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DGE ROUNDTABLE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2
돌보는 사람들 소개
강아름 힘든 상황 속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는 마음의 힘
김청 단단하게 더 멀리 나아가는 자기 돌봄
나해민 아침과 저녁 루틴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삶
서가은 어린이 콘텐츠 기획자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의 자기 성장
이정은 알아차림의 관찰카메라로 촬영하듯 자기 객관화 하기
정샘물 기분을 북돋는 일상 속 소소하고 귀여운 즐거움
조소연 타인을 돌보는 간호사의 삶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삶으로
송다혜 안녕하세요. 저는 혜성 님과 함께 씨드키퍼를 운영하고 있는 송다혜입니다. 저희는 씨앗을 매개로 다양한 제품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이번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은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께 직접 신청을 받았습니다. 신청해주신 분들 외에 돌봄에 대해 특정한 시각을 갖고 계신 분들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체조 스튜디오의 정은 님과 아름 님 두 분을 같이 모셨어요. 직접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정은 체조 스튜디오는 출판사 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다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와는 조금 다르게 저희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고 홍보까지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거기에서 발행하는 첫 번째 그 프로젝트가 <사물함>이라는 매거진이고, 현재 6호까지 발행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10호까지 기획되어 있는 거여서 거의 중반을 넘은 상태입니다.
김청 10호까지만 발행하시고 그만하시는 건가요?
이정은 그건 아닌데 딱히 정해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일단 10호까지 즐겁게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요. 가까워지니 저희도 기분이 조금 이상해요.
송다혜 <사물함>이라는 매거진이 특정 사물들에 대해 깊은 통찰과 사유를 보여주고 있어서 저희는 꼭 생물이 아니더라도 사물 역시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번 주제가 나를 돌보는 것인 만큼 사물을 통해서 자신들을 돌보고 계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체조 스튜디오를 모시게 됐고요. 가은 님은 저희와 <레터 투 레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분인데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서가은 저는 지금 4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고요. 원래는 전시나 공간 기획을 했어요. 어린이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다가 어린이 작업실 기획과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일을 해보니 아이를 돌보는 것은 관찰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또 거기에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게 제 아이를 키우는데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육아를 하는 중이지만, 원래 하던 일의 연장선 같기도 하고요. 제가 했던 일의 경험 때문에 아이를 돌볼 때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송다혜 네 분은 직접 참여 신청을 해 주셨는데요. 자기소개나 신청하시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 부탁드려요.
나해민 제가 먼저 할게요. 저는 나해민이고요. 전에는 번역 일을 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어요. 누수와 함께 집이 엉망이 돼서 7월 한 달 동안 자기 돌봄을 못하고 일상의 루틴이 완전 망가진 상태였어요. 8월부터는 자기 돌봄을 다시 해야겠다 싶었는데 코로나에 걸렸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자기 돌봄을 해야한다고 마음 먹고 있어요. 평소에 요가나 명상으로 마음 챙김이라는 수련을 1-2년 해왔는데 이번 일로 갑자기 홈리스가 되면서 일상의 루틴이 깨지니까 힘들더라고요.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다 흔들리는구나를 깨달았고요.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를 좀 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서 신청했습니다.
조소연 뽑힐 줄 몰랐고요. 당일에 급하게 글을 보내서 기대를 안 하고 있었어요. 저는 조소연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 일을 했어요. 잠시 면허증을 덮어두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 상태입니다.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저에게 초점을 맞추니까 벙 찌는 상황을 경험했어요.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나서 번아웃이 뒤늦게 왔는데, 그때부터 자기 돌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이런 저의 경험을 나누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다른 분들도 각자의 경험을 하고 계실텐데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을지 궁금하고 배워보고 싶어서 신청했습니다.
김청 제 이름은 김청이라고 하고요. 푸를 청자는 아니고 시청 구청 할 때 청자입니다. 저는 자기 돌봄과 더불어서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요즘 저한테 엄청 큰 이슈인데요. 왜냐면 제가 브랜드 매니저로 다니는 회사가 법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법인도 하나의 법 인격체잖아요.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반려법인을 돌보는 일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하면 법인을 대표자와 분리시키고 법인 자체로 독립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형의 법인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이곳에 소속되어 있는 유형의 구성원 한명 한명을 잘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짝사랑하는 느낌으로 좋아하는 씨드키퍼에서 돌봄에 대한 키워드를 제시하니까 이 팀은 어떻게 브랜드를 돌보고 계신시도 궁금하고 힌트를 얻고 싶다는 마음에 신청하게 됐습니다.
정샘물 제 이름은 정생물이고요. 청 님이 말씀하셨던 인격체처럼 느껴진다는 게 공감이 갔는데요. 저도 씨드키퍼를 짝사랑하는데 씨드키퍼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져서 어딘가에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건 TMI였고요. 저는 최근에 돌보는 거를 좀 쉬었다가 다시 시작했어요. 그 이유가 최근에 직업을 바꾸게 되면서 다시 신입으로 들어가 새로운 걸 배우고 거절당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또 스스로를 의심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를 잘 돌보고 단단해져야 이걸 견디겠구나 싶었어요. 어떻게든 헤쳐나가려고 노력 중에 이 주제가 눈에 띄었구요, 그래서 신청했습니다.
송다혜 저희가 크게 세 가지 질문을 준비했고, 그에 따른 조금 상세한 질문들을 하단에 적어놨어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모든 질문에 답하실 필요는 없고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그냥 편하게 나눠주시면 돼요. 꼭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른 분들 이야기 도중에도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편하게 수다 떤다고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시면 됩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부터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요. 각자 스스로를 어떻게 돌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이 자리에 참여하신 이유가 스스로 돌보는 게 필요해서 참여를 하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스스로를 잘 돌보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스스로 잘 돌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어떻게 돌보고 계신지 저희한테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해민 7월 이전으로 가도 될까요? 코로나 이후에 문화 생활을 못하니까 그때부터 명상을 시작했어요. 2020년 3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계속 수련하고 있는데요. 아침 루틴처럼 일어나면 스트레칭하고, 명상하고, 차 한 잔 끓여 마시고 그 다음 일을 시작하는 게 지난 1-2년간의 제 루틴이에요. 저는 아침잠이 많고, 일어났다고 바로 감각들이 깨어나진 않는 사람인데요. 명상과 스트레칭을 통해 내 몸과 정신을 천천히 깨우는 게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카페인에도 민감해서 대신에 차를 마시며 마음의 안정과 맑은 정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밤에는 저널링이라고 해서 생각을 글로 적어내는데요. 그러면 잡생각이 걸러내지니까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송다혜 시간을 나눠서 돌보시는게 인상적인데요.
나해민 네, 7월 이전까지는 완벽했어요.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죠.
강아름 하루라도 못하게 되는 날은 없었어요?
나해민 시간을 점차 늘려간 케이스예요. 아침 20분으로 시작해서 아침에 20분, 저녁에 20분으로 늘려갔어요. 저도 출퇴근을 했을 때는 아침이나 저녁에 둘 중 한 번이라도 하자 싶었는데요. 빼먹으면 몸이 더 힘들더라고요. 제 일이 오래 앉아서 계속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다보니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스트레칭 안 하면 일이 안 될 정도라서요. 요가와 스트레칭을 추천합니다.
문혜성 저는 약간 자기 비하가 있는 편이거든요. 자기 자신한테 혹독할 때가 많아서 최근에는 의식적으로 잠자기 전에 스스로 생각했을 때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나 좀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잘했다하며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있습니다. 셀프로 도닥이면서 ‘괜찮다~착하다~착하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명상 통해서 많이 도움 받는 편이에요.
정샘물 저는 요즘 일기 쓰고 있어요. 오늘 뭐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괜찮아 잘 했어, 멋있어, 충분해, 이런 말을 일부러라도 자신에게 해주면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까 해민 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차 마시고, 명상하는 거요. 전 명상은 아직은 안 해봤지만, 차 마시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집에서 제일 예쁜 잔에 차를 마시고, 거기에 좋아하는 사탕을 하나 먹는다든가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테이블매트를 깔고 예쁜 그릇에 밥을 차려먹는 것도 그렇고요.
강아름 생각해보면 저의 경우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의지가 깨져서 오히려 최대한 그렇게 안 하려고해요. 그럼에도 습관이 되는 것들 있잖아요. 산책처럼 살다보면 노력하지 않음에도 습관이 되는 것들에 도움을 많이 받는데요. 그렇다고 나는 지금 힘드니까 산책을 해야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일기를 쓰는데, 그것도 쓰고 싶은 날만 쓰고 있어요. 이 밖에는 디자인 일을 하다보면 계속 앉아있게 되는데, 점심에는 일어나서 꼭 요리를 해먹으려 해요. 그 시간이 환기가 되고 다시 이어서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저희 디자인 스튜디오는 지금 거의 푸드 스튜디오거든요.
이정은 장 보고 메뉴 준비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하다가 저희가 선택한 방법은 ‘어글리 어스’인데요. 유기농 야채가 주기적으로 배달되면 그냥 오는 대로 해먹어요. 저도 아름과 비슷한 게 뭔가 해야지 생각한 순간 압박처럼 느껴져요. 일 끝나면 무조건 잘 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어떻게 쉬는지는 그때 그때 달라요. 어떤 날은 산책이 하고 싶고, 어느 날은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만 싶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루틴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나봐요.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그 시간대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조금씩 더 빨라져요.
나해민 저는 확실히 계획형 인간인 것 같아요. 모르고 지냈는데 주변에서 너는 확실히 J라고 하거든요. MBTI도 해본 적 없다가, 주변에서 그렇게 말해줘서 찾아봤어요.
송다혜 해민 님은 명상을 시작하고 루틴을 만들게 된 계기가 뚜렷하네요.
나해민 저는 문화 생활을 많이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마음처럼 안 되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생각을 빨리 비울 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을 스스로 아니까 잡생각을 비우고자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0분, 15분 하다가 점점 길어지면서 40분에서 한 시간까지 하게 된 케이스예요. 차츰 차츰 늘어나더라고요.
정샘물 스스로를 더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 타이밍을 잘 캐치하셨네요.
나해민 제가 그 당시에는 본가에서 지낼 때라 더 그랬을 거예요.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어딜 가도 서점이나 카페처럼 기분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을 텐데요. 저희 본가는 섬마을이거든요. 관광단지가 특화된 곳이라 차 없으면 어디를 갈 수가 없어요. 사실 그 당시까지도 식물을 키우고 있지 않았어요. 저에겐 어려운 존재여서요. 어머니가 키우시는 식물을 보고 즐기기만 하고, 취미라고는 같이 사는 강아지 두 마리 케어밖에 없을 때라 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굉장히 부족했어요.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활력을 얻는 사람인데, 그게 안 되니까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풀 방법이 필요하더라고요. 이런 필요성이 고립되어 있으니 더 크게 와닿았는데, 사람 만날 일이 없는 곳에 머물렀던 것의 장단점인 것 같아요.
김청 저도 아주 구체적인 루틴이 있으면 오히려 ‘아, 모르겠다.’ 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있는데요. 노력하는 것은 집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 놓고 의식적으로나마 고양이들에게 집중하려고 해요. 13살된 고양이와 5개월 된 고양이가 있는데요. 5개월 된 아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타일이어서 보고 있으면 잡생각을 없애기 좋아요. 계속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니까.
송다혜 자연스럽게 루틴 얘기가 나왔는데요. 저는 사실 루틴을 만들면 압박이라고 느껴지거든요. 근데 또 루틴이 잘 맞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해민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나 이때 이걸 해야 돼.’가 아니라 그 시간대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조금씩 더 빨라져요.
조소연 저도요. 저는 진짜 즉흥적이거든요. 여행 계획을 세워도 남들 가는 곳에 가기 보단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만 다니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제가 올해 루틴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간호사에서 다른 일반 회사로 전직을 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자 싶어서 스케줄러 시간대별로 뭘 해야하는지 적기 시작하면서 그 옆에 감정도 기록했었어요. 그렇게 기록을 하다보니까 어떤 타이밍에 제가 에너지가 생기는지 보이더라고요. 그럼 에너지가 생기는 시간에 뭔가 좀 더 해볼까 싶었는데, 근데 또 루틴으로 만들면 괜히 하기 싫은 거 아시죠? 그냥 하기 싫어져요. 작심 3일도 여러 번 하면 30일이 된다는데, 작심 3일조차 못하겠을 때 자괴감을 많이 느꼈어요. 나는 왜 제2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가 싶어서요. 이렇게 흥청망청 내 마음대로 살다 가는 거 아닐까. 후회는 없겠으나 자꾸만 불안해지는 거죠. 행복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좀 아껴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요. 어느 순간 저 스스로를 좀 기다려주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장 하진 않더라도 까먹지만 말자 싶었어요. 언젠가는 하겠지 하면서. 그러다가 어쩌다 해내면 저 스스로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줬죠. 그렇게 해냈을 때 보상감을 한 번 느끼고 나니까 굳이 압박이라 느끼지 않아도 한 번 해볼까 싶은 순간이 자꾸 생기면서 횟수가 늘어나더라고요. 저만의 팁이 있는데요. 혹시 칭찬 스티커 붙이는 포도나무 기억 나시나요?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참 좋더라고요. 이런 기획으로 문구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작가님도 계세요. 왕 큰 포도나무, 왕 큰 사과나무 스티커 판을 샀어요. 목표는 크게 안 잡고 ‘7월 운동하기’ 정도로 설정했고, 해내면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어요. 그걸 보면 그래도 이번 달은 어쩌다 10번은 했구나, 나 잘했구나 하면서 운동하고 치킨 먹기 같은 보상도 해줬고요. 스스로 기다려주는 시간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닦달한다고 해서 안 할 거는 제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자기비하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해내면 크게 칭찬해주고. 횟수도 늘리고, 시간대도 고정하다보면 습관이 되더라고요. 저는 습관이 될 때까지 한 달정도가 걸렸어요. 한 석달은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거에 비해 빠르다 싶었고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도 스스로 기다리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눈에 보이게 보상해주는 것이 유치해보여도 기분은 좋아져요. 일기 쓰기 루틴도 그렇게 생활 방식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 자신과 너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 말고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자아를 조금 멀리 두고 관찰 카메라를 보듯 하는거죠.
문혜성 소연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각화하는 거라고 하거든요. 명상이 어려우신 분들은 일기를 쓰거나 아니면 포도나무 스티커처럼 내 마음을 시각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정은 듣다 보니 재밌는 포인트를 느꼈는데 이게 직업마다 진짜 다를 것 같아요. 저희는 항상 기다리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사생활로 넘어가면 무계획이 마냥 행복해요. 일일이 스케줄링을 해서 모든 관리자를 통솔해야 되는 역할이다보니까요. 내가 일상생활도 저렇게 한다고 생각을 하면 바로 번아웃이 될 것 같아요. 직업마다 루틴이 필요한 직업도 있고, 없는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강아름 내가 노력해서 루틴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 루틴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아까 소연 님의 포도나무 얘기 듣다보니 친구가 생각났어요. 어떤 친구가 적응도 어렵고 삶이 힘들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하니까 다른 친구가 인생에는 작은 성취들이 진짜 중요하다 말하더라고요. 그런 작은 성취들을 쌓아가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요. 힘들어하는 친구가 그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하니까 말해준 방법이 오늘 하루 동안 해야할 것, 하고 싶은 걸 다섯 가지 적어보라고, 물 마시기 정도라도 해낸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 성취감이 든다고.
