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아카이브]모모스커피 X 씨드키퍼 <SEED TO CUP TO THE GROUND> 팝업 스토어
2023-06-02
조회수 1726
모모스 커피 온천장 본점의 정원
씨앗키트 2세대 출시를 위해 한창 야근을 이어가던 어느 날, 모모스 커피(이하 모모스)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모모스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의 시연 영상이 떠올랐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군더더기 없는 동작,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서 진심을 전하는 듯한 또렷한 목소리는 무언가에 깊게 빠져들어 몰입한다는 건 이런거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영상에서조차 그 에너지가 느껴져서 무척 인상깊게 봤던 터라 그와 함께 커피를 만드는 팀은 어떤 사람들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심지어 이번에는 경험 중심의 팝업 스토어를 함께 기획해 보자는 제안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모모스는 매장에서 만들어지는 커피박을 활용해 순환의 메세지를 전하고자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만큼, 매일 생산되는 커피박의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곤 하는데, 사실 커피박에는 식물이 필요로 하는 미량 원소들이 풍부해 좋은 퇴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커피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또 사람들이 직접 커피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올해 봄은 마침 2년 만에 모모스의 봄 블렌드가 출시되는 시점이었다. 우리는 한 알의 씨앗이 한 잔의 커피가 되고, 그것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을 지켜보며 일상을 이어 나갈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슬로건은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SEED TO CUP TO THE GROUND
“과거의 식물보다 더 많은 씨앗을 심는 것, 그 씨앗에서 자란 열매를 다시 땅으로 되돌리는 일에서 미래를 찾을 수 있다.”
밤낮없이 들락날락한 구글 스프레드 시트
모모스 팀과의 첫 만남이었던 단 한 번의 부산 미팅, 이후 나머지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이메일과 스프레드 시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서울과 부산에 각각 엉덩이가 붙어있는 채로 일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효율, 효율, 효율. 리소스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처음 합을 맞춰본 모모스의 혜진, 우진 님과의 팀워크는 가히 환상적이었다고 자찬해본다.
팝업 스토어 위치는 모모스 커피의 본점인 온천장점이었다. 온천장 본점은 비교적 새로 생긴 영도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뒤뜰이 숨어있는 초록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뒤뜰에는 오래 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외부 공간이 하나 있는데, 카페로 리모델링을 할 때도 거의 손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운치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더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비닐 커튼을 걷어내고 흰 소창을 좁은 폭으로 재단해 걸어두었다. 한들거리는 소창 사이로 봄바람을 느끼고, 드리운 대나무 잎의 그림자로 봄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층고가 워낙 높다 보니 비닐을 걷어내고 소창으로 바꿔 매다는 작업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팝업 전날 아침 서울에서 출발해 정오쯤 현장에 도착했는데, 당시 근무하시는 바리스타 분께서 기사님을 도와 이미 작업을 함께 돕고 계셨다. 사실 묵묵히 (그리고 너무나 잘) 계속해서 작업을 하시길래 처음에는 기사님과 함께 오신 분으로 착각해서 이런 저런 기술적인 질문을 여쭙기도 했다. (점점 더 궁금해지는 모모스 팀...)
디스플레이할 어린 식물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것 또한 미션이었다. 워낙 어린 상태라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뿌리와 줄기가 아직 약해 쉽게 상할 수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이동하는 길에 폭삭 주저앉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현장에서 받아본 식물들 모두 상한 것 없이 짱짱하게 버틴 모습을 보니 고맙고 대견했다. 이로써 우리가 직접 기른 설치용, 별도로 구매한 증정용 식물이 모두 준비됐다.
설치는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 가장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행사장의 동선이었다. 커피박 퇴비가 순환되는 과정을 알리는 전시용 패널, 모모스의 봄 블렌드 커피 시음, 직접 고른 씨앗을 파종해보는 경험까지, 방문객이 엉키지 않고 계곡물처럼 유려하게 흐를 수 있도록 테이블 배치 역시 이미 여러 번 시뮬레이션해본 상태였다.
