줄이라도 적어두면, 언젠가 글감으로 쓰이게 될 것 같아서 떠오르는 게 있음 일단 다 써놓죠. 처음에 영화관에 노트를 들고 간 것도, 그 시간 동안 적은 문장 중 하나를 뽑아내서 다른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였어요. 그렇게 실컷 적고 나왔는데 정작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 순간 좀 허탈하기도 했지만, 묘한 쾌감이 느껴졌달까요. 그래서 이왕 이날은 목적 없이 좋은 감정들을 적어 보는 시간으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어요. 틀을 깨보자 싶었죠. (옆을 가리키며) 혜원 님은 일기장에 메모하고 계시네요?
윤혜원  맞아요. 저는 일기를 매일 쓰지는 않고 드문드문 적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타인이 제게 해준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다 보니, 일기장에도 누군가에게 받은 쪽지나 같이 찍은 사진들 위주로 기록해 둬요. 그때 내가 어땠는지는 아주 짧게만 적고요.
김승혁  저도 요즘 기록하고 있는데요. 출근하기 전에 맥북을 켜서 세 마디 정도 하고 나가요. 대학생 때 시간이 많아서 혼자 브이로그를 찍었어요. 그 기록을 시간이 지나 다시 또 볼 때마다 짧은 새에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성장했다는 게 실감이 되더라고요.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또 다르구나 싶었고, 아예 주기적으로 기록을 해두기로 마음을 먹었죠. 편집하지 않고 쉽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지금의 방식을 시도해 보게 되었어요. 매일 하는 건 아닌데, 출근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찍어보는 중이에요.
문혜성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보면 정말 색다를 것 같아요.
김승혁  맞아요. 하물며 머리 모양 달라지는 것까지 다 담겨있으니까요.
송다혜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하는 게 오히려 기록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심어주는 것 같아요.
오은재  맞아요, 얼마 전 부산에 내려가서 호텔을 취재하고 왔는데요. 방문객들의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매우 중시하는 곳이라 기록에 관련된 콘텐츠로 채워져 있었어요. 거기에서 소소문구와 함께 협업하여 'Morning book'을 제작했더라고요. 기록 방식도 세세하게 적혀있었는데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은 노트를 펼치고선 매일 세 장 정도 기록을 하는 거예요. 아침부터 오롯이 세 장을 내 생각으로만 채우기에는 다소 버겁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죠. 그런 분들께선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하나 적어보라고 추천하더라고요. 창문 밖 아침 풍경이 어떤지, 근처에 놓인 책에는 어떤 문장이 적혀있는지. 그런 것부터 기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직접 실행해 보니 재미있어서,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봐도 좋겠다 싶었어요.
김승혁  기록이… 중요한 것 같네요.
오은재  송 님은 어때요? 평소에 기록을 잘하시는 편인가요?
김송  저는 기록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작업에 관련된 내용들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려고 노력은 하죠.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는 마음이 안 좋을 때 엄청나게 일기를 썼던 것 같아요. 예전에 책 만드는 프로그램을 한 번 신청했던 적이 있어요. 수업을 신청한 날부터 꾸준히 기록해야만 했는데, 그때도 힘들었던 기간에만 잔뜩 썼어요. 마음이 괜찮을 땐 백지더라고요.
송다혜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기록하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김송  맞아요. 저는 다 써두고 안 봐요.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이니 다시 읽고 싶지 않거든요. 데스노트 같기도 하고(웃음).
송다혜  저는 그 방법도 되게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나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것도 아니고, 바깥으로 표출하긴 하는데 타인한테 영향이 가는 건 아니니까요. 뭔가를 적어 내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될 것 같아요.
김송  저도 생존하기 위해서 적었던 것 같아요. 별다른 목적이 있다기보단,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 힘들 것 같아서 적었죠.
이송은미  저는 아침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일기를 함께 들고 가요. 저희 동네 산책로는 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요. 중간 지점에 카페가 하나 있어요. 산책하고 꼭 그곳에 들러서 일기를 쓰고 집에 가는 게 아침마다 하는 루틴이었어요. 그걸 1년 정도 반복했고요. 저도 처음에는 쏟아내기 위해 일기를 적었어요. 생각이 너무 많으면 가끔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좋은 생각이던, 나쁜 생각이던 상관없이요 그럴 때마다 그걸 어딘가에 잠깐 비워두기 위해 적고 나면 훨씬 가벼워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일기랑 산책하러 나가기 시작했어요.
송다혜  수첩이 되게 작아야겠네요.
이송은미  얇은 수첩도 좋아요. 다 쓰고 나면 뿌듯하니까요.





이야기를 마치며

송다혜  은재 님이랑 혜원 님께선 라운드 테이블 직접 해보고 나니까 어떠세요? 소감이 궁금해요.
오은재  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다양한 환경에 계신 분들과 함께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얻게 되는 것도 있었고, 더불어 생각도 많아지더라고요. 시간 내어 '나는 나를 잘 챙기고 있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나니, 그간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여기에 모인 분들 모두 원하는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식을 찾아 나가고 계신 것 같아요. 듣는 동안 많이 배웠어요. 이제 운동도 해야 하고, 기록도 해야 하겠고, 아침마다 촬영도 해야겠고… 다 해보려고요(웃음).
윤혜원  저는 오늘 오기 전에 은재 님이랑 카페에서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요. 저희 둘 다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모르겠다.', '돌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하다 왔어요. 그런데 어쨌든 저희를 비롯한 여기에 계신 분들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은 잘 모르더라도,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끝내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알아내지 않을까 싶었고요. 이 대화가 끝난 뒤에도 은재 님이랑 '나를 위한 방법을 찾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오은재  좋아요(웃음). 다른 분들은 어떠셨나요?
김송  질문이 좋아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나니 훨씬 더 좋네요.
김승혁  '지키고 싶은 나의 모습'이란 문장이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거든요. 앞으로 종종 곱씹게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씨앗을 키우며 쌓아온 좋은 시간을 이야기해 주실 때마다 이 일에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라운드테이블도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겠죠. 어딘가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하고 난 뒤 동력을 얻었어요. 사전에 공유해 주신 인터뷰 질문지에 씨드키퍼가 ‘누구를 위한 걸까?’, ‘왜 해야 하는 걸까?’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결국 돌보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좁은 의미로는 식물을 돌보는 사람들이겠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돌보고, 삶을 돌보고, 공동체와 세상을 돌보는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꾸려나가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요.
— 《AROUND》 Vol.88 씨드키퍼 인터뷰 <지긋함을 기르는 일> 중에서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3

진행 일시: 2023년 5월 17일
진행 시간: 120분
참여자: 김송, 김승력, 문소영, 윤혜원, 오은재, 이송은미
기획/ 진행: 씨드키퍼

녹취록 작성 및 편집: 어라운드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은 다양한 '돌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장입니다.
라운드테이블은 계속해서 비정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전시 또는 책 등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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