이정은 작게 잡으신 게 포인트인 거 맞아요. 작은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요. 그 작은 범위가 나한테 작은 건지 알려면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거가 제일 우선이라 생각하는데요. 해민 님이 하시는 돌봄이 나한테는 큰 일인데, 해민 님에게는 쉬운 거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아는 것이 돌봄의 가장 기초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는데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약 7년을 말이죠. 그때 1년 정도는 휴학생으로 있다가 자퇴를 하고 나니 저를 설명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휴학생으로 지내는 1년 동안은 진짜 행복했죠. 그런데 휴학생이라는 신분을 지우고 나니까 주변에서 우려 섞인 걱정만 들리더라고요. 어쩔 때는 괜찮은 척도 해보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야하는 일들이 생기니까 ‘그럼 나는 왜 이런 결단을 했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노선에서 탈피했다’고 표현 하는데요. 잘 살아가는 친구들을 관찰자 입장이 되어서 오랜 기간 지켜보고 또 그런 과정 중에 궁금하던 것을 스스로 발견한 것이 지금의 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럴 때 내 자신과 너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 말고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자아를 조금 멀리 두고 관찰 카메라를 보듯 하는거죠.
조소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정은 저는 관찰 카메라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방법을 쓰거든요. 그러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를 돌보는 것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진짜 효과적이에요. 잘 모르겠을 때는 누가 이걸 본다고 생각하면 바로 파악이 되는 거요. 자신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생각하고 결속되면 더 이상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조금은 노선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고요. 저도 직업을 늦게 발견한 편인데요. 직업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 여러 가지 방법을 많이 경험해볼 수 있었던 운 좋은 케이스예요. 늦게 발견한만큼 조급해지지 않으려면 자기를 잘 돌봐야하는 것 같고요.
김청 그러면 관찰 카메라를 돌려보시다가 이런 일을 하는 게 좋겠는 걸 하고 깨달으신 거예요?
이정은 관찰이랑 연관이 있어요. 일본어가 전공인데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방에 홍보물이 진짜 많은 거예요. 안 버리고 다 모아뒀더라고요. 이런 종이쪼가리는 내가 안 버리는 건줄만 알았는데 못 버리겠더라고요. 아, 내가 이런 인쇄물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가부터 시작해서 결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랬을 때 저는 제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너 이거 왜 못 버려?’라는 질문을 해줬거든요. 저는 스스로 발견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발견해주는 것 같아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뒤늦게 적성을 찾은 거죠.
서가은 저도 나를 돌봐야 한다는 피로를 느낄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나를 객관적으로 자각하는 거예요. 그 방법으로는 일기 쓰기가 제일 좋은 것 같고요.
인생은 하락장일 때도 있고, 상승장일 때도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커다란 흐름 안에서 내가 우상향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강아름 이런 방법도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 상황일 때 어떻게 할까? 상상해보는 거요. 이 방법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돼요. 객관화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무언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객관화가 먼저 되어야 그 다음에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송다혜 사실 객관화가 쉽지 않잖아요. 두 분은 굉장히 가깝고 늘 같이 계시니까 혹시 서로 물어보기도 하세요?
강아름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이상하면 말해주자.
이정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늙어서 추한 짓 했을 때 경고를 해주자.
송다혜 스스로보다 깨닫는 것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먼저 알아차려주는 거 고맙잖아요.
이정은 저는 나눠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2021년의 나와 2022년의 나. 객관화했다고 한 내 자신이 계속 한결 같다 생각하는 게 이상해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경험도 달라지고, 또 다른 편견이 생길 수도 있고요. 옛날의 모습을 아쉬워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송다혜 시점을 나누는게 좋네요.
이정은 때마다 너무 다르니까요. 이렇게 시간으로 나누는 게 도움이 돼요.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간으로 나누면 어떤 성장이 있었고, 뭐가 도태됐는지 잘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김청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인생은 정반합이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주식 그래프에 대입하면 인생은 하락장일 때도 있고, 상승장일 때도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커다란 흐름 안에서 내가 우상향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상태가 안 좋고, 주변에 문제 상황이 많아도 조금 떨어져서 내 그래프를 바라보는 거요. 나 지금 우상향인지, 어떻게 다시 올라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정은 저는 올라가려고 하다가 너무 힘들면 갑자기 우주의 기운을 막 믿어버려요. 실제로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신이 많대요. 그 말에 위안을 받았어요. 힘든 일은 웃고 무시해버리자, 그냥 운수가 안 좋았던 거야 생각하고 넘겨버리려고 노력해요.
김청 맞아요. 지금 별들의 자리가 그렇게 잡혀 있다고.
이정은 가끔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였다는 식으로 피해 다니기도 하고요.
종교를 떠나 자신의 영혼 상태에 대해 스스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고, 할 수만 있다면 타인을 위해 그런 부분을 서포트해주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소연 종교가 있는 분은 본인의 신앙 안에서 잘 해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 좀 특이하다 생각했던 것은 환자를 돌보는 영역으로 영적인 부분이 필수로 들어가더라고요. 믿음이나 이외 어떤 영적인 모든 경험들이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보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서도 해석이 모두 다르잖아요. 환자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때의 케어는 환자가 원하는 영적인 경험 또는 믿음에 근거해서 존중하라는 내용이었는데요. 한 번은 제가 미국 간호사를 준비한 적이 있어 그쪽 시험 문제를 보니 미국에는 몰몬교, 유대교 등 종교별로 장례 문화도 다 다르더라고요. 돌봄에 있어 개인의 영적인 경험과 영혼 상태가 많이 중요한 거구나 배웠어요. 종교를 떠나 자신의 영혼 상태에 대해 스스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고, 할 수만 있다면 타인을 위해 그런 부분을 서포트해주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청 대박, 이런 접근을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나해민 너무 놀라운 게 지난주에 제가 친한 오빠랑 얘기하면서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불안과 염려를 안고 사는데 믿음이 있는 신앙인들은 좀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간호학과 연결지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새롭네요.
조소연 믿음이 있어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인간이기에 죽음을 피해갈 수가 없으니까. 종교의 테마가 포용, 사랑, 자비, 죽음이잖아요. 그런걸 보면 인간이라면 종교가 있든 없든 간에 삶과 죽음이라는 통과의례에 대해서는 모두가 각자의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들어요.
정샘물 저도 소연 님 말씀에 공감하는데요. 저희집에 할머니가 계시는데 연세가 많으세요. 몇 년전부터 거희 100살 되어가신다했는데, 정확히 여쭤보니까 올해 99세라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넘어오셨는데, 그 시절에도 개신교도셨어요. 아기였던 이모를 등에 들쳐 업고 성경책 하나 들고 왔다 말씀하시는 분인데요. 연세가 많으셔서 기력이 쇠하셨음에도 할머니를 뵈면 사람이 사는데 있어 건강한 신앙관을 갖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다 느껴요. 젊은 시절에야 친구 있고, 가족 있지만 결국 타인의 존재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것이 필요한데, 신앙이 좋은 장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할머니는 불안해지면 기도를 많이 하시는데, 그런 기도들이 할머니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내 맘대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강아름 믿음이라는 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종교가 아니어도 믿음이란 것은 사람 사이에도 있잖아요. 관계에서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해요. 신뢰가 없는 관계에서는 나를 지키는 데 있어 의심이나 의혹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평온함을 많이 방해하는 것 같아요.
문혜성 자기를 돌봄에 대해서 관심 있는 분들이 모였고 일정 부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잖아요. 그럼 돌본다는 의식이 없었을 때 혹은 내 자신을 내버려 뒀을 때랑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을 때 어떤 삶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나해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나는 날 챙기고 있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20대 때는 통학이나 출퇴근으로 지옥철과 버스를 하루 4-5시간씩 타는 게 일상이었는데요. 이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었어요. 스트레칭 학원을 다닌다든지, 필라테스를 다닌다든지 해서요. 근데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쌓이면 누적이 되잖아요. 어느 선 넘어가면 도저히 머리가 감당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20대 때는 달리기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하면 풀릴 걸 알고 그랬다기 보단 부모님하고 싸웠을 때도 그렇고 화가 나는데 분출할 때가 없으니까 새벽에 많이 달렸어요.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달렸는가 30대가 돼서 돌아보니까요. 요즘에 읽는 책이 <우울할 때는 뇌과학>이라는 책인데, 거기서 말하길 달리면 엔돌핀이 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20대에 그렇게 달려서 미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나보다, 모르고 했지만 그런 시간들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준것 같다 싶어요. 20대엔 몸으로 풀었다면, 30대 되어서는 대형견 두 마리를 돌보게 돼서 몸으로 풀기엔 지치더라고요.
정샘물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강아지처럼 다른 대상을 돌보는 게 나를 돌보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식물을 기르는 것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송다혜 소연 님은 간호사 일 그만두시면서 변화가 크실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스스로를 돌보게 된 계기잖아요.
조소연 그렇죠. 어느 날 보니 남을 돌보다가 제가 죽어 나가고 있었어요. 아마 간호사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그럴 거예요. 간호사로 첫 직장이 대학병원이었는데. 엄격한 환경이었어요. 태움 당하는 것도 심하고, 간호사끼리 위계질서가 너무 세서 허용과 관용이 없는 집단이었거든요. 긴장을 많이 하니까 실수를 반복하는데, 실수하면 환자가 다치니까 부담감이 엄청 났고요. 3교대로 그날의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 집에 돌아가면 바로 자기 바쁘고, 다시 일하고, 자고, 일하고 이렇게만 지내서 신규 간호사 때는 기억이 없어요. 힘들게 일했던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았고, 그때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들로 일을 그만 두고 나서는 본가에 내려가 두문불출하고 이불 뒤집어 쓰고 울기만 했어요.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계속 혼나니까, 실수와 꾸중을 제 자신이라고 받아들인 거예요.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분리가 쉬웠을지 모르겠는데, 워낙 분위기가 엄격하고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조직이다보니 그럴 수 없었어요. 면전에다 온갖 말을 다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너 주는 월급이 아깝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분위기였단 말이죠.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요. 옆에서는 CPR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얼타는 신입을 보면 선배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뭐 하나라도 갖다 주던가 해야 하는데.
그렇게 저는 제가 아픈지도 모르고 앓으면서 몇 달을 지냈어요.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방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밥 주면 주는대로 먹기만 하고요. 저희 집 종교가 천주교인데요. 아빠가 너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산티아고 순례길 갔다 오는 거는 어떠냐 얘기하시더라고요. 갈 생각 없다가 첫 유럽 여행을 산티아고를 가게 됐는데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제 생일에 맞춰 떠났는데 과연 이 길을 걸으면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평소 운동도 안 하고 지금 체력도 바닥인데 완주는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제 26살 생일에 간 여행인데,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평생 전업 주부로 저희 돌보는 삶만 사신 분인데요. 나는 남을 돌보다 미쳐버릴 것 같아서 다 그만 두고 해외로 떠나는데, 우리 엄마는 26살에 나를 낳고 지금쯤 몸을 풀고 있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복잡미묘하더라고요.
한 달을 걷고 무사히 돌아왔는데, 돌아와서도 똑같았어요. 삶은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대단한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요. 그래도 자연 속에서 저 혼자 머무르면서 제 상태를 돌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던 것이 감사했어요. 산 하나 없이 너른 대평원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나무를 보며 사람 한 명 없는 길을 걸으면서 어떻게든 다음 숙소까지 도착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요. 내가 왜 이 고역스러운 거 선택했을까 생각하다가 간호사 일 하면서 힘들었던 것 생각하면서 길에서 혼자 막 울기도 하고, 길 위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거기 어르신이 저에게 해준 말씀이 ‘순례길이 인생길이야. 너는 너무 젊고, 기회가 많아. 왜 이렇게 힘들어 하니?’ 하셨거든요.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 돌아와서 다시 취업을 해야했지만, 산티아고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 전에는 그냥 되는대로, 조직이 원하는대로 또는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사회가, 학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면 이젠 좀 내가 원하는대로 제대로 해봐야겠다 마음 먹었죠. 그리고는 곧바로 헬이었지만요. 돌봄에 대한 애착이 남아 NGO일을 좀 도왔는데, 이 이상 돌봄을 전문직으로 하지 말고 나를 돌보자는 생각에 지금은 영상 콘텐츠를 만들려고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간호사로 일했던 때가 가장 의미있었어요. 저의 젊음, 에너지, 감정까지 제 모든 것을 바쳐서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마지막을 지킨 경험이 가치있죠. 꼭 간호사여서라기 보단 이런 관점으로는 엄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만 한 것 같아요. 간호학에서는 간호의 시작은 모성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모계 사회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의 계승이랄까요. 그런 내용이 기초 간호학에 있어요. 돌봄의 코드에 엄마 얘기는 빠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관계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울 수 있는 거를 찾아야 한다 생각해요. 무엇보다 엄마는 처음 해보는 거니까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듯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어떤 엄마가 되어 아이와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 계속 알아가야 하는 거예요.
서가은 저는 오늘 되도록 듣기만 하려고 했는데요. 사실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는 분께 저의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송다혜 공감을 얻지 못할까봐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하는 건지 어려워서일까요?
서가은 내 선택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이 일을 힘들다고 하는 것이요.
김청 선택해서 입사해도 ‘왜 이렇게 힘들지?’ 하잖아요.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조소연 책임감이 엄청 날 것 같아요. 회사는 퇴사하고 말지만, 엄마는 그만두지를 못하잖아요.
김청 법인 사업체도 힘들어요. 포켓몬 비유를 하게 되는데,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진화할 때 과정이요. 저는 대표는 아니고 직원이지만, 제가 사랑하는 이 브랜드가 아직 올망졸망한 상황에서 건강하게 자립시키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하는데요. 만약 라이츄가 안 되는 상황에서 제가 퇴사하게 된다면 저도 물경력이 되버리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조소연 엄마랑 얘기하다가 엄마 갱년기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제가 울컥했어요. 얘기하다가 엄마 마음이 확 공감이 될 때가 있는 거예요. 엄마가 항상 저한테 너 같으면 딸 낳아봐라,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제 남자친구랑 저를 같이 조합을 해보면 이거 최악이다 싶어요. 그런 엄마의 마음이 어느 정도 헤아려지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럼에도 100% 이해할 수 없어 그게 서글퍼질 때가 있어요. 제가 한 번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요.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눈을 떴는데 흰 천장 벽이 보이고 그 앞에 엄마가 계시는 거예요. 그때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요. 엄마가 저를 보며 속상해하는 마음을 100% 공감해주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내가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서가은 근데 나도 몰라요. 엄마와 나의 관계랑 나와 내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달라서요. 아이를 낳기 전보단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짐작은 해볼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엄마의 마음을 영원히 모를 것 같아요.
김청 진짜 그럴 것 같아요. 어차피 각자의 관계니까요.
서가은 내 엄마라도 또 내 아이라도 속마음을 바닥 끝까지 알 수는 없으니까요. 내 마음도 잘 모르겠어요.
김청 그럼 내 마음은 나만 알아차리는 거네요.
이정은 제가 나이 먹었다고 느끼는 순간인데요. 엄마한테 힘든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돼요. 옛날에는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 했는데 말이죠. 지금은 진짜 큰 일 아니면 말 안 하고, 엄마 집에 갈 때는 더 잘 입고 가요. 꼬질꼬질해 보이지 않게. 결혼하고 생긴 습관이에요.