가능하면 현장을 구성하는 모든 전시재료와 가구도 재활용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로 구비하고자 했다. 팝업이 끝나면 버려질 전시용 패널은 라이싱보드에 바로 인쇄해 종이로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했고, 방문객들이 직접 필요한 만큼 커피박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쪽에 바구니를 두었다.
4월 5일, 팝업 첫날은 비가 잔뜩 내렸다. 이날을 고대하던 우리야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었다. 올 봄은 유독 가물어서 여기저기 산불 때문에 난리였는데, 이날 내린 비로 잔불이 잡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이 비가 그치면 아직 깨지 못한 땅속 씨앗들도 일제히 깨어날 것이다. 나무가 행복한 날, 진정한 식목일다웠다.
어쩌면 첫날 내린 비는 우리를 환영하는 폭죽 같은 게 아니었을까. 다음 날부터는 꽤 멋진 날씨가 이어졌다. 잔뜩 습기를 머금고 고개를 떨구던 허브들도 슬슬 허리를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쨍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 실내에서만 머물긴 아까운 계절, 봄이다!
커피박 퇴비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제작했다. 모모스 커피매장에서 만들진 커피박에 부엽토를 섞어 한 달 이상 숙성했다. 두 가지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두면 3-5일 안에 미생물이 분해를 시작하면서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이 열기가 식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뒤집어주며 더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을 때까지 부숙하여 안정시킨다. 한 달 전 첫 미팅을 하러 왔을 때 만들어 둔 커피박 퇴비는 이미 야무지게 짙은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어쩐지 구수한 향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영롱하다. 농부 수업 때 땅심 좋은 흙일수록 색이 짙다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모모스와 씨드키퍼 협업의 핵심인 커피박 퇴비와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자 커피박이 퇴비가 되는 과정을 전시했는데, 방문객 분들도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소분해 함께 올려두었다. 패널 위에 얹은 한 글자 한 글자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실었다. 더욱 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길 바라며.
협업의 일환으로 준비한 제품은 씨앗 파우치. 야심차게 개발은 해두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출시 전인 상황이었다. 모모스를 위해 제작한 씨앗파우치 안에는 화분에 섞어줄 수 있는 약 2회 정도 분량의 커피박 퇴비를 함께 구성해 특별함을 남겼다. 씨앗은 봄 블렌드의 시트러스하고 플로럴한 풍미, 특히 작고 하얀 꽃을 닮은 화사한 기운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레몬밤과 캐모마일을 제안했다. 레몬밤과 캐모마일은 아로마가 풍부한 봄 블렌드를 연상시킨다는 것 외에도 초보자가 키우는 것이 까다롭지 않을뿐더러, 차로 우려 마시기 좋은 허브라 모모스에 어울리는 씨앗으로 적격이었다.
모모스 본점에는 '하트'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있다. 등에 커다란 하트 무늬가 있어서 모모스의 직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하트는 아주 자연스럽게 모모스 손님들과 합석하고는 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하트와의 합석을 싫어하는 손님은 보지 못했다. 모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하트를 바라봤다. 모모스 팀원들과 손님들 모두 '돌보는 사람들'이었다.
새롭게 리뉴얼된 2세대 제품인 큐레이션 씨앗키트와 팟 메이트 씨앗키트의 전체 라인업을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소개하는 자리였다. 씨앗 종류 또한 70종으로 업데이트 하며 누구나 부담 없이 한 번쯤은 씨앗생활을 쉽게 시작해 볼 수 있도록 가장 작은 단위의 씨앗키트인 '씨앗 팔레트'로서 개별 판매를 시작했다.
비로소 전 제품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지난 2년 간 우리가 잰걸음으로 종종거렸던 시간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한자리에 우리의 지난 이야기들을 쭉 늘어놓은 모습도 만족스러웠지만, 공들여 빚어낸 제품들이 소비자와 만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오래도록 아끼고 싶은 소중한 감각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도드라지는 특유의 긴장감이 있는데, 모모스에서는 어쩐지 달랐다. 오랜 단골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이곳 특유의 바이브인 건지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직원과 손님들 모두 비슷한 결로 느껴졌고, 우리도 거기에 물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네의 어르신들을 위해 매장의 앞문과 뒷문을 늘 열어두고, 먼 길을 돌아가지 않도록 지름길을 내어주는 그들이 내리는 커피가 어찌 맛있지 아니할까. 모모스의 커피는 정답고 포근한 맛이다. 긴 호흡으로 찬찬히 구경하던 손님, 팝업 기간 내 연달아 방문해 준 손님,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수다를 떤 손님,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쩐지 조금 그리운 마음이 든다.
모모스 직원들도 많이 방문해 주셨다. 오며 가며 며칠 내내 얼굴을 마주하니 상승하는 내적 친밀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조직감이다.
매일매일 챙겨주신 커피들. 모모스의 커피로 하루를 여는 아침이라니! 멋진 복지다.베이커리 팀의 환상적인 디저트류도 많이 챙겨주셨는데 먹느라 바빠 찍지 못한게 아쉽다.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로서 만난 모모스의 혜진 님과 우진 님. 어제 없던 것도 오늘 새로 만들어 내는, 마치 캐스터네츠 같은 경쾌한 합이었다. 겨우 한 달 남짓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신명나게 일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향점이 닮은 사람들과 만나면 과정은 여행이 된다.
뒤뜰 한 켠에 남기고 온 씨드키퍼의 흔적.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모모스에는 유독 장기 근속자와 오랜 단골이 많았다. 그들이 갖추고 있는 것들 중 우리가 앞으로 갖춰나가야 하는 것에 대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즐겁게 일한다는 건 뭘까? 브랜드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건 무엇일까? 팝업을 운영하는 동안 우리는 이 공간으로 향하는 아침 저녁 내내 그 질문들로 대화를 나눴다. 5일 내내 그들과 함께하며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간극을 채우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것 같다.
모모스 커피 온천장 본점의 정원
씨앗키트 2세대 출시를 위해 한창 야근을 이어가던 어느 날, 모모스 커피(이하 모모스)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모모스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주연 바리스타의 시연 영상이 떠올랐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군더더기 없는 동작,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서 진심을 전하는 듯한 또렷한 목소리는 무언가에 깊게 빠져들어 몰입한다는 건 이런거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영상에서조차 그 에너지가 느껴져서 무척 인상깊게 봤던 터라 그와 함께 커피를 만드는 팀은 어떤 사람들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심지어 이번에는 경험 중심의 팝업 스토어를 함께 기획해 보자는 제안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모모스는 매장에서 만들어지는 커피박을 활용해 순환의 메세지를 전하고자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만큼, 매일 생산되는 커피박의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곤 하는데, 사실 커피박에는 식물이 필요로 하는 미량 원소들이 풍부해 좋은 퇴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커피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또 사람들이 직접 커피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올해 봄은 마침 2년 만에 모모스의 봄 블렌드가 출시되는 시점이었다. 우리는 한 알의 씨앗이 한 잔의 커피가 되고, 그것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을 지켜보며 일상을 이어 나갈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슬로건은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SEED TO CUP TO THE GROUND
“과거의 식물보다 더 많은 씨앗을 심는 것,
그 씨앗에서 자란 열매를 다시 땅으로 되돌리는 일에서 미래를 찾을 수 있다.”
밤낮없이 들락날락한 구글 스프레드 시트
모모스 팀과의 첫 만남이었던 단 한 번의 부산 미팅, 이후 나머지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이메일과 스프레드 시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서울과 부산에 각각 엉덩이가 붙어있는 채로 일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은 효율, 효율, 효율. 리소스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처음 합을 맞춰본 모모스의 혜진, 우진 님과의 팀워크는 가히 환상적이었다고 자찬해본다.