나해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히려 저는 어릴 때는 엄마한테 힘들다는 걸 말 안 했어요. 유학을 해서 제가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어차피 나를 지키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저희 엄마도 저를 그렇게 가르쳤고요. 엄마가 교직에서 한 30년 일하셨는데요. 몸이 원체 약하시고 살림에 취미도 없으셔서 주부의 일과 바깥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용돈만 주시면 저희가 집안일도 나눠하면서 알아서 했거든요. 오히려 나이를 먹으니까 어릴 때 안 한 것들을 하게 되는데, 지금은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하죠. 전문 용어로 이런 것이 패런팅 차일드래요. 어린아이가 부모의 역할을 하는 거라고. 이 일로 예전에 한 번 상담을 받은 적 있었는데요. 해소되지 않으면 더 안 좋아지니까 성인이 되었더라도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사실 아이도 엄마에게 되돌려주는 게 많잖아요. 제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지만 대화가 안 되니까 교감이 안 돼요. 저는 이렇게까지 안 될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품는게 되게 큰 일이구나 싶어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이상적인 엄마상에 젖어든 것 아닐까. 그런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이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시니까 그런 걸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이가 어떨 때 나에게 정서적으로나마 돌봄이 되는지요.
서가은 확실히 그랬어요. 아이에 대해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이었고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다 스스로를 잘 돌보고 계신 것이 좀 신기한데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저는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거든요.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언제든 나 자체로 있을 수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해도 나로 존재할 수 있었고, 나를 잃는 것 같으면 또 채우는 시간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젠 아이를 돌보다 보니까 물리적인 환경이 안 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나를 돌봐야 하는구나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많이 어릴 때 무조건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는 아이와 있으면 저를 돌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랑의 의미를 아이에게서 배웠는데요.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하고 품을 수 있구나, 이타심에 대해서도 많이 느꼈고, 이런 감정들로 인해 제가 성장하는 것 같았어요. 이 자체가 저를 돌보는 일인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좀 크고 나서 자기 주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제가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얘도 사람이니까요. 자기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말을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우리에게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거의 한 몸처럼 지내다가 각자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관계가 생기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없더라도 항상 살피고 해석할 일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 관계를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관계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울 수 있는 거를 찾아야 한다 생각해요. 무엇보다 엄마는 처음 해보는 거니까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듯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어떤 엄마가 되어 아이와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 계속 알아가야 하는 거예요. 어쨌든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라 이런 고민을 하고 나면 반드시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져요. 그래서 저는 애를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렇게 아이에 대한 글을 쓰게 됐어요. 주변 분들은 그걸 읽고 제가 육아를 잘한다고 하시는데, 저에겐 아이와의 관계를 자각하는 장치 같은 거예요. 늘 노력하고 있고요.
강아름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생겼던 건 주체적이지 못할 때였어요. 사회적으로든 아니면 어떤 무언가가 나를 계속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게 할 때 저는 그 상태에서 제일 화가 났고요. 그제야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화도 많았고, 불만도 많았고, 비판적이고, 누가 나한테 뭘 시킨 것도 아닌데 괜히 막 짜증이 났는데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 힘든 상황들이 되려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다들 힘들지만 그 힘듦이 스스로를 돌보게 하는 엄청나게 큰 자극이 되겠구나.
이정은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발견하기 제일 좋은 키워드인 것 같아요. 화가 났을 때, 왜 화가 났는지 에피소드를 10개 정도 적어보면 공통된 키워드가 있거든요. 그걸 보면 내가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구나 알게 되면서 그걸 시작으로 스스로를 도울 수 있고, 주변과 관계도 훨씬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가 정말 좋아져요. 예전엔 답답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어디서 어떤 센서가 눌려서 기분이 나쁜지, 짜증이 났는지, 화가 났는지, 억울한지 몰랐다면, 이런 감정들을 정리 정돈하면서 내 센서에 대해 알게 되니까요. 만약 상대와 친하게 잘 지내고 싶다면, 그 사람은 내 센서에 대해 모르니까 알려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저에 대해 공유를 잘 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니까 친한 친구들과 깊은 관계일수록 잘 지내기 쉬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오히려 연인 관계처럼 친밀한 관계가 제일 어려웠다면, 지금은 이런 가까운 관계들이 더욱 충만해져서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강아름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송다혜 아까 저는 정은 님이 얘기하신 객관화나 타자화의 방법에 시점을 두고 그때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걸 인정한다는 게 와닿았는데요. 시간 지나고 보면 사실 별거 아닌데 그때는 내가 힘들었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시간으로 시점을 나눈다는 생각을 못해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돌아가고 싶으신 때가 있나요? 과거로 돌아가서 치유해주고 싶은 시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정은 저는 제 템포대로 잘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갑자기 어떤 틀 안에 들어갔는데요. 두 번째 명절에 큰 집을 가게 됐는데, 어머님이 본인 가방에서 저에게 앞치마를 꺼내주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그 앞치마 안 입겠다 했거든요. ‘저 앞치마 안 입을래요.’라고 했더니 ‘아, 입어.’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입긴 입었는데 그러고 나서 제가 2주 동안 되게 아팠어요. 삶에 대해 후회를 잘 안 하는 편인데, 그 일에 대해서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앞치마는 진짜 안 입고 싶어요. 다른 시댁 어르신들이 다 저를 지켜보고 있고, 어머님은 우리 집에 가서는 내 말 안 들어도 되는데 제발 여기서는 내 말 들어 라는 눈빛으로 앞치마를 주셨거든요. 분명히 좋은 마음이셨을 거예요. 어머님의 기준 안에서 배려겠죠. 우리 며느리의 꼬까옷에 기름이 튈까 봐, 본인 것뿐만 아니라 손수 며느리 입으라고 챙겨오신 거니까요. 근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거예요. 제 감정을 잘 표현하는 편인데요, 내 사전에 없는 감정들이어서 거기서는 말문이 막혔어요. 그 순간은 여태까지 후회하고 있어요. 그래서 매번 남편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요. 그때 그 순간 나는 앞치마를 입지 말았어야 한다고요.
김청 어머니께도 이야기하신 적 있으세요?
이정은 어머님은 정말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그 이후로는 앞치마를 안 갖고 오세요. 눈치채신 것 같아요. 어머님 입장은 친척 집이니까 제발 내 면 좀 세워줘 라는 느낌이고, 내가 막 하기에는 우리 엄마 아빠 얼굴도 떠오르고, 부모님 욕만 먹일 것 같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인생에 단 한 번, 이 일이었어요.
서가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예를 들어 엄마가 처음 됐을 때라든지 이런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으면 불안해지잖아요. 뭘 해야 하는지 매뉴얼도 없고요. 불안한 마음을 빨리 뛰어넘고 싶으니까 롤모델을 찾아요. 그러고 번번이 실패해요. 롤모델을 찾았다 생각해도 결국엔 실망을 하더라고요. 차라리 그때 그냥 나였으면, 나 일려고 노력했으면, 아니면 하다못해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그 불안함을 빨리 뛰어넘고 싶은 마음에,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에 매뉴얼을 찾는 거죠. 그런데 그런 건 없더라고요. 다 스스로 해내야 하고, 알아서 찾아야 하고, 또 내가 찾은 방법만이 진짜가 되고요. 최근에 들었던 생각은, 제가 엄마가 됐을 때 당연히 저희 엄마를 롤모델로 삼았거든요. 그런데 엄마랑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방법이 안 맞는 거예요.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첫 직장에서 상사가 멋져 보이는 마음에 나는 저 분처럼 해야겠다 싶었는데 결국 실망하고요. 이걸 최근에 깨달았는데, 그렇게 롤모델 찾는 시간에 나를 더 돌보고 나였어야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며느리가 아니라 그때 그냥 정은 님일걸 하는 생각일까요?
이정은 그래서 갔다 와서 아버님한테 ‘저를 며느리라고 부르지 마시고 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아가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송다혜 지금은요?
이정은 지금은 다시 막 섞어 부르시는데 제가 며느리의 역할에서 해방돼서 뭐든 상관없어요. 며느리라고 부르시지만, 제가 그 역할을 아예 안 하기 때문에요. 호칭이 상관이 없어지는데 1년 반의 투쟁이 있었죠. 나와의 싸움. 저 자신을 지키려고 1년 반 동안 진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중년 남자의 마음을 모르겠어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요. 그 1년 반동안 아빠랑 전화 통화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송다혜 결말이 괜찮은데요. 주변에 그런 사람 많거든요. 투쟁 끝에 최악의 엔딩으로 연 끊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모두가 좋게 좋게 마무리 짓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이정은 일단 저는 남편한테 ‘내가 너네 엄마 아빠를 비난하는 건 아니야.’ 이 말을 진짜 많이 했어요. 내가 대한민국 여자로서 느껴지는 편견과 어려움을 오래 설명했어요. 그 과정이 길었고요. 시부모님께는 제가 직접 말을 해보기도 했는데, 제가 어려우신지 그냥 알겠다 하고 마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아요. 남편 입을 통해서 하죠. ‘너희 집의 언어가 있을 테니, 그 언어로 네가 가서 설명하고 와라.’ 했고요. 이제는 시부모님이 저에게 직접적으로 연락하지 않으세요. 집마다 분위기가 다르니까 우리 집에서는 괜찮은 워딩이 남편 집에서는 너무 큰 일이기도 해서 어렵더라고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서 남편 가족들이랑 완전하게 단절 이런 것이 오히려 힘든 사람이에요.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말했어요. 잘 지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1년 반이 걸렸고, 지금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김청 정말 다행이에요. 투쟁 끝에 지켜낸 평화.
나를 돌보는 것은 삶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저를 돌보는 가장 큰 목적은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이거든요.
송다혜 혹시 또 과거에 나를 돌봐주고 싶으신 분이 계신가요?
문혜성 제가 20살 초반에 첫 연애를 했는데, 그 당시에 섭식 장애가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마르지 않아서 상상이 안 되시겠지만, 한 42kg까지 빠졌는데요. 그때서야 이거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그 뒤로는 몸무게를 안 쟀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먹는 게 거의 없었거든요. 폭식하고 토하고 또 폭식하는 거를 계속 번갈아 했었고, 먹어도 창포묵처럼 칼로리 없는 것만 먹었어요. 그런 시기가 짧게 있었는데, 그나마 섭식장애로 오래 고생하지 않은 건 인생에 더 크게 나쁜 에피소드가 생기니까 그 일을 해결하느라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여전히 완벽히 고쳤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아직도 그 버릇이 남아있어요. 스트레스 받으면 손을 넣어서라도 토하고 싶은 감정이 확 올라올 때가 있거든요. 처음 아프고 17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고치지 못한 거죠. 대신 이것을 받아들이는 제가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엔 이런 내가 너무 싫기만 했다면, 이제는 알림으로 받아들여요.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구나, 그래서 이러는 거구나 싶어서요. 그런 마음이 생기면 저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오늘 이야기 나온 것중에 공감한 것은 나를 돌보는 것의 첫 시작이 나를 알아차리는 것,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인데요. 저 역시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나쁜 생각이나 습관들이 어디서 기안하는지 알게 되니까 두려움이 줄어요. 나를 돌보는 것은 삶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저를 돌보는 가장 큰 목적은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이거든요. 꽤 잘 해오고 있다 생각한 순간에도 인생의 어려움을 마주하면 또 쉽게 주저앉게 되는데, 인생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 두렵죠.
제가 4년 전에 생각하지 못한 어떤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인생이 확 사그라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놔버리고 싶더라고요. 나를 돌보는 거, 내 삶을 재건하는 거 이런 거 다 놔버리고 숨고 싶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왜 내 삶에 자꾸 이런 일이? 했는데요. 무너지려는 찰나 제가 저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올리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 관점을 바꾸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까 시야가 확 열리면서 괜찮아졌어요. 내가 그토록 갈구하는 회복탄력성이 매번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를 살리는 가장 큰 힘이구나 싶어요. 몸을 키우는 것처럼 마음을 키우는 거, 죽는 순간까지는 내 삶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요.
김청 너무 공감해요. 제가 송창식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그분이 나온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모든 나쁜 일은 모든 좋은 일이다.’ 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 말을 고등학생 때 듣고선 정말 좋은 말이다 싶어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화초를 생각하면 저는 온실에 있는 친구보다는 들판에 있는 친구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계속 나를 돌보는 이유는 내 안의 힘을 길러서 더 멀리 가기 위한거지 단정하고 아름답기만을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그래서 아까 정은 님이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자극하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는 얘기나 혜성 님 얘기해 주신 것들이 공감이 많이 돼요.
조소연 공감해요. 저는 돌봄에 있어서 사람들이 성장도 고려한다 생각해요. 아이가 커서 독립을 하거나 아니면 식물이 열매를 맺고 더 크게 자라난다든가 하는 거요. 나를 알아차리고, 더 나아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에 있어서 돌봄이 필수적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 성장이라는 결과물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게 돌봄이라는 행위가 아닐까해요.
이정은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요. 제가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가끔 나무의 형상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성장해있는 것 같아요. 성장한 모습은 나뭇잎이 풍성한 꼴일 수도 있고, 낮지만 기둥이 탄탄할 수도 있고 또 가늘고 긴 나무로 자랐을 수도 있고요. 어떤 모습이냐는 돌봄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어떤 할머니가 될지를 상상하며 살아요. 바라는 모습으로 늙기 위해 저를 돌보고 있어요.
김청 너무 공감해요. 저는 세라복 모티프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이정은 분명히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해서요. 10년 뒤에 집을 살 거야, 10년 뒤에 행복해질 거야 이건 저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고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가 돌봄의 중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김청 맞아요. 돌본다는 게 어딘가에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송다혜 아까 엄마 얘기가 잠깐 나왔잖아요. 돌봄이란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아요. 소연 님이 산티아고로 떠나면서 26살의 엄마를 떠올리신 것처럼 엄마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돌봄을 시작하고요. 스스로 내 자신을 돌봐야겠다 생각이 들기 이전부터 엄마가 나를 돌봐줬던 거죠. 독립하고 엄마를 떠난 이후에는 내가 나를 돌봐야하고, 내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돌보고요. 끊임이 없는 것 같아요.
조소연 부모님이 아프신 게 이제 조금씩 보이잖아요.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나를 돌봐주셨다면 조만간 내가 부모님을 돌봐야하는 시기가 돌아오겠구나는 생각을 해요. 인간은 평생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는 존재같아요. 제가 돌보던 환자가 사망선고를 받고 그 분을 보내드리면서 아직 가시지 않은 몸의 따뜻함을 느끼고 너무 슬퍼서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같은 공간 어딘가에서 제 친구는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는 것을 돕고 있었거든요. 인간 삶 자체가 돌봄이구나 싶어요. 내가 나를 잘 돌봐야지 남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래서 더욱 돌봄을 놓칠 수 없고요.
정샘물 아까 과거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저는 오히려 미래가 궁금해요. 그러니까 미래에 6개월, 1년, 5년 뒤에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뭐라고 설명할까? 이게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때 진짜 큰 사건이었다고 기억을 하려나? 되게 궁금해요.
조소연 일기를 잘 써놓으세요. 본가에 갔다가 제가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봤는데요. 10대를 경험했음에도 도저히 제 글에 공감을 못하겠는 거예요.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으면서도 여전한 취향을 발견한 것은 좋았어요. 그 시절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또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추억 여행하는 건 좋았는데 일기 속 중2병 멘트는 결혼할 때 못 들고 갈 것 같고요. 과거의 나에게서 현재를 나를 찾아보는 거 참 좋았어요. 어쩌면 미래의 나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록이란 것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재밌어요. 책 읽다가 잊고 있던 쪽지라도 하나 발견하면, 그때 이래서 적어놨었지 싶은거요.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송다혜 다들 일기 쓰세요?