팝업 스토어 위치는 모모스 커피의 본점인 온천장점이었다. 온천장 본점은 비교적 새로 생긴 영도점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인 뒤뜰이 숨어있는 초록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뒤뜰에는 오래 전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외부 공간이 하나 있는데, 카페로 리모델링을 할 때도 거의 손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운치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더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비닐 커튼을 걷어내고 흰 소창을 좁은 폭으로 재단해 걸어두었다. 한들거리는 소창 사이로 봄바람을 느끼고, 드리운 대나무 잎의 그림자로 봄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층고가 워낙 높다 보니 비닐을 걷어내고 소창으로 바꿔 매다는 작업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팝업 전날 아침 서울에서 출발해 정오쯤 현장에 도착했는데, 당시 근무하시는 바리스타 분께서 기사님을 도와 이미 작업을 함께 돕고 계셨다. 사실 묵묵히 (그리고 너무나 잘) 계속해서 작업을 하시길래 처음에는 기사님과 함께 오신 분으로 착각해서 이런 저런 기술적인 질문을 여쭙기도 했다. (점점 더 궁금해지는 모모스 팀...)
디스플레이할 어린 식물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것 또한 미션이었다. 워낙 어린 상태라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뿌리와 줄기가 아직 약해 쉽게 상할 수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이동하는 길에 폭삭 주저앉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현장에서 받아본 식물들 모두 상한 것 없이 짱짱하게 버틴 모습을 보니 고맙고 대견했다. 이로써 우리가 직접 기른 설치용, 별도로 구매한 증정용 식물이 모두 준비됐다.
설치는 밤 늦게까지 계속됐다. 가장 신경 쓴 것 중 하나는 행사장의 동선이었다. 커피박 퇴비가 순환되는 과정을 알리는 전시용 패널, 모모스의 봄 블렌드 커피 시음, 직접 고른 씨앗을 파종해보는 경험까지, 방문객이 엉키지 않고 계곡물처럼 유려하게 흐를 수 있도록 테이블 배치 역시 이미 여러 번 시뮬레이션해본 상태였다.
가능하면 현장을 구성하는 모든 전시재료와 가구도 재활용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로 구비하고자 했다. 팝업이 끝나면 버려질 전시용 패널은 라이싱보드에 바로 인쇄해 종이로 분리배출할 수 있도록 했고, 방문객들이 직접 필요한 만큼 커피박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쪽에 바구니를 두었다.
4월 5일, 팝업 첫날은 비가 잔뜩 내렸다. 이날을 고대하던 우리야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었다. 올 봄은 유독 가물어서 여기저기 산불 때문에 난리였는데, 이날 내린 비로 잔불이 잡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이 비가 그치면 아직 깨지 못한 땅속 씨앗들도 일제히 깨어날 것이다. 나무가 행복한 날, 진정한 식목일다웠다.
어쩌면 첫날 내린 비는 우리를 환영하는 폭죽 같은 게 아니었을까. 다음 날부터는 꽤 멋진 날씨가 이어졌다. 잔뜩 습기를 머금고 고개를 떨구던 허브들도 슬슬 허리를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쨍한 햇빛과 서늘한 바람. 실내에서만 머물긴 아까운 계절, 봄이다!
커피박 퇴비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제작했다. 모모스 커피매장에서 만들진 커피박에 부엽토를 섞어 한 달 이상 숙성했다. 두 가지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두면 3-5일 안에 미생물이 분해를 시작하면서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이 열기가 식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뒤집어주며 더 이상 온도가 오르지 않을 때까지 부숙하여 안정시킨다. 한 달 전 첫 미팅을 하러 왔을 때 만들어 둔 커피박 퇴비는 이미 야무지게 짙은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어쩐지 구수한 향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영롱하다. 농부 수업 때 땅심 좋은 흙일수록 색이 짙다고 하신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모모스와 씨드키퍼 협업의 핵심인 커피박 퇴비와 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자 커피박이 퇴비가 되는 과정을 전시했는데, 방문객 분들도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소분해 함께 올려두었다. 패널 위에 얹은 한 글자 한 글자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실었다. 더욱 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길 바라며.