이정은 가끔 쓰고 싶을 때요.
강아름 그래도 일주일에 한 세네 번 정도 쓰는 것 같아요.
김청 종이에 쓰세요?
강아름 아니요. 저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해놓고, 자기 전에 써요.
이정은 저도 블로그 해요. 사진만 잔뜩 올려요. 근데 도움이 돼요. 뭐 먹지 할 때.
조소연 데이터베이스네요.
이정은 작년에는 대체 뭘 입고 다닌 거야? 하면서 찾아보죠.
문혜성 정은 포털이네요.
조소연 나를 검색한다.
강아름 저는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잘 안 풀리니까 뭐라도 써야 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정은 글쓰기에는 힘이 있으니까요.
강아름 맞아요. 그리고 저는 관계가 힘들어지면 편지를 써요. 엄청 길게 쓰고는 안 보내는 것도 진짜 많아요. 왜냐하면 쓰다가 힘든 게 해결이 돼서요.
이정은 예전 논술 선생님이 남자친구에 대해서 써오라고 그랬는데요. 그거를 쓰고 바로 헤어졌어요. 아, 좋은 놈이 아니다.
조소연 글이 객관화를 시켜줬군요.
이정은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싶었죠. 그래서 연애할 때는 상대방을 객관화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소연 콩깍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해민 헤어지고 나서 도움이 돼요. 내가 헤어진 이유가 있었구나.
송다혜 저는 루틴을 만들어 놓고 지키는 거를 진짜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사실 루틴 만들기도 안 해요. 일기를 쓰면 좋은 거 너무 잘 알겠고, 어릴 때 써놓은 일기 보는 재미도 잘 알겠는데 안 쓰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일기를 쓸 수 있을까요?
문혜성 저는 궁금한 게 다혜 님 굉장히 계획적이시잖아요. 해야할 일 리스트를 굉장히 철저하게 만드는 타입이거든요. 근데 또 사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신기한데요.
송다혜 일기는 좀 다르지 않아요? 제가 리스트를 만드는 거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복잡한 것들을 미리 정리하는 건데요. 그런데 일기는 소회잖아요. 감사함을 적는 일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생각은 진짜 많이 하는데요. 막상 그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거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정샘물 저에게 좋은 팁이 있어요. 일단 3일만 해본다는 생각으로 너무 부담 안 갖는 마음이 첫 번째고요. 그다음에는 일기를 쓰는 어플이어도 좋고, 노트여도 좋은데요. 내 마음에 드는 예쁜 노트랑 좋아하는 펜을 사서 쓰는 거예요. 그런데 제 생각에 더 중요한 건 그냥 아직은 일기 쓸 필요성을 못 느끼셔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저는 쓰다 안 쓰다 하지만, 일기라도 안 쓰면 미칠 것 같다 생각이 들 때 쓰거든요. 그게 3일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했어요.
강아름 아니면 단어로 쓰는 방법도 있어요. 아니면 완벽주의 성향일 수도?
조소연 여백을 보면 채워야 될 것만 같은 그 부담감이 클 수도 있죠.
이정은 일기는 좀 의무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쓸 말이 없는 날도 있잖아요. 근데 오히려 너무 재밌는 생각이 나거나 기록하고 싶은 순간에는 그냥 메모장에 들어가서 적거든요. 그게 쌓이면 일기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쓰는 건 힘드어도 남의 쓴 말에 공감하는 건 쉽잖아요. 영상 볼 때 공감할 때 많은데요. 저도 어제 그런 거 하나 기록했어요. 볼리비아에서는 계피맛 샤베트가 슬픔을 잊게 해준대요. 그게 너무 귀여운 거예요.
조소연 그렇게 모으면 나중에 영감 노트가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내가 뭐 좋아했고, 어떤 것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찾아볼 수 있고요. 저는 주로 유튜브에 좋아요 누르거나 플레이리스트로 저장해놓고, 나중에 찾아보고 싶을 때 다시 봐요.
서가은 꼭 글일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다혜 님에게 편한 그 수단을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송다혜 사실 인스타그램에서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건 종류별로 폴더링해서 아카이브해놓거든요.
조소연 왠지 그러실 것 같았어요.
송다혜 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고,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를 글로 쓰지 않을 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저 나름대로 매일 기록은 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오늘 이야기 나눈 것처럼 일기는 감정을 기록했다가 나중에 되돌아보고 싶어서 쓰면 좋겠다 싶은 건데요. 그걸 계속 못하니까, 나는 일기를 안 쓰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소연 더 좋은 방법 생각났어요. 저는 귀여운 달력에 기분 한 줄, 친구와의 약속을 기록하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표정 스티커를 붙였거든요. 웃는 개구리, 우는 개구리 스티커를 붙였는데요. 나중에 우는 개구리 스티커를 보면 내가 이날 우울했구나 싶더라고요. 아니면 종이에다 날짜별로 한 줄씩 하루 감상평을 적었는데요. 한 달 다 채우면 묘한 뿌듯함이 들더라고요. 이런 기록이 간단하게 리뷰할 수 있어 좋아요.
송다혜 저…제가 써볼게요.
문혜성 힘내.
조소연 참 잘했어요. 도장 나오는 거 아닌가요.
나해민 글이 잘 써질 때도 있지만, 안 써질 때도 있잖아요. 저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시각화된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편이어서요. 한창 바쁜 20대에 아무리 피곤해도 사진으로 다 찍어뒀다가 정리하면서 내가 이때 뭐 했구나 하고 기록했는데요. 본인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기록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꼭 글로 적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송다혜 좋은 대화들 감사합니다.
조소연 제 친구는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더라고요.
김청 제가 사실은 문구 브랜드를 다니고 있거든요. 지금 힌트를 굉장히 많이 얻고 있어요. 준비하는 신제품이 여러분 말씀하신 딱 그런 스타일인데요. 저는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긴 일기는 못 쓰겠고, 그렇다고 하루 건너뛰어서 다이어리는 비는 것도 싫어해요.
조소연 그 비어 있는 그 공백이 말이죠.
김청 그런 사람들이 연속성 있게 기록할 수 있고, 무조건 꽉꽉 채우지 않아도 되는 다이어리를 기획 중이에요.
송다혜 혹시 일기 말고 공유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을까요?
조소연 저는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식물 키우는 거를 일기처럼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문혜성 저희한테 굉장히 큰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일기처럼 꾸준히 쓰진 않지만, 느끼는 게 있을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기록은 하고 있어요. 식물을 통해서 느끼는 게 정말 많거든요. 이런 걸 잘 전달하고 싶고, 또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써보고 싶은데 어떤 방식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나해민 저희 어머니는 식물 도감을 그리세요. 산림청에서 연수 중이신데 이제 2년 차가 되셨거든요. 원하시던 꿈의 정원을 가지셔서 그곳에 원하는 걸 다 심고, 심은 것을 공부하면서 그림도 그리세요. 저는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식물을 잘 기르는 편이고, 반면 어머니는 잘 못 기르는 편인데요. 그런 어머니 보고 예전에는 식물 킬러라 그랬는데, 그래도 요즘은 정원이 생겨서인지 어지간해서는 다 잘 자라더라고요. 아침에 매일 정원에 나가서 식물 돌보고, 그림 그리고, 일지를 적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든 것 같아요.
이정은 저도 이사 오고 산이랑 가까워져서 산을 자주 오르는데요. 디자이너다 보니까 뭘 보면 콘텐츠로 만들 생각이 들어요. 어떤 나무에 대한 것을 만들어 팔까 싶었는데, 그 나무를 충분히 관찰하려면 1년은 걸리더라고요. 이 나무가 뭔지 알려면 잎이 나야 했는데요. 그 나무를 처음 본 것이 겨울이었으니까 잎이 나려면 4개월은 기다려야 했어요. 또 꽃을 보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그래서 포기했는데, 그때 정착하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원룸에 살 때는 옮겨 다녀야 하니까 마음 둘 곳이 없었다면, 지금 사는 곳에서 산을 매일 오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다른 감각이었어요. 나무의 주기를 관찰하는데 딱 일 년이 걸렸고, 그렇게 나무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진짜 기쁘더라고요. 이제 한 3년 지켜보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나무는 조금 더 있으면 노란 꽃이 핀다고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산에 다니면 조금 달라져요.
나해민 저는 씨드키퍼를 알게 된 계기가 가드닝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자연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에게 선물로 줬거든요. 생각보다 훨씬 좋아하고, 식물에 진심인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나만의 정원을 갖는다는 것이 영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평화로움이나 안식감도 얻을 수 있고요.
조소연 큰 화분에 이것 저것 심어볼까 싶어서 다이소에 갔는데 씨앗 키트 이름이 고기 친구인 거예요. 네이밍이 충격이었어요.
김청 저는 식물을 잘 못 키우는데 같이 사는 어린 고양이가 생기니까, 그 친구를 위해서 뭘 해주고 싶더라고요. 이마트에서 캣 그라스란 걸 봤는데 되게 잘 자란다고 해서 사봤거든요. 신기하게 엄청 잘 자라더라고요. 고양이들도 좋하고요. 목적도 뚜렷하고, 얘들도 반응하니까 좋았어요.
송다혜 오늘 나눈 얘기들 중에 각자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있거나, 나누지 못한 질문이 있을까요?
나해민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랑 소연 님의 포도 스티커 이야기가 놀라웠는데요. 제가 그런 걸 못하는 성격이라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나를 좀 더 기다려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어요. 그러려고 하지만 완벽주의에 계획적인 인간이 너그러워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걸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궁금해요.
문혜성 척을 하는 것도 도움 되는 것 같아요. 내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아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순간에는 용서하는 척을 해본다든가. 저는 누구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때 많이 떠는 편이거든요. 정말 많이 긴장되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여배우다 나는 스타다 그런 생각을 해요. 동물들이 겁이 나면 오히려 몸을 부풀린다고 하잖아요. 어차피 할 수밖에 없을 때는 그런 척이라도 하는 거죠. 가식됨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믿음만 있으면 안 받아들여져도 척을 하는 편이에요.
송다혜 저는 오늘 돌봄에 시간 개념을 가져온 게 너무 좋았어요. 해민 님이 아침과 밤의 루틴이 따로 있잖아요. 따라서 그렇게 간단하게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정은 님처럼 시점을 기준으로 나를 객관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개념이어서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시간 개념을 적용하니까 추상적이었던 것이 명쾌해지는 것 같아요.
나해민 자기 자신을 알면 알수록 본인에게 맞는 솔루션을 대입하기 쉬운 것 같아요. 달리기도 해봤고, 오래 걷기도 해봤고, 책 읽는 것도 해봤는데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건 뭘까 했을 때 나에게 무리되지 않는 걸 선택해서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정은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얘기했을 때 내가 뭐라고 위로해 줄까를 생각하면 쉬운 것 같아요. 친구에게 하듯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같아서요.
송다혜 타자화에 진짜 능하시다.
이정은 만약에 친구가 나한테 막 울면서 얘기하면 난 어떻게 해줄까 싶은 걸 그냥 저한테 스스로 해준거죠. 마음이 되게 복잡할 땐 모국어가 아닌 말로도 해봐요. 언변이 화려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담백하게 정리가 되거든요. 스스로 수고했다 말하는 거 창피하면 그냥 외국어로 하는 거죠.
나해민 오히려 저는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할 때가 있긴 해요.
이정은 근데 모국어랑 완전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쓰이는 단어가 달라서 관점도 달라질 수 있고요.
조소연 상담 선생님께 추천받은 방법인데요. 고민 일기를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중요한 건 지금 컨디션이 그 고민을 감당할 수 없다면 생각을 잠깐 멈추고 자신에게 기한을 주는 거예요. 일주일 뒤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겠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나를 회복하는데 더 힘을 쓰겠다하고요. 생각이 아예 안 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다렸다가 충전이 된 다음 그 문제를 다시 바라보면 또 다른 저의 모습이 보여요. 내가 너무 소진돼서 별 거 아닌 일이 화를 냈구나 또는 내 몸이 너무 힘든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구나하고요. 정한 시간이 됐는데도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면 또 시간을 주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단계적으로 고민이 풀리기도 하고, 한꺼번에 해결이 될 때고 있고요. 저는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김청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에게 기다려주는 시간을 준다고 표현하신 게 좋았어요. 과거의 나에게서 현재와 미래의 나를 발견한다는 이야기도 좋았는데요. 이 가설로 아까 말한 신제품을 디벨롭 하고 있거든요. 오늘 신제품에 대한 확신을 얻고 갑니다.
강아름 혜성 님이 말씀하셨던 회복탄력성이 인상적이었어요. 삶이 굴곡지잖아요. 늘 행복할 수는 없고요. 행복하려고 스스로를 돌보는 게 아니라 힘든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그 순간을 잘 극복하기 위해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 생각이 좀 더 매끄럽게 언어화된 것 같아요.
정샘물 인상적이었던 걸 다 한 번씩 짚어주셨는데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청 님이 주식 얘기를 하셨던 것처럼 내 주가가 내려가는 시기가 있을지언정 파산하지 않기 위해 돌보는 것 같아요. 떨어져도 올라가야 하니까요.
서가은 저를 돌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여러 방법을 찾고 있고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오늘 여러 아이디어도 얻었어요. 다들 자기를 아끼면서 잘 사시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으니 더 힘이 됐어요.
송다혜 저희가 잘 정리해서 언제든지 펴볼 수 있는 뭔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
김청 진짜 재밌었던 것 같아요.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삶의 배경이 녹아있는 대화여서요. 친구들이랑도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송다혜 맞아요. 사실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을 준비하면서 좀 불안했거든요. 이런 식의 프로그램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이런 레퍼런스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가은 님이랑 같이 지인분들 초대해서 진행을 한 번 해봤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이런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사실 없잖아요. 보통 사람들 만나면 근황 토크나 부동산 이야기, 투자 이야기하게 되니까요. 낯선 사람들이랑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다들 자기 이야기를 너무 잘 털어놓고, 또 집중해서 들어주시더라고요. 혜성 님은 그 모임 하고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거든요. 그 시간 이후에 확신을 가졌죠. 정말 재밌을 것 같고, 계속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오늘 이렇게 시간을 가졌는데요. 저희 생각이 옳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네요.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2
진행 일시: 2022년 8월 26일
진행 시간: 138분 59초
참여자: 강아름, 김청, 나해민, 서가은, 이정은, 정샘물, 조소연
기획/ 진행/ 녹취록 작성 및 편집: 씨드키퍼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은 다양한 '돌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장입니다.
라운드테이블은 계속해서 비정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전시 또는 책 등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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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DGE ROUNDTABLE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2
돌보는 사람들 소개
강아름 힘든 상황 속 부정적인 감정을 이겨내는 마음의 힘
김청 단단하게 더 멀리 나아가는 자기 돌봄
나해민 아침과 저녁 루틴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삶
서가은 어린이 콘텐츠 기획자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로의 자기 성장
이정은 알아차림의 관찰카메라로 촬영하듯 자기 객관화 하기
정샘물 기분을 북돋는 일상 속 소소하고 귀여운 즐거움
조소연 타인을 돌보는 간호사의 삶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삶으로
송다혜 안녕하세요. 저는 혜성 님과 함께 씨드키퍼를 운영하고 있는 송다혜입니다. 저희는 씨앗을 매개로 다양한 제품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이번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은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께 직접 신청을 받았습니다. 신청해주신 분들 외에 돌봄에 대해 특정한 시각을 갖고 계신 분들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체조 스튜디오의 정은 님과 아름 님 두 분을 같이 모셨어요. 직접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정은 체조 스튜디오는 출판사 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다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와는 조금 다르게 저희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고 홍보까지 도맡아서 하고 있어요. 거기에서 발행하는 첫 번째 그 프로젝트가 <사물함>이라는 매거진이고, 현재 6호까지 발행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10호까지 기획되어 있는 거여서 거의 중반을 넘은 상태입니다.
김청 10호까지만 발행하시고 그만하시는 건가요?
이정은 그건 아닌데 딱히 정해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일단 10호까지 즐겁게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요. 가까워지니 저희도 기분이 조금 이상해요.
송다혜 <사물함>이라는 매거진이 특정 사물들에 대해 깊은 통찰과 사유를 보여주고 있어서 저희는 꼭 생물이 아니더라도 사물 역시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번 주제가 나를 돌보는 것인 만큼 사물을 통해서 자신들을 돌보고 계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체조 스튜디오를 모시게 됐고요. 가은 님은 저희와 <레터 투 레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분인데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서가은 저는 지금 4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고요. 원래는 전시나 공간 기획을 했어요. 어린이 미술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다가 어린이 작업실 기획과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일을 해보니 아이를 돌보는 것은 관찰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또 거기에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그런 게 제 아이를 키우는데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육아를 하는 중이지만, 원래 하던 일의 연장선 같기도 하고요. 제가 했던 일의 경험 때문에 아이를 돌볼 때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송다혜 네 분은 직접 참여 신청을 해 주셨는데요. 자기소개나 신청하시게 된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 부탁드려요.
나해민 제가 먼저 할게요. 저는 나해민이고요. 전에는 번역 일을 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어요. 누수와 함께 집이 엉망이 돼서 7월 한 달 동안 자기 돌봄을 못하고 일상의 루틴이 완전 망가진 상태였어요. 8월부터는 자기 돌봄을 다시 해야겠다 싶었는데 코로나에 걸렸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자기 돌봄을 해야한다고 마음 먹고 있어요. 평소에 요가나 명상으로 마음 챙김이라는 수련을 1-2년 해왔는데 이번 일로 갑자기 홈리스가 되면서 일상의 루틴이 깨지니까 힘들더라고요. 내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다 흔들리는구나를 깨달았고요. 얼마 남지 않은 올 한 해를 좀 더 활기차게 보내기 위해서 신청했습니다.
조소연 뽑힐 줄 몰랐고요. 당일에 급하게 글을 보내서 기대를 안 하고 있었어요. 저는 조소연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람을 돌보는 간호사 일을 했어요. 잠시 면허증을 덮어두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는 상태입니다.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저에게 초점을 맞추니까 벙 찌는 상황을 경험했어요.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나서 번아웃이 뒤늦게 왔는데, 그때부터 자기 돌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이런 저의 경험을 나누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다른 분들도 각자의 경험을 하고 계실텐데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을지 궁금하고 배워보고 싶어서 신청했습니다.
김청 제 이름은 김청이라고 하고요. 푸를 청자는 아니고 시청 구청 할 때 청자입니다. 저는 자기 돌봄과 더불어서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요즘 저한테 엄청 큰 이슈인데요. 왜냐면 제가 브랜드 매니저로 다니는 회사가 법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법인도 하나의 법 인격체잖아요.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반려법인을 돌보는 일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하면 법인을 대표자와 분리시키고 법인 자체로 독립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무형의 법인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이곳에 소속되어 있는 유형의 구성원 한명 한명을 잘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짝사랑하는 느낌으로 좋아하는 씨드키퍼에서 돌봄에 대한 키워드를 제시하니까 이 팀은 어떻게 브랜드를 돌보고 계신시도 궁금하고 힌트를 얻고 싶다는 마음에 신청하게 됐습니다.
정샘물 제 이름은 정생물이고요. 청 님이 말씀하셨던 인격체처럼 느껴진다는 게 공감이 갔는데요. 저도 씨드키퍼를 짝사랑하는데 씨드키퍼는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져서 어딘가에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건 TMI였고요. 저는 최근에 돌보는 거를 좀 쉬었다가 다시 시작했어요. 그 이유가 최근에 직업을 바꾸게 되면서 다시 신입으로 들어가 새로운 걸 배우고 거절당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또 스스로를 의심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를 잘 돌보고 단단해져야 이걸 견디겠구나 싶었어요. 어떻게든 헤쳐나가려고 노력 중에 이 주제가 눈에 띄었구요, 그래서 신청했습니다.
송다혜 저희가 크게 세 가지 질문을 준비했고, 그에 따른 조금 상세한 질문들을 하단에 적어놨어요. 아까 잠깐 말씀드렸는데 모든 질문에 답하실 필요는 없고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그냥 편하게 나눠주시면 돼요. 꼭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른 분들 이야기 도중에도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편하게 수다 떤다고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시면 됩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부터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요. 각자 스스로를 어떻게 돌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이 자리에 참여하신 이유가 스스로 돌보는 게 필요해서 참여를 하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스스로를 잘 돌보고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스스로 잘 돌보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어떻게 돌보고 계신지 저희한테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해민 7월 이전으로 가도 될까요? 코로나 이후에 문화 생활을 못하니까 그때부터 명상을 시작했어요. 2020년 3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계속 수련하고 있는데요. 아침 루틴처럼 일어나면 스트레칭하고, 명상하고, 차 한 잔 끓여 마시고 그 다음 일을 시작하는 게 지난 1-2년간의 제 루틴이에요. 저는 아침잠이 많고, 일어났다고 바로 감각들이 깨어나진 않는 사람인데요. 명상과 스트레칭을 통해 내 몸과 정신을 천천히 깨우는 게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카페인에도 민감해서 대신에 차를 마시며 마음의 안정과 맑은 정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밤에는 저널링이라고 해서 생각을 글로 적어내는데요. 그러면 잡생각이 걸러내지니까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송다혜 시간을 나눠서 돌보시는게 인상적인데요.
나해민 네, 7월 이전까지는 완벽했어요.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죠.
강아름 하루라도 못하게 되는 날은 없었어요?
나해민 시간을 점차 늘려간 케이스예요. 아침 20분으로 시작해서 아침에 20분, 저녁에 20분으로 늘려갔어요. 저도 출퇴근을 했을 때는 아침이나 저녁에 둘 중 한 번이라도 하자 싶었는데요. 빼먹으면 몸이 더 힘들더라고요. 제 일이 오래 앉아서 계속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다보니 체력이 정말 중요해요. 스트레칭 안 하면 일이 안 될 정도라서요. 요가와 스트레칭을 추천합니다.
문혜성 저는 약간 자기 비하가 있는 편이거든요. 자기 자신한테 혹독할 때가 많아서 최근에는 의식적으로 잠자기 전에 스스로 생각했을 때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나 좀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잘했다하며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있습니다. 셀프로 도닥이면서 ‘괜찮다~착하다~착하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명상 통해서 많이 도움 받는 편이에요.
정샘물 저는 요즘 일기 쓰고 있어요. 오늘 뭐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괜찮아 잘 했어, 멋있어, 충분해, 이런 말을 일부러라도 자신에게 해주면 위안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까 해민 님 말씀하셨던 것처럼 차 마시고, 명상하는 거요. 전 명상은 아직은 안 해봤지만, 차 마시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집에서 제일 예쁜 잔에 차를 마시고, 거기에 좋아하는 사탕을 하나 먹는다든가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테이블매트를 깔고 예쁜 그릇에 밥을 차려먹는 것도 그렇고요.
강아름 생각해보면 저의 경우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의지가 깨져서 오히려 최대한 그렇게 안 하려고해요. 그럼에도 습관이 되는 것들 있잖아요. 산책처럼 살다보면 노력하지 않음에도 습관이 되는 것들에 도움을 많이 받는데요. 그렇다고 나는 지금 힘드니까 산책을 해야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일기를 쓰는데, 그것도 쓰고 싶은 날만 쓰고 있어요. 이 밖에는 디자인 일을 하다보면 계속 앉아있게 되는데, 점심에는 일어나서 꼭 요리를 해먹으려 해요. 그 시간이 환기가 되고 다시 이어서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저희 디자인 스튜디오는 지금 거의 푸드 스튜디오거든요.
이정은 장 보고 메뉴 준비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하다가 저희가 선택한 방법은 ‘어글리 어스’인데요. 유기농 야채가 주기적으로 배달되면 그냥 오는 대로 해먹어요. 저도 아름과 비슷한 게 뭔가 해야지 생각한 순간 압박처럼 느껴져요. 일 끝나면 무조건 잘 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어떻게 쉬는지는 그때 그때 달라요. 어떤 날은 산책이 하고 싶고, 어느 날은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만 싶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루틴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나봐요.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그 시간대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조금씩 더 빨라져요.
나해민 저는 확실히 계획형 인간인 것 같아요. 모르고 지냈는데 주변에서 너는 확실히 J라고 하거든요. MBTI도 해본 적 없다가, 주변에서 그렇게 말해줘서 찾아봤어요.
송다혜 해민 님은 명상을 시작하고 루틴을 만들게 된 계기가 뚜렷하네요.
나해민 저는 문화 생활을 많이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마음처럼 안 되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생각을 빨리 비울 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을 스스로 아니까 잡생각을 비우고자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0분, 15분 하다가 점점 길어지면서 40분에서 한 시간까지 하게 된 케이스예요. 차츰 차츰 늘어나더라고요.
정샘물 스스로를 더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 타이밍을 잘 캐치하셨네요.
나해민 제가 그 당시에는 본가에서 지낼 때라 더 그랬을 거예요.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어딜 가도 서점이나 카페처럼 기분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을 텐데요. 저희 본가는 섬마을이거든요. 관광단지가 특화된 곳이라 차 없으면 어디를 갈 수가 없어요. 사실 그 당시까지도 식물을 키우고 있지 않았어요. 저에겐 어려운 존재여서요. 어머니가 키우시는 식물을 보고 즐기기만 하고, 취미라고는 같이 사는 강아지 두 마리 케어밖에 없을 때라 저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굉장히 부족했어요.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활력을 얻는 사람인데, 그게 안 되니까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풀 방법이 필요하더라고요. 이런 필요성이 고립되어 있으니 더 크게 와닿았는데, 사람 만날 일이 없는 곳에 머물렀던 것의 장단점인 것 같아요.
김청 저도 아주 구체적인 루틴이 있으면 오히려 ‘아, 모르겠다.’ 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있는데요. 노력하는 것은 집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 놓고 의식적으로나마 고양이들에게 집중하려고 해요. 13살된 고양이와 5개월 된 고양이가 있는데요. 5개월 된 아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타일이어서 보고 있으면 잡생각을 없애기 좋아요. 계속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니까.
송다혜 자연스럽게 루틴 얘기가 나왔는데요. 저는 사실 루틴을 만들면 압박이라고 느껴지거든요. 근데 또 루틴이 잘 맞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해민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나 이때 이걸 해야 돼.’가 아니라 그 시간대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조금씩 더 빨라져요.
조소연 저도요. 저는 진짜 즉흥적이거든요. 여행 계획을 세워도 남들 가는 곳에 가기 보단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만 다니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제가 올해 루틴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간호사에서 다른 일반 회사로 전직을 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자 싶어서 스케줄러 시간대별로 뭘 해야하는지 적기 시작하면서 그 옆에 감정도 기록했었어요. 그렇게 기록을 하다보니까 어떤 타이밍에 제가 에너지가 생기는지 보이더라고요. 그럼 에너지가 생기는 시간에 뭔가 좀 더 해볼까 싶었는데, 근데 또 루틴으로 만들면 괜히 하기 싫은 거 아시죠? 그냥 하기 싫어져요. 작심 3일도 여러 번 하면 30일이 된다는데, 작심 3일조차 못하겠을 때 자괴감을 많이 느꼈어요. 나는 왜 제2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가 싶어서요. 이렇게 흥청망청 내 마음대로 살다 가는 거 아닐까. 후회는 없겠으나 자꾸만 불안해지는 거죠. 행복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좀 아껴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요. 어느 순간 저 스스로를 좀 기다려주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장 하진 않더라도 까먹지만 말자 싶었어요. 언젠가는 하겠지 하면서. 그러다가 어쩌다 해내면 저 스스로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줬죠. 그렇게 해냈을 때 보상감을 한 번 느끼고 나니까 굳이 압박이라 느끼지 않아도 한 번 해볼까 싶은 순간이 자꾸 생기면서 횟수가 늘어나더라고요. 저만의 팁이 있는데요. 혹시 칭찬 스티커 붙이는 포도나무 기억 나시나요? 그건 어른이 되어서도 참 좋더라고요. 이런 기획으로 문구를 제작해서 판매하는 작가님도 계세요. 왕 큰 포도나무, 왕 큰 사과나무 스티커 판을 샀어요. 목표는 크게 안 잡고 ‘7월 운동하기’ 정도로 설정했고, 해내면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어요. 그걸 보면 그래도 이번 달은 어쩌다 10번은 했구나, 나 잘했구나 하면서 운동하고 치킨 먹기 같은 보상도 해줬고요. 스스로 기다려주는 시간이 저는 참 좋더라고요. 닦달한다고 해서 안 할 거는 제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자기비하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해내면 크게 칭찬해주고. 횟수도 늘리고, 시간대도 고정하다보면 습관이 되더라고요. 저는 습관이 될 때까지 한 달정도가 걸렸어요. 한 석달은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거에 비해 빠르다 싶었고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도 스스로 기다리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눈에 보이게 보상해주는 것이 유치해보여도 기분은 좋아져요. 일기 쓰기 루틴도 그렇게 생활 방식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 자신과 너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 말고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자아를 조금 멀리 두고 관찰 카메라를 보듯 하는거죠.
문혜성 소연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각화하는 거라고 하거든요. 명상이 어려우신 분들은 일기를 쓰거나 아니면 포도나무 스티커처럼 내 마음을 시각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정은 듣다 보니 재밌는 포인트를 느꼈는데 이게 직업마다 진짜 다를 것 같아요. 저희는 항상 기다리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사생활로 넘어가면 무계획이 마냥 행복해요. 일일이 스케줄링을 해서 모든 관리자를 통솔해야 되는 역할이다보니까요. 내가 일상생활도 저렇게 한다고 생각을 하면 바로 번아웃이 될 것 같아요. 직업마다 루틴이 필요한 직업도 있고, 없는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강아름 내가 노력해서 루틴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 루틴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아까 소연 님의 포도나무 얘기 듣다보니 친구가 생각났어요. 어떤 친구가 적응도 어렵고 삶이 힘들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하니까 다른 친구가 인생에는 작은 성취들이 진짜 중요하다 말하더라고요. 그런 작은 성취들을 쌓아가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요. 힘들어하는 친구가 그래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하니까 말해준 방법이 오늘 하루 동안 해야할 것, 하고 싶은 걸 다섯 가지 적어보라고, 물 마시기 정도라도 해낸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 성취감이 든다고.
이정은 작게 잡으신 게 포인트인 거 맞아요. 작은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요. 그 작은 범위가 나한테 작은 건지 알려면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거가 제일 우선이라 생각하는데요. 해민 님이 하시는 돌봄이 나한테는 큰 일인데, 해민 님에게는 쉬운 거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아는 것이 돌봄의 가장 기초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계기가 있었는데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약 7년을 말이죠. 그때 1년 정도는 휴학생으로 있다가 자퇴를 하고 나니 저를 설명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휴학생으로 지내는 1년 동안은 진짜 행복했죠. 그런데 휴학생이라는 신분을 지우고 나니까 주변에서 우려 섞인 걱정만 들리더라고요. 어쩔 때는 괜찮은 척도 해보지만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야하는 일들이 생기니까 ‘그럼 나는 왜 이런 결단을 했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노선에서 탈피했다’고 표현 하는데요. 잘 살아가는 친구들을 관찰자 입장이 되어서 오랜 기간 지켜보고 또 그런 과정 중에 궁금하던 것을 스스로 발견한 것이 지금의 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럴 때 내 자신과 너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 말고 스스로에게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자아를 조금 멀리 두고 관찰 카메라를 보듯 하는거죠.