협업의 일환으로 준비한 제품은 씨앗 파우치. 야심차게 개발은 해두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출시 전인 상황이었다. 모모스를 위해 제작한 씨앗파우치 안에는 화분에 섞어줄 수 있는 약 2회 정도 분량의 커피박 퇴비를 함께 구성해 특별함을 남겼다. 씨앗은 봄 블렌드의 시트러스하고 플로럴한 풍미, 특히 작고 하얀 꽃을 닮은 화사한 기운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레몬밤과 캐모마일을 제안했다. 레몬밤과 캐모마일은 아로마가 풍부한 봄 블렌드를 연상시킨다는 것 외에도 초보자가 키우는 것이 까다롭지 않을뿐더러, 차로 우려 마시기 좋은 허브라 모모스에 어울리는 씨앗으로 적격이었다.
모모스 본점에는 '하트'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있다. 등에 커다란 하트 무늬가 있어서 모모스의 직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하트는 아주 자연스럽게 모모스 손님들과 합석하고는 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하트와의 합석을 싫어하는 손님은 보지 못했다. 모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하트를 바라봤다. 모모스 팀원들과 손님들 모두 '돌보는 사람들'이었다.
새롭게 리뉴얼된 2세대 제품인 큐레이션 씨앗키트와 팟 메이트 씨앗키트의 전체 라인업을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소개하는 자리였다. 씨앗 종류 또한 70종으로 업데이트 하며 누구나 부담 없이 한 번쯤은 씨앗생활을 쉽게 시작해 볼 수 있도록 가장 작은 단위의 씨앗키트인 '씨앗 팔레트'로서 개별 판매를 시작했다.
비로소 전 제품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지난 2년 간 우리가 잰걸음으로 종종거렸던 시간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한자리에 우리의 지난 이야기들을 쭉 늘어놓은 모습도 만족스러웠지만, 공들여 빚어낸 제품들이 소비자와 만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오래도록 아끼고 싶은 소중한 감각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도드라지는 특유의 긴장감이 있는데, 모모스에서는 어쩐지 달랐다. 오랜 단골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이곳 특유의 바이브인 건지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직원과 손님들 모두 비슷한 결로 느껴졌고, 우리도 거기에 물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네의 어르신들을 위해 매장의 앞문과 뒷문을 늘 열어두고, 먼 길을 돌아가지 않도록 지름길을 내어주는 그들이 내리는 커피가 어찌 맛있지 아니할까. 모모스의 커피는 정답고 포근한 맛이다. 긴 호흡으로 찬찬히 구경하던 손님, 팝업 기간 내 연달아 방문해 준 손님, 오랜 친구처럼 편하게 수다를 떤 손님,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쩐지 조금 그리운 마음이 든다.
모모스 직원들도 많이 방문해 주셨다. 오며 가며 며칠 내내 얼굴을 마주하니 상승하는 내적 친밀감. 오랜만에 느껴보는 조직감이다.
매일매일 챙겨주신 커피들. 모모스의 커피로 하루를 여는 아침이라니! 멋진 복지다.베이커리 팀의 환상적인 디저트류도 많이 챙겨주셨는데 먹느라 바빠 찍지 못한게 아쉽다.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로서 만난 모모스의 혜진 님과 우진 님. 어제 없던 것도 오늘 새로 만들어 내는, 마치 캐스터네츠 같은 경쾌한 합이었다. 겨우 한 달 남짓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신명나게 일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향점이 닮은 사람들과 만나면 과정은 여행이 된다.
뒤뜰 한 켠에 남기고 온 씨드키퍼의 흔적.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모모스에는 유독 장기 근속자와 오랜 단골이 많았다. 그들이 갖추고 있는 것들 중 우리가 앞으로 갖춰나가야 하는 것에 대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즐겁게 일한다는 건 뭘까? 브랜드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들의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건 무엇일까? 팝업을 운영하는 동안 우리는 이 공간으로 향하는 아침 저녁 내내 그 질문들로 대화를 나눴다. 5일 내내 그들과 함께하며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간극을 채우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것 같다.
모모스 커피 X 씨드키퍼 팝업 스토어 <SEED TO CUP TO THE GROUND>
모모스 커피 온천장 본점
2023.4.5 - 4.9
글 | 씨드키퍼 사진 | 씨드키퍼 / 모모스 커피
© seedkee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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