조소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정은 저는 관찰 카메라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방법을 쓰거든요. 그러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를 돌보는 것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진짜 효과적이에요. 잘 모르겠을 때는 누가 이걸 본다고 생각하면 바로 파악이 되는 거요. 자신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생각하고 결속되면 더 이상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조금은 노선에서 벗어나 보기도 하고요. 저도 직업을 늦게 발견한 편인데요. 직업을 갖기까지 오랜 시간 여러 가지 방법을 많이 경험해볼 수 있었던 운 좋은 케이스예요. 늦게 발견한만큼 조급해지지 않으려면 자기를 잘 돌봐야하는 것 같고요.
김청 그러면 관찰 카메라를 돌려보시다가 이런 일을 하는 게 좋겠는 걸 하고 깨달으신 거예요?
이정은 관찰이랑 연관이 있어요. 일본어가 전공인데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방에 홍보물이 진짜 많은 거예요. 안 버리고 다 모아뒀더라고요. 이런 종이쪼가리는 내가 안 버리는 건줄만 알았는데 못 버리겠더라고요. 아, 내가 이런 인쇄물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가부터 시작해서 결국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랬을 때 저는 제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너 이거 왜 못 버려?’라는 질문을 해줬거든요. 저는 스스로 발견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발견해주는 것 같아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뒤늦게 적성을 찾은 거죠.
서가은 저도 나를 돌봐야 한다는 피로를 느낄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나를 객관적으로 자각하는 거예요. 그 방법으로는 일기 쓰기가 제일 좋은 것 같고요.
인생은 하락장일 때도 있고, 상승장일 때도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커다란 흐름 안에서 내가 우상향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강아름 이런 방법도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 상황일 때 어떻게 할까? 상상해보는 거요. 이 방법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돼요. 객관화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무언가를 돌보기 위해서는 객관화가 먼저 되어야 그 다음에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송다혜 사실 객관화가 쉽지 않잖아요. 두 분은 굉장히 가깝고 늘 같이 계시니까 혹시 서로 물어보기도 하세요?
강아름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진짜 이상하면 말해주자.
이정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늙어서 추한 짓 했을 때 경고를 해주자.
송다혜 스스로보다 깨닫는 것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먼저 알아차려주는 거 고맙잖아요.
이정은 저는 나눠서 생각하는 것 같아요. 2021년의 나와 2022년의 나. 객관화했다고 한 내 자신이 계속 한결 같다 생각하는 게 이상해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경험도 달라지고, 또 다른 편견이 생길 수도 있고요. 옛날의 모습을 아쉬워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송다혜 시점을 나누는게 좋네요.
이정은 때마다 너무 다르니까요. 이렇게 시간으로 나누는 게 도움이 돼요.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간으로 나누면 어떤 성장이 있었고, 뭐가 도태됐는지 잘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김청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인생은 정반합이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주식 그래프에 대입하면 인생은 하락장일 때도 있고, 상승장일 때도 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커다란 흐름 안에서 내가 우상향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상태가 안 좋고, 주변에 문제 상황이 많아도 조금 떨어져서 내 그래프를 바라보는 거요. 나 지금 우상향인지, 어떻게 다시 올라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정은 저는 올라가려고 하다가 너무 힘들면 갑자기 우주의 기운을 막 믿어버려요. 실제로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생각한대요. 그래서 신이 많대요. 그 말에 위안을 받았어요. 힘든 일은 웃고 무시해버리자, 그냥 운수가 안 좋았던 거야 생각하고 넘겨버리려고 노력해요.
김청 맞아요. 지금 별들의 자리가 그렇게 잡혀 있다고.
이정은 가끔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거였다는 식으로 피해 다니기도 하고요.
종교를 떠나 자신의 영혼 상태에 대해 스스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고, 할 수만 있다면 타인을 위해 그런 부분을 서포트해주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소연 종교가 있는 분은 본인의 신앙 안에서 잘 해결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공부할 때 좀 특이하다 생각했던 것은 환자를 돌보는 영역으로 영적인 부분이 필수로 들어가더라고요. 믿음이나 이외 어떤 영적인 모든 경험들이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보는 거예요. 죽음에 대해서도 해석이 모두 다르잖아요. 환자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때의 케어는 환자가 원하는 영적인 경험 또는 믿음에 근거해서 존중하라는 내용이었는데요. 한 번은 제가 미국 간호사를 준비한 적이 있어 그쪽 시험 문제를 보니 미국에는 몰몬교, 유대교 등 종교별로 장례 문화도 다 다르더라고요. 돌봄에 있어 개인의 영적인 경험과 영혼 상태가 많이 중요한 거구나 배웠어요. 종교를 떠나 자신의 영혼 상태에 대해 스스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고, 할 수만 있다면 타인을 위해 그런 부분을 서포트해주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청 대박, 이런 접근을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나해민 너무 놀라운 게 지난주에 제가 친한 오빠랑 얘기하면서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불안과 염려를 안고 사는데 믿음이 있는 신앙인들은 좀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거든요. 간호학과 연결지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새롭네요.
조소연 믿음이 있어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인간이기에 죽음을 피해갈 수가 없으니까. 종교의 테마가 포용, 사랑, 자비, 죽음이잖아요. 그런걸 보면 인간이라면 종교가 있든 없든 간에 삶과 죽음이라는 통과의례에 대해서는 모두가 각자의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들어요.
정샘물 저도 소연 님 말씀에 공감하는데요. 저희집에 할머니가 계시는데 연세가 많으세요. 몇 년전부터 거희 100살 되어가신다했는데, 정확히 여쭤보니까 올해 99세라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넘어오셨는데, 그 시절에도 개신교도셨어요. 아기였던 이모를 등에 들쳐 업고 성경책 하나 들고 왔다 말씀하시는 분인데요. 연세가 많으셔서 기력이 쇠하셨음에도 할머니를 뵈면 사람이 사는데 있어 건강한 신앙관을 갖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겠다 느껴요. 젊은 시절에야 친구 있고, 가족 있지만 결국 타인의 존재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것이 필요한데, 신앙이 좋은 장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할머니는 불안해지면 기도를 많이 하시는데, 그런 기도들이 할머니를 지켜주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내 맘대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강아름 믿음이라는 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종교가 아니어도 믿음이란 것은 사람 사이에도 있잖아요. 관계에서 믿음이 정말 중요하다 생각해요. 신뢰가 없는 관계에서는 나를 지키는 데 있어 의심이나 의혹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이 평온함을 많이 방해하는 것 같아요.
문혜성 자기를 돌봄에 대해서 관심 있는 분들이 모였고 일정 부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잖아요. 그럼 돌본다는 의식이 없었을 때 혹은 내 자신을 내버려 뒀을 때랑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을 때 어떤 삶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나해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나는 날 챙기고 있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20대 때는 통학이나 출퇴근으로 지옥철과 버스를 하루 4-5시간씩 타는 게 일상이었는데요. 이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었어요. 스트레칭 학원을 다닌다든지, 필라테스를 다닌다든지 해서요. 근데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쌓이면 누적이 되잖아요. 어느 선 넘어가면 도저히 머리가 감당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20대 때는 달리기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하면 풀릴 걸 알고 그랬다기 보단 부모님하고 싸웠을 때도 그렇고 화가 나는데 분출할 때가 없으니까 새벽에 많이 달렸어요.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달렸는가 30대가 돼서 돌아보니까요. 요즘에 읽는 책이 <우울할 때는 뇌과학>이라는 책인데, 거기서 말하길 달리면 엔돌핀이 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20대에 그렇게 달려서 미치지 않고 여기까지 왔나보다, 모르고 했지만 그런 시간들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준것 같다 싶어요. 20대엔 몸으로 풀었다면, 30대 되어서는 대형견 두 마리를 돌보게 돼서 몸으로 풀기엔 지치더라고요.
정샘물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강아지처럼 다른 대상을 돌보는 게 나를 돌보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식물을 기르는 것도 비슷한 것 같은데요.
송다혜 소연 님은 간호사 일 그만두시면서 변화가 크실 것 같아요. 사실 그게 스스로를 돌보게 된 계기잖아요.
조소연 그렇죠. 어느 날 보니 남을 돌보다가 제가 죽어 나가고 있었어요. 아마 간호사 일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그럴 거예요. 간호사로 첫 직장이 대학병원이었는데. 엄격한 환경이었어요. 태움 당하는 것도 심하고, 간호사끼리 위계질서가 너무 세서 허용과 관용이 없는 집단이었거든요. 긴장을 많이 하니까 실수를 반복하는데, 실수하면 환자가 다치니까 부담감이 엄청 났고요. 3교대로 그날의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 집에 돌아가면 바로 자기 바쁘고, 다시 일하고, 자고, 일하고 이렇게만 지내서 신규 간호사 때는 기억이 없어요. 힘들게 일했던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았고, 그때 인간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들로 일을 그만 두고 나서는 본가에 내려가 두문불출하고 이불 뒤집어 쓰고 울기만 했어요.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상태에서 계속 혼나니까, 실수와 꾸중을 제 자신이라고 받아들인 거예요.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분리가 쉬웠을지 모르겠는데, 워낙 분위기가 엄격하고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조직이다보니 그럴 수 없었어요. 면전에다 온갖 말을 다 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너 주는 월급이 아깝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분위기였단 말이죠.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요. 옆에서는 CPR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얼타는 신입을 보면 선배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뭐 하나라도 갖다 주던가 해야 하는데.
그렇게 저는 제가 아픈지도 모르고 앓으면서 몇 달을 지냈어요.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방 안에 웅크리고 있다가 밥 주면 주는대로 먹기만 하고요. 저희 집 종교가 천주교인데요. 아빠가 너 어차피 시간도 많은데 산티아고 순례길 갔다 오는 거는 어떠냐 얘기하시더라고요. 갈 생각 없다가 첫 유럽 여행을 산티아고를 가게 됐는데요.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제 생일에 맞춰 떠났는데 과연 이 길을 걸으면서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평소 운동도 안 하고 지금 체력도 바닥인데 완주는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제 26살 생일에 간 여행인데,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평생 전업 주부로 저희 돌보는 삶만 사신 분인데요. 나는 남을 돌보다 미쳐버릴 것 같아서 다 그만 두고 해외로 떠나는데, 우리 엄마는 26살에 나를 낳고 지금쯤 몸을 풀고 있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복잡미묘하더라고요.
한 달을 걷고 무사히 돌아왔는데, 돌아와서도 똑같았어요. 삶은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대단한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요. 그래도 자연 속에서 저 혼자 머무르면서 제 상태를 돌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던 것이 감사했어요. 산 하나 없이 너른 대평원 그리고 저 멀리 있는 나무를 보며 사람 한 명 없는 길을 걸으면서 어떻게든 다음 숙소까지 도착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요. 내가 왜 이 고역스러운 거 선택했을까 생각하다가 간호사 일 하면서 힘들었던 것 생각하면서 길에서 혼자 막 울기도 하고, 길 위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거기 어르신이 저에게 해준 말씀이 ‘순례길이 인생길이야. 너는 너무 젊고, 기회가 많아. 왜 이렇게 힘들어 하니?’ 하셨거든요.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 돌아와서 다시 취업을 해야했지만, 산티아고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 전에는 그냥 되는대로, 조직이 원하는대로 또는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사회가, 학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면 이젠 좀 내가 원하는대로 제대로 해봐야겠다 마음 먹었죠. 그리고는 곧바로 헬이었지만요. 돌봄에 대한 애착이 남아 NGO일을 좀 도왔는데, 이 이상 돌봄을 전문직으로 하지 말고 나를 돌보자는 생각에 지금은 영상 콘텐츠를 만들려고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간호사로 일했던 때가 가장 의미있었어요. 저의 젊음, 에너지, 감정까지 제 모든 것을 바쳐서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마지막을 지킨 경험이 가치있죠. 꼭 간호사여서라기 보단 이런 관점으로는 엄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만 한 것 같아요. 간호학에서는 간호의 시작은 모성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모계 사회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돌보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의 계승이랄까요. 그런 내용이 기초 간호학에 있어요. 돌봄의 코드에 엄마 얘기는 빠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이 관계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울 수 있는 거를 찾아야 한다 생각해요. 무엇보다 엄마는 처음 해보는 거니까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듯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어떤 엄마가 되어 아이와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 계속 알아가야 하는 거예요.
서가은 저는 오늘 되도록 듣기만 하려고 했는데요. 사실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는 분께 저의 힘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송다혜 공감을 얻지 못할까봐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하는 건지 어려워서일까요?
서가은 내 선택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데 이 일을 힘들다고 하는 것이요.
김청 선택해서 입사해도 ‘왜 이렇게 힘들지?’ 하잖아요.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조소연 책임감이 엄청 날 것 같아요. 회사는 퇴사하고 말지만, 엄마는 그만두지를 못하잖아요.
김청 법인 사업체도 힘들어요. 포켓몬 비유를 하게 되는데,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진화할 때 과정이요. 저는 대표는 아니고 직원이지만, 제가 사랑하는 이 브랜드가 아직 올망졸망한 상황에서 건강하게 자립시키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하는데요. 만약 라이츄가 안 되는 상황에서 제가 퇴사하게 된다면 저도 물경력이 되버리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조소연 엄마랑 얘기하다가 엄마 갱년기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제가 울컥했어요. 얘기하다가 엄마 마음이 확 공감이 될 때가 있는 거예요. 엄마가 항상 저한테 너 같으면 딸 낳아봐라,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요. 제 남자친구랑 저를 같이 조합을 해보면 이거 최악이다 싶어요. 그런 엄마의 마음이 어느 정도 헤아려지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럼에도 100% 이해할 수 없어 그게 서글퍼질 때가 있어요. 제가 한 번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요.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눈을 떴는데 흰 천장 벽이 보이고 그 앞에 엄마가 계시는 거예요. 그때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나요. 엄마가 저를 보며 속상해하는 마음을 100% 공감해주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내가 엄마가 되어봐야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서가은 근데 나도 몰라요. 엄마와 나의 관계랑 나와 내 아이와의 관계가 많이 달라서요. 아이를 낳기 전보단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짐작은 해볼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엄마의 마음을 영원히 모를 것 같아요.
김청 진짜 그럴 것 같아요. 어차피 각자의 관계니까요.
서가은 내 엄마라도 또 내 아이라도 속마음을 바닥 끝까지 알 수는 없으니까요. 내 마음도 잘 모르겠어요.
김청 그럼 내 마음은 나만 알아차리는 거네요.
이정은 제가 나이 먹었다고 느끼는 순간인데요. 엄마한테 힘든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돼요. 옛날에는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 했는데 말이죠. 지금은 진짜 큰 일 아니면 말 안 하고, 엄마 집에 갈 때는 더 잘 입고 가요. 꼬질꼬질해 보이지 않게. 결혼하고 생긴 습관이에요.
나해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히려 저는 어릴 때는 엄마한테 힘들다는 걸 말 안 했어요. 유학을 해서 제가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어차피 나를 지키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저희 엄마도 저를 그렇게 가르쳤고요. 엄마가 교직에서 한 30년 일하셨는데요. 몸이 원체 약하시고 살림에 취미도 없으셔서 주부의 일과 바깥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용돈만 주시면 저희가 집안일도 나눠하면서 알아서 했거든요. 오히려 나이를 먹으니까 어릴 때 안 한 것들을 하게 되는데, 지금은 미주알 고주알 다 이야기하죠. 전문 용어로 이런 것이 패런팅 차일드래요. 어린아이가 부모의 역할을 하는 거라고. 이 일로 예전에 한 번 상담을 받은 적 있었는데요. 해소되지 않으면 더 안 좋아지니까 성인이 되었더라도 엄마와의 정서적 교감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사실 아이도 엄마에게 되돌려주는 게 많잖아요. 제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지만 대화가 안 되니까 교감이 안 돼요. 저는 이렇게까지 안 될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품는게 되게 큰 일이구나 싶어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이상적인 엄마상에 젖어든 것 아닐까. 그런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이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시니까 그런 걸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이가 어떨 때 나에게 정서적으로나마 돌봄이 되는지요.
서가은 확실히 그랬어요. 아이에 대해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이었고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다 스스로를 잘 돌보고 계신 것이 좀 신기한데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저는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거든요.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언제든 나 자체로 있을 수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해도 나로 존재할 수 있었고, 나를 잃는 것 같으면 또 채우는 시간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젠 아이를 돌보다 보니까 물리적인 환경이 안 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나를 돌봐야 하는구나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많이 어릴 때 무조건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는 아이와 있으면 저를 돌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사랑의 의미를 아이에게서 배웠는데요.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하고 품을 수 있구나, 이타심에 대해서도 많이 느꼈고, 이런 감정들로 인해 제가 성장하는 것 같았어요. 이 자체가 저를 돌보는 일인 거예요. 그런데 아이가 좀 크고 나서 자기 주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제가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얘도 사람이니까요. 자기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 말을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우리에게 관계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거의 한 몸처럼 지내다가 각자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관계가 생기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이 없더라도 항상 살피고 해석할 일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 관계를 돌보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관계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울 수 있는 거를 찾아야 한다 생각해요. 무엇보다 엄마는 처음 해보는 거니까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 내 역할을 찾듯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어떤 엄마가 되어 아이와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 계속 알아가야 하는 거예요. 어쨌든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라 이런 고민을 하고 나면 반드시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져요. 그래서 저는 애를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렇게 아이에 대한 글을 쓰게 됐어요. 주변 분들은 그걸 읽고 제가 육아를 잘한다고 하시는데, 저에겐 아이와의 관계를 자각하는 장치 같은 거예요. 늘 노력하고 있고요.
강아름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생겼던 건 주체적이지 못할 때였어요. 사회적으로든 아니면 어떤 무언가가 나를 계속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게 할 때 저는 그 상태에서 제일 화가 났고요. 그제야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화도 많았고, 불만도 많았고, 비판적이고, 누가 나한테 뭘 시킨 것도 아닌데 괜히 막 짜증이 났는데요.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 힘든 상황들이 되려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다들 힘들지만 그 힘듦이 스스로를 돌보게 하는 엄청나게 큰 자극이 되겠구나.
이정은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발견하기 제일 좋은 키워드인 것 같아요. 화가 났을 때, 왜 화가 났는지 에피소드를 10개 정도 적어보면 공통된 키워드가 있거든요. 그걸 보면 내가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구나 알게 되면서 그걸 시작으로 스스로를 도울 수 있고, 주변과 관계도 훨씬 좋아지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가 정말 좋아져요. 예전엔 답답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어디서 어떤 센서가 눌려서 기분이 나쁜지, 짜증이 났는지, 화가 났는지, 억울한지 몰랐다면, 이런 감정들을 정리 정돈하면서 내 센서에 대해 알게 되니까요. 만약 상대와 친하게 잘 지내고 싶다면, 그 사람은 내 센서에 대해 모르니까 알려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저에 대해 공유를 잘 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니까 친한 친구들과 깊은 관계일수록 잘 지내기 쉬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오히려 연인 관계처럼 친밀한 관계가 제일 어려웠다면, 지금은 이런 가까운 관계들이 더욱 충만해져서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에요.
강아름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송다혜 아까 저는 정은 님이 얘기하신 객관화나 타자화의 방법에 시점을 두고 그때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걸 인정한다는 게 와닿았는데요. 시간 지나고 보면 사실 별거 아닌데 그때는 내가 힘들었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시간으로 시점을 나눈다는 생각을 못해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돌아가고 싶으신 때가 있나요? 과거로 돌아가서 치유해주고 싶은 시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이정은 저는 제 템포대로 잘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갑자기 어떤 틀 안에 들어갔는데요. 두 번째 명절에 큰 집을 가게 됐는데, 어머님이 본인 가방에서 저에게 앞치마를 꺼내주시는 거예요. 그때 제가 그 앞치마 안 입겠다 했거든요. ‘저 앞치마 안 입을래요.’라고 했더니 ‘아, 입어.’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입긴 입었는데 그러고 나서 제가 2주 동안 되게 아팠어요. 삶에 대해 후회를 잘 안 하는 편인데, 그 일에 대해서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앞치마는 진짜 안 입고 싶어요. 다른 시댁 어르신들이 다 저를 지켜보고 있고, 어머님은 우리 집에 가서는 내 말 안 들어도 되는데 제발 여기서는 내 말 들어 라는 눈빛으로 앞치마를 주셨거든요. 분명히 좋은 마음이셨을 거예요. 어머님의 기준 안에서 배려겠죠. 우리 며느리의 꼬까옷에 기름이 튈까 봐, 본인 것뿐만 아니라 손수 며느리 입으라고 챙겨오신 거니까요. 근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거예요. 제 감정을 잘 표현하는 편인데요, 내 사전에 없는 감정들이어서 거기서는 말문이 막혔어요. 그 순간은 여태까지 후회하고 있어요. 그래서 매번 남편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요. 그때 그 순간 나는 앞치마를 입지 말았어야 한다고요.
김청 어머니께도 이야기하신 적 있으세요?
이정은 어머님은 정말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그 이후로는 앞치마를 안 갖고 오세요. 눈치채신 것 같아요. 어머님 입장은 친척 집이니까 제발 내 면 좀 세워줘 라는 느낌이고, 내가 막 하기에는 우리 엄마 아빠 얼굴도 떠오르고, 부모님 욕만 먹일 것 같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인생에 단 한 번, 이 일이었어요.
서가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예를 들어 엄마가 처음 됐을 때라든지 이런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으면 불안해지잖아요. 뭘 해야 하는지 매뉴얼도 없고요. 불안한 마음을 빨리 뛰어넘고 싶으니까 롤모델을 찾아요. 그러고 번번이 실패해요. 롤모델을 찾았다 생각해도 결국엔 실망을 하더라고요. 차라리 그때 그냥 나였으면, 나 일려고 노력했으면, 아니면 하다못해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그 불안함을 빨리 뛰어넘고 싶은 마음에,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에 매뉴얼을 찾는 거죠. 그런데 그런 건 없더라고요. 다 스스로 해내야 하고, 알아서 찾아야 하고, 또 내가 찾은 방법만이 진짜가 되고요. 최근에 들었던 생각은, 제가 엄마가 됐을 때 당연히 저희 엄마를 롤모델로 삼았거든요. 그런데 엄마랑 나는 다른 사람이니까 방법이 안 맞는 거예요.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첫 직장에서 상사가 멋져 보이는 마음에 나는 저 분처럼 해야겠다 싶었는데 결국 실망하고요. 이걸 최근에 깨달았는데, 그렇게 롤모델 찾는 시간에 나를 더 돌보고 나였어야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며느리가 아니라 그때 그냥 정은 님일걸 하는 생각일까요?
이정은 그래서 갔다 와서 아버님한테 ‘저를 며느리라고 부르지 마시고 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아가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송다혜 지금은요?
이정은 지금은 다시 막 섞어 부르시는데 제가 며느리의 역할에서 해방돼서 뭐든 상관없어요. 며느리라고 부르시지만, 제가 그 역할을 아예 안 하기 때문에요. 호칭이 상관이 없어지는데 1년 반의 투쟁이 있었죠. 나와의 싸움. 저 자신을 지키려고 1년 반 동안 진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중년 남자의 마음을 모르겠어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요. 그 1년 반동안 아빠랑 전화 통화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송다혜 결말이 괜찮은데요. 주변에 그런 사람 많거든요. 투쟁 끝에 최악의 엔딩으로 연 끊고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모두가 좋게 좋게 마무리 짓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이정은 일단 저는 남편한테 ‘내가 너네 엄마 아빠를 비난하는 건 아니야.’ 이 말을 진짜 많이 했어요. 내가 대한민국 여자로서 느껴지는 편견과 어려움을 오래 설명했어요. 그 과정이 길었고요. 시부모님께는 제가 직접 말을 해보기도 했는데, 제가 어려우신지 그냥 알겠다 하고 마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아요. 남편 입을 통해서 하죠. ‘너희 집의 언어가 있을 테니, 그 언어로 네가 가서 설명하고 와라.’ 했고요. 이제는 시부모님이 저에게 직접적으로 연락하지 않으세요. 집마다 분위기가 다르니까 우리 집에서는 괜찮은 워딩이 남편 집에서는 너무 큰 일이기도 해서 어렵더라고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서 남편 가족들이랑 완전하게 단절 이런 것이 오히려 힘든 사람이에요.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말했어요. 잘 지내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서로를 이해하기까지 1년 반이 걸렸고, 지금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김청 정말 다행이에요. 투쟁 끝에 지켜낸 평화.
나를 돌보는 것은 삶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저를 돌보는 가장 큰 목적은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이거든요.
송다혜 혹시 또 과거에 나를 돌봐주고 싶으신 분이 계신가요?
문혜성 제가 20살 초반에 첫 연애를 했는데, 그 당시에 섭식 장애가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마르지 않아서 상상이 안 되시겠지만, 한 42kg까지 빠졌는데요. 그때서야 이거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는 그 뒤로는 몸무게를 안 쟀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는 먹는 게 거의 없었거든요. 폭식하고 토하고 또 폭식하는 거를 계속 번갈아 했었고, 먹어도 창포묵처럼 칼로리 없는 것만 먹었어요. 그런 시기가 짧게 있었는데, 그나마 섭식장애로 오래 고생하지 않은 건 인생에 더 크게 나쁜 에피소드가 생기니까 그 일을 해결하느라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여전히 완벽히 고쳤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아직도 그 버릇이 남아있어요. 스트레스 받으면 손을 넣어서라도 토하고 싶은 감정이 확 올라올 때가 있거든요. 처음 아프고 17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고치지 못한 거죠. 대신 이것을 받아들이는 제가 변한 것 같아요. 예전엔 이런 내가 너무 싫기만 했다면, 이제는 알림으로 받아들여요.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구나, 그래서 이러는 거구나 싶어서요. 그런 마음이 생기면 저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죠.
오늘 이야기 나온 것중에 공감한 것은 나를 돌보는 것의 첫 시작이 나를 알아차리는 것,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인데요. 저 역시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나쁜 생각이나 습관들이 어디서 기안하는지 알게 되니까 두려움이 줄어요. 나를 돌보는 것은 삶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있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저를 돌보는 가장 큰 목적은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일이거든요. 꽤 잘 해오고 있다 생각한 순간에도 인생의 어려움을 마주하면 또 쉽게 주저앉게 되는데, 인생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 두렵죠.
제가 4년 전에 생각하지 못한 어떤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인생이 확 사그라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놔버리고 싶더라고요. 나를 돌보는 거, 내 삶을 재건하는 거 이런 거 다 놔버리고 숨고 싶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왜 내 삶에 자꾸 이런 일이? 했는데요. 무너지려는 찰나 제가 저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올리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 관점을 바꾸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까 시야가 확 열리면서 괜찮아졌어요. 내가 그토록 갈구하는 회복탄력성이 매번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를 살리는 가장 큰 힘이구나 싶어요. 몸을 키우는 것처럼 마음을 키우는 거, 죽는 순간까지는 내 삶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요.
김청 너무 공감해요. 제가 송창식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그분이 나온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모든 나쁜 일은 모든 좋은 일이다.’ 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거든요. 그 말을 고등학생 때 듣고선 정말 좋은 말이다 싶어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화초를 생각하면 저는 온실에 있는 친구보다는 들판에 있는 친구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계속 나를 돌보는 이유는 내 안의 힘을 길러서 더 멀리 가기 위한거지 단정하고 아름답기만을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그래서 아까 정은 님이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자극하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는 얘기나 혜성 님 얘기해 주신 것들이 공감이 많이 돼요.
조소연 공감해요. 저는 돌봄에 있어서 사람들이 성장도 고려한다 생각해요. 아이가 커서 독립을 하거나 아니면 식물이 열매를 맺고 더 크게 자라난다든가 하는 거요. 나를 알아차리고, 더 나아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에 있어서 돌봄이 필수적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 성장이라는 결과물은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잖아요.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게 돌봄이라는 행위가 아닐까해요.
이정은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요. 제가 사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가끔 나무의 형상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성장해있는 것 같아요. 성장한 모습은 나뭇잎이 풍성한 꼴일 수도 있고, 낮지만 기둥이 탄탄할 수도 있고 또 가늘고 긴 나무로 자랐을 수도 있고요. 어떤 모습이냐는 돌봄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어떤 할머니가 될지를 상상하며 살아요. 바라는 모습으로 늙기 위해 저를 돌보고 있어요.
김청 너무 공감해요. 저는 세라복 모티프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이정은 분명히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해서요. 10년 뒤에 집을 살 거야, 10년 뒤에 행복해질 거야 이건 저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고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가 돌봄의 중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김청 맞아요. 돌본다는 게 어딘가에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송다혜 아까 엄마 얘기가 잠깐 나왔잖아요. 돌봄이란 것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아요. 소연 님이 산티아고로 떠나면서 26살의 엄마를 떠올리신 것처럼 엄마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돌봄을 시작하고요. 스스로 내 자신을 돌봐야겠다 생각이 들기 이전부터 엄마가 나를 돌봐줬던 거죠. 독립하고 엄마를 떠난 이후에는 내가 나를 돌봐야하고, 내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돌보고요. 끊임이 없는 것 같아요.
조소연 부모님이 아프신 게 이제 조금씩 보이잖아요.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나를 돌봐주셨다면 조만간 내가 부모님을 돌봐야하는 시기가 돌아오겠구나는 생각을 해요. 인간은 평생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돌봄을 주는 존재같아요. 제가 돌보던 환자가 사망선고를 받고 그 분을 보내드리면서 아직 가시지 않은 몸의 따뜻함을 느끼고 너무 슬퍼서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같은 공간 어딘가에서 제 친구는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는 것을 돕고 있었거든요. 인간 삶 자체가 돌봄이구나 싶어요. 내가 나를 잘 돌봐야지 남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그래서 더욱 돌봄을 놓칠 수 없고요.
정샘물 아까 과거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저는 오히려 미래가 궁금해요. 그러니까 미래에 6개월, 1년, 5년 뒤에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뭐라고 설명할까? 이게 별거 아니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때 진짜 큰 사건이었다고 기억을 하려나? 되게 궁금해요.
조소연 일기를 잘 써놓으세요. 본가에 갔다가 제가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봤는데요. 10대를 경험했음에도 도저히 제 글에 공감을 못하겠는 거예요. 내가 많이 변했구나 싶으면서도 여전한 취향을 발견한 것은 좋았어요. 그 시절 어떤 가수를 좋아하고 또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추억 여행하는 건 좋았는데 일기 속 중2병 멘트는 결혼할 때 못 들고 갈 것 같고요. 과거의 나에게서 현재를 나를 찾아보는 거 참 좋았어요. 어쩌면 미래의 나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록이란 것이 참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재밌어요. 책 읽다가 잊고 있던 쪽지라도 하나 발견하면, 그때 이래서 적어놨었지 싶은거요.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송다혜 다들 일기 쓰세요?
이정은 가끔 쓰고 싶을 때요.
강아름 그래도 일주일에 한 세네 번 정도 쓰는 것 같아요.
김청 종이에 쓰세요?
강아름 아니요. 저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해놓고, 자기 전에 써요.
이정은 저도 블로그 해요. 사진만 잔뜩 올려요. 근데 도움이 돼요. 뭐 먹지 할 때.
조소연 데이터베이스네요.
이정은 작년에는 대체 뭘 입고 다닌 거야? 하면서 찾아보죠.
문혜성 정은 포털이네요.
조소연 나를 검색한다.
강아름 저는 심적으로 힘들었을 때 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잘 안 풀리니까 뭐라도 써야 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정은 글쓰기에는 힘이 있으니까요.
강아름 맞아요. 그리고 저는 관계가 힘들어지면 편지를 써요. 엄청 길게 쓰고는 안 보내는 것도 진짜 많아요. 왜냐하면 쓰다가 힘든 게 해결이 돼서요.
이정은 예전 논술 선생님이 남자친구에 대해서 써오라고 그랬는데요. 그거를 쓰고 바로 헤어졌어요. 아, 좋은 놈이 아니다.
조소연 글이 객관화를 시켜줬군요.
이정은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싶었죠. 그래서 연애할 때는 상대방을 객관화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소연 콩깍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해민 헤어지고 나서 도움이 돼요. 내가 헤어진 이유가 있었구나.
송다혜 저는 루틴을 만들어 놓고 지키는 거를 진짜 못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사실 루틴 만들기도 안 해요. 일기를 쓰면 좋은 거 너무 잘 알겠고, 어릴 때 써놓은 일기 보는 재미도 잘 알겠는데 안 쓰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일기를 쓸 수 있을까요?
문혜성 저는 궁금한 게 다혜 님 굉장히 계획적이시잖아요. 해야할 일 리스트를 굉장히 철저하게 만드는 타입이거든요. 근데 또 사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신기한데요.
송다혜 일기는 좀 다르지 않아요? 제가 리스트를 만드는 거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복잡한 것들을 미리 정리하는 건데요. 그런데 일기는 소회잖아요. 감사함을 적는 일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런 생각은 진짜 많이 하는데요. 막상 그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거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정샘물 저에게 좋은 팁이 있어요. 일단 3일만 해본다는 생각으로 너무 부담 안 갖는 마음이 첫 번째고요. 그다음에는 일기를 쓰는 어플이어도 좋고, 노트여도 좋은데요. 내 마음에 드는 예쁜 노트랑 좋아하는 펜을 사서 쓰는 거예요. 그런데 제 생각에 더 중요한 건 그냥 아직은 일기 쓸 필요성을 못 느끼셔서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 저는 쓰다 안 쓰다 하지만, 일기라도 안 쓰면 미칠 것 같다 생각이 들 때 쓰거든요. 그게 3일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했어요.
강아름 아니면 단어로 쓰는 방법도 있어요. 아니면 완벽주의 성향일 수도?
조소연 여백을 보면 채워야 될 것만 같은 그 부담감이 클 수도 있죠.
이정은 일기는 좀 의무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쓸 말이 없는 날도 있잖아요. 근데 오히려 너무 재밌는 생각이 나거나 기록하고 싶은 순간에는 그냥 메모장에 들어가서 적거든요. 그게 쌓이면 일기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쓰는 건 힘드어도 남의 쓴 말에 공감하는 건 쉽잖아요. 영상 볼 때 공감할 때 많은데요. 저도 어제 그런 거 하나 기록했어요. 볼리비아에서는 계피맛 샤베트가 슬픔을 잊게 해준대요. 그게 너무 귀여운 거예요.
조소연 그렇게 모으면 나중에 영감 노트가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내가 뭐 좋아했고, 어떤 것을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찾아볼 수 있고요. 저는 주로 유튜브에 좋아요 누르거나 플레이리스트로 저장해놓고, 나중에 찾아보고 싶을 때 다시 봐요.
서가은 꼭 글일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다혜 님에게 편한 그 수단을 찾으면 될 것 같아요.
송다혜 사실 인스타그램에서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건 종류별로 폴더링해서 아카이브해놓거든요.
조소연 왠지 그러실 것 같았어요.
송다혜 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고,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를 글로 쓰지 않을 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저 나름대로 매일 기록은 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오늘 이야기 나눈 것처럼 일기는 감정을 기록했다가 나중에 되돌아보고 싶어서 쓰면 좋겠다 싶은 건데요. 그걸 계속 못하니까, 나는 일기를 안 쓰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소연 더 좋은 방법 생각났어요. 저는 귀여운 달력에 기분 한 줄, 친구와의 약속을 기록하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표정 스티커를 붙였거든요. 웃는 개구리, 우는 개구리 스티커를 붙였는데요. 나중에 우는 개구리 스티커를 보면 내가 이날 우울했구나 싶더라고요. 아니면 종이에다 날짜별로 한 줄씩 하루 감상평을 적었는데요. 한 달 다 채우면 묘한 뿌듯함이 들더라고요. 이런 기록이 간단하게 리뷰할 수 있어 좋아요.
송다혜 저…제가 써볼게요.
문혜성 힘내.
조소연 참 잘했어요. 도장 나오는 거 아닌가요.
나해민 글이 잘 써질 때도 있지만, 안 써질 때도 있잖아요. 저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사진으로 기록했어요. 시각화된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편이어서요. 한창 바쁜 20대에 아무리 피곤해도 사진으로 다 찍어뒀다가 정리하면서 내가 이때 뭐 했구나 하고 기록했는데요. 본인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기록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꼭 글로 적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송다혜 좋은 대화들 감사합니다.
조소연 제 친구는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더라고요.
김청 제가 사실은 문구 브랜드를 다니고 있거든요. 지금 힌트를 굉장히 많이 얻고 있어요. 준비하는 신제품이 여러분 말씀하신 딱 그런 스타일인데요. 저는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긴 일기는 못 쓰겠고, 그렇다고 하루 건너뛰어서 다이어리는 비는 것도 싫어해요.
조소연 그 비어 있는 그 공백이 말이죠.
김청 그런 사람들이 연속성 있게 기록할 수 있고, 무조건 꽉꽉 채우지 않아도 되는 다이어리를 기획 중이에요.
송다혜 혹시 일기 말고 공유하고 싶은 노하우가 있을까요?
조소연 저는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식물 키우는 거를 일기처럼 써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문혜성 저희한테 굉장히 큰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일기처럼 꾸준히 쓰진 않지만, 느끼는 게 있을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기록은 하고 있어요. 식물을 통해서 느끼는 게 정말 많거든요. 이런 걸 잘 전달하고 싶고, 또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써보고 싶은데 어떤 방식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나해민 저희 어머니는 식물 도감을 그리세요. 산림청에서 연수 중이신데 이제 2년 차가 되셨거든요. 원하시던 꿈의 정원을 가지셔서 그곳에 원하는 걸 다 심고, 심은 것을 공부하면서 그림도 그리세요. 저는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식물을 잘 기르는 편이고, 반면 어머니는 잘 못 기르는 편인데요. 그런 어머니 보고 예전에는 식물 킬러라 그랬는데, 그래도 요즘은 정원이 생겨서인지 어지간해서는 다 잘 자라더라고요. 아침에 매일 정원에 나가서 식물 돌보고, 그림 그리고, 일지를 적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든 것 같아요.
이정은 저도 이사 오고 산이랑 가까워져서 산을 자주 오르는데요. 디자이너다 보니까 뭘 보면 콘텐츠로 만들 생각이 들어요. 어떤 나무에 대한 것을 만들어 팔까 싶었는데, 그 나무를 충분히 관찰하려면 1년은 걸리더라고요. 이 나무가 뭔지 알려면 잎이 나야 했는데요. 그 나무를 처음 본 것이 겨울이었으니까 잎이 나려면 4개월은 기다려야 했어요. 또 꽃을 보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그래서 포기했는데, 그때 정착하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원룸에 살 때는 옮겨 다녀야 하니까 마음 둘 곳이 없었다면, 지금 사는 곳에서 산을 매일 오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다른 감각이었어요. 나무의 주기를 관찰하는데 딱 일 년이 걸렸고, 그렇게 나무 이름을 알게 된 순간 진짜 기쁘더라고요. 이제 한 3년 지켜보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나무는 조금 더 있으면 노란 꽃이 핀다고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산에 다니면 조금 달라져요.
나해민 저는 씨드키퍼를 알게 된 계기가 가드닝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자연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에게 선물로 줬거든요. 생각보다 훨씬 좋아하고, 식물에 진심인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나만의 정원을 갖는다는 것이 영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평화로움이나 안식감도 얻을 수 있고요.
조소연 큰 화분에 이것 저것 심어볼까 싶어서 다이소에 갔는데 씨앗 키트 이름이 고기 친구인 거예요. 네이밍이 충격이었어요.
김청 저는 식물을 잘 못 키우는데 같이 사는 어린 고양이가 생기니까, 그 친구를 위해서 뭘 해주고 싶더라고요. 이마트에서 캣 그라스란 걸 봤는데 되게 잘 자란다고 해서 사봤거든요. 신기하게 엄청 잘 자라더라고요. 고양이들도 좋하고요. 목적도 뚜렷하고, 얘들도 반응하니까 좋았어요.
송다혜 오늘 나눈 얘기들 중에 각자 인상적이었던 이야기가 있거나, 나누지 못한 질문이 있을까요?
나해민 자기를 칭찬하는 것이랑 소연 님의 포도 스티커 이야기가 놀라웠는데요. 제가 그런 걸 못하는 성격이라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나를 좀 더 기다려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어요. 그러려고 하지만 완벽주의에 계획적인 인간이 너그러워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걸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궁금해요.
문혜성 척을 하는 것도 도움 되는 것 같아요. 내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아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순간에는 용서하는 척을 해본다든가. 저는 누구 앞에서 이야기해야 할 때 많이 떠는 편이거든요. 정말 많이 긴장되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여배우다 나는 스타다 그런 생각을 해요. 동물들이 겁이 나면 오히려 몸을 부풀린다고 하잖아요. 어차피 할 수밖에 없을 때는 그런 척이라도 하는 거죠. 가식됨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단 믿음만 있으면 안 받아들여져도 척을 하는 편이에요.
송다혜 저는 오늘 돌봄에 시간 개념을 가져온 게 너무 좋았어요. 해민 님이 아침과 밤의 루틴이 따로 있잖아요. 따라서 그렇게 간단하게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정은 님처럼 시점을 기준으로 나를 객관화하는 방법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개념이어서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시간 개념을 적용하니까 추상적이었던 것이 명쾌해지는 것 같아요.
나해민 자기 자신을 알면 알수록 본인에게 맞는 솔루션을 대입하기 쉬운 것 같아요. 달리기도 해봤고, 오래 걷기도 해봤고, 책 읽는 것도 해봤는데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 건 뭘까 했을 때 나에게 무리되지 않는 걸 선택해서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정은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얘기했을 때 내가 뭐라고 위로해 줄까를 생각하면 쉬운 것 같아요. 친구에게 하듯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같아서요.
송다혜 타자화에 진짜 능하시다.
이정은 만약에 친구가 나한테 막 울면서 얘기하면 난 어떻게 해줄까 싶은 걸 그냥 저한테 스스로 해준거죠. 마음이 되게 복잡할 땐 모국어가 아닌 말로도 해봐요. 언변이 화려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담백하게 정리가 되거든요. 스스로 수고했다 말하는 거 창피하면 그냥 외국어로 하는 거죠.
나해민 오히려 저는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할 때가 있긴 해요.
이정은 근데 모국어랑 완전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쓰이는 단어가 달라서 관점도 달라질 수 있고요.
조소연 상담 선생님께 추천받은 방법인데요. 고민 일기를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중요한 건 지금 컨디션이 그 고민을 감당할 수 없다면 생각을 잠깐 멈추고 자신에게 기한을 주는 거예요. 일주일 뒤에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겠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나를 회복하는데 더 힘을 쓰겠다하고요. 생각이 아예 안 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다렸다가 충전이 된 다음 그 문제를 다시 바라보면 또 다른 저의 모습이 보여요. 내가 너무 소진돼서 별 거 아닌 일이 화를 냈구나 또는 내 몸이 너무 힘든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구나하고요. 정한 시간이 됐는데도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면 또 시간을 주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단계적으로 고민이 풀리기도 하고, 한꺼번에 해결이 될 때고 있고요. 저는 이 방법을 추천합니다.
김청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에게 기다려주는 시간을 준다고 표현하신 게 좋았어요. 과거의 나에게서 현재와 미래의 나를 발견한다는 이야기도 좋았는데요. 이 가설로 아까 말한 신제품을 디벨롭 하고 있거든요. 오늘 신제품에 대한 확신을 얻고 갑니다.
강아름 혜성 님이 말씀하셨던 회복탄력성이 인상적이었어요. 삶이 굴곡지잖아요. 늘 행복할 수는 없고요. 행복하려고 스스로를 돌보는 게 아니라 힘든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그 순간을 잘 극복하기 위해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 생각이 좀 더 매끄럽게 언어화된 것 같아요.
정샘물 인상적이었던 걸 다 한 번씩 짚어주셨는데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청 님이 주식 얘기를 하셨던 것처럼 내 주가가 내려가는 시기가 있을지언정 파산하지 않기 위해 돌보는 것 같아요. 떨어져도 올라가야 하니까요.
서가은 저를 돌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여러 방법을 찾고 있고요.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오늘 여러 아이디어도 얻었어요. 다들 자기를 아끼면서 잘 사시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으니 더 힘이 됐어요.
송다혜 저희가 잘 정리해서 언제든지 펴볼 수 있는 뭔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네요.
김청 진짜 재밌었던 것 같아요.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삶의 배경이 녹아있는 대화여서요. 친구들이랑도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송다혜 맞아요. 사실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을 준비하면서 좀 불안했거든요. 이런 식의 프로그램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이런 레퍼런스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가은 님이랑 같이 지인분들 초대해서 진행을 한 번 해봤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이런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사실 없잖아요. 보통 사람들 만나면 근황 토크나 부동산 이야기, 투자 이야기하게 되니까요. 낯선 사람들이랑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다들 자기 이야기를 너무 잘 털어놓고, 또 집중해서 들어주시더라고요. 혜성 님은 그 모임 하고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거든요. 그 시간 이후에 확신을 가졌죠. 정말 재밌을 것 같고, 계속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오늘 이렇게 시간을 가졌는데요. 저희 생각이 옳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네요.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 002
진행 일시: 2022년 8월 26일
진행 시간: 138분 59초
참여자: 강아름, 김청, 나해민, 서가은, 이정은, 정샘물, 조소연
기획/ 진행/ 녹취록 작성 및 편집: 씨드키퍼
<가장자리> 라운드테이블은 다양한 '돌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장입니다.
라운드테이블은 계속해서 비정기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전시 또는 책 등